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개 출연연 대규모 협약식에 절반 넘는 13개 기관장 불참
공석·공모진행 기관은 이해해도 나머지 기관장 그 시간에 뭐했나

지난 8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 대표가 한 자리에 모여 출연연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자리였다. 출연연들은 이날 국가적 난제 해결을 위해 함께 공동연구를 해보자고 약속했다. <관련기사-달탐사 등 국가적 연구미션 25개 출연연 힘합친다>

과학기술출연기관장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강대임 표준연 원장은 시종일관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는 연신 "이것이 출연연 설립 이후 첫 시도다. 이제는 우리가 무언가 보여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며 "그렇게 하기 위해선 각 출연연의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협약은 출연연 스스로 국가적 난제해결을 위해 기관 간 협력·융합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각 기관의 역량을 결집, 공동 목표를 설정한 뒤 자체재원을 들이는 첫 협업연구라는데 의미가 있다. 이를 통해 출연연이 창조경제를 앞장서 실현해 나가자는 의욕도 나름 엿보였다.

그러나 시작부터 불안해 보였다. 25개 기관 대표 중 기관장이 참석한 곳은 12곳 뿐이었다. 기관장이 공석인