[국감현장]한국연구재단 등 미래부 직할기관 국정감사
3년간 중단된 국가R&D과제 2200억원…선정과제 축소 논란도

'돈' 문제 때문에 과학기술계가 혼난 하루였다.

22일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서 진행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피감 기관들의 부실 경영이 여야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국회 미방위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한국연구재단이 수행하는 연구개발 과제가 무더기로 중단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 2252억원이 투입된 연구과제가 조기 종료되거나 지원 중단됐다. 

홍 의원이 협약 해약에 대한 전 목록을 제출받아 본 결과, 정부 R&D 예산의 허술한 집행과 연구자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했다. 3년 연속 매해 비슷한 과제로 3건에 대해 중복으로 총 3억 4332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은 A 씨의 경우 퇴직을 사유로 10% 남짓한 3782만원을 환수했는데, 세 번째 과제의 경우 총 7개월 동안 1억원을 타서 387만원만 환수됐다.

홍 의원은 "지난 3년간 중단된 국가연구개발과제에 총 2252억원이 지원됐지만 환수액은 10% 수준인 224억원에 불과하고 다른 사업에 참여를 제한하는 제재조치 건수도 전체 723건 중 47건 뿐이다"라며 "솜방망이 처벌로 인한 연구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철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연구개발비 환수와 제재조치 등을 더욱 엄격히 집행하는 방향으로 관련 규정을 개정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국가과학자가 속해있는 리더연구자지원사업 역시 뭇매를 맞았다. 개인연구지원사업 중 최고 단계에 해당하는 리더연구자지원사업 8개 중 5개가 중도에 중단됐기 때문. 8명의 과학자 중 5명이 IBS(기초과학연구원) 연구단장으로 이동해 과제가 중단됐다.

중단된 연구는 ▲뇌 인지 기능의 신경과학적 연구(KIST 신희섭) ▲친환경 화학공정 및 대체에너지를 위한 나노다공성 물질 연구(KAIST 유룡) ▲논코딩 RNA의 유전자 조절연구(서울대 김빛내리) ▲시간, 공간, 시스템 차원의 식물 발달 조절 연구(포스텍 남홍길) ▲원자 및 전자 단위조작을 통한 신기능성을 갖는 산화물 계면 연구(서울대 노태원) 등 5개다.

신희섭 박사의 경우 7년간 총 83억8000만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았지만 지난해 과제를 중단했으며, 유룡 교수 역시 5년간 68억원의 연구비를 받았지만 IBS 연구단장으로 이동하면서 과제를 중지했다. 김빛내리 교수와 남홍길 교수, 노태원 교수 등은 3년간 각각 29억7000만원, 33억9000만원, 42억4000만원을 받고는 돌연 연구 중단을 선언했다.

이우현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국가과학자 사업을 진행하다가 IBS 연구단장으로 옮겨간 연구자들이 국가과학자 사업을 통해 지원받은 금액은 무려 257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자들의 연이은 이동은 정부의 재정 투입 효율성을 저해시키는 요소가 됐다. 이 의원은 "자칫 다른 많은 과학자들이 선의의 피해를 입지 않고록 중복지원 여부나 선정과정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여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연구비 집행관리 부실 문제도 여실히 드러났다.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연구재단에서 제출한 '최근 3년간 미래부 소관 R&D 예산과 연구비 집행 관리 현황'을 분석한 결과, R&D 예산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데도 연구비가 올바로 쓰였는지 확인하는 일에는 소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질타했다.

그는 "현재 시스템으로는 말 그대로 운 나빠야 걸리고,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으로 환수가 이뤄지는 수준"이라며 "현장점검 확대 등 연구비 정밀 조사 의무 비율을 올려 정부의 연구개발비 지원 증가에 따른 연구비 집행관리를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KISTEP은 왜 특급호텔에서 회의를 진행해야만 했는가

답변을 준비 중인 피감 기관 기관장들.
답변을 준비 중인 피감 기관 기관장들.
KISTEP(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은 초호화판 이사회로 물의를 일으켰다.

임수경 민주당 의원은 "KISTEP이 10명 남짓 이사가 참석하는 이사회가 별다른 이유 없이 특급 호텔에서 초호화판으로 열어 국민의 분노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 의원은 또 "이사회가 한 시간 남짓한 회의시간을 식사로 대부분 보내고 회의는 아무 토론없이 대부분 원안의결로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문제 삼았다.

이날 임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3월28일부터 2013년 9월24일까지 열린 8번의 이사회가 평가회 회의실에서 열린 한 번을 빼고 모두 강남의 특급호텔에서 열렸다. 이사회는 평균 1시간에서 1시간30분 동안 진행됐으며 대부분의 안건을 별다른 이견과 토론 없이 '원안의결' 통과시켰다.

또 박영아 원장이 선임된 올해 9월24일 임시이사회의 경우 JW메리어트 호텔 미팅룸에서 12명의 이사 중 10명이 참석했다. 이날 평가원이 쓴 돈은 309만2300원으로 이사 1인당 한 끼 식사에 30만원이 넘게 쓰였다. 더불어 이사장은 63만원, 이사들은 42만원씩 430만원 넘는 돈을 참석수당으로 받아갔다.

2012년에도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 30층의 비너스룸에서 12명의 이사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68회 임시이사회의 식대 역시 322만2780원으로 나타났다.

임 의원은 "조찬모임으로 11명의 이사가 참석한 이사회는 죽을 먹고도 150만원이 넘는 식대가 나왔고 고급호텔에서 점심과 저녁시간에 이뤄진 회의는 보통 300만원이 넘는 돈이 거수기 이사회를 위해 낭비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임 의원의 "계속 특급호텔에서 회의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박영아 원장은 "안하겠다"고 답했다.

◆평가점수 높아도 '탈락' 낮아도 '선정' 사례 다수

공정성과 투명성, 객관성을 생명으로 해야 할 연구재단의 연구과제 지원사업에서 이해 할 수 없는 선정 결과들이 다수 발견,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연구과제 지원사업이 평가 점수가 높아도 탈락하는 등 선정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 것.

임수경 민주당 의원이 연구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학술·인문사회사업 학문후속세대 2013년 과제 선정에서 평가 점수가 높아도 탈락하고 반대로 평가 점수가 낮아도 선정되는 이해할 수 없는 사례가 발견됐다.

이 사업에 지원한 연구과제에 대한 평가 절차는 총 3단계로 이뤄진다. 서류 확인, 연구계획 평가, 종합평가 등으로 진행된다. 임 의원은 "문제는 지원사업 신청자에게 통보되는 평가 결과가 서술형으로 쓴 평가 내용 뿐"이라며 "구체적 평가 점수가 공개되지 않아, 탈락자 중에서는 서술형으로 받은 평가 내용은 좋은데 탈락돼 심사 과정에 의문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자료에 따르면 1년형 과제를 신청한 연구자 중 90점 이상의 높은 점수를 받고 탈락한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L 씨의 경우 90점 이하의 점수를 받고도 채택이 됐다. 이외에도 2건이 더 발견됐다.

그는 "많은 연구자들이 평가 절차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며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견연구자·신진연구자 선정과제 축소 원인은?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은 신진연구자 지원사업의 축소 문제를 제기했다.

권 의원에 따르면 신진연구자 지원사업 예산은 지난 2011년 1100억원에서 2012년 1353억원, 2013 1461억원으로 증가세를 보이던 신진연구자 지원사업 예산이 내년에는 1384억원으로 77억원 줄었다. 이는 당초 연구재단에서 요구한 예산에 비해 200억원이나 삭감된 금액이다.

지원 예산과는 별개로 신규과제 선정율은 2010년 32.8%에서 올해는 17.8%로 떨어졌다. 반면 30-39세 이공계 박사 연구인력은 2008년 3만1791명에서 2011년에는 3만5765명으로 급증해 신진연구자 지원예산 감소는 더 큰 문제라고 권 의원은 지적했다.

우수한 성과를 창출한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매년 3000여억원이 지원되는 중견연구자 지원사업도 도마에 올랐다.

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2011년 3927개의 신청과제 가운데 724개를 선정해 18.4%의 선정율을 보였지만 지난해에는 5168개 과제중 588개 과제를 선정해 11.4%로 축소되고 올 상반기에는 8.1%로 줄어든 수치를 제시하며 "과학기술계에서는 중견연구자 지원사업과 리더자 지원사업의 축소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중견연구자 지원사업의 선정과제수 축소는 이미 지난 2011년에 예견되었던 일이다. 그 해에 무려 724개 과제가 선정되면서 전년에 비해 무려 66%가 늘었고, 이러한 여파가 올해 선정과제수 축소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또 "부처와 해당 기관에서는 과제수 축소가 IBS 때문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연구자들 사이에는 결국 IBS 출범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며 "아랫돌 빼서 윗돌 빼는 기초연구 지원사업의 대표적 현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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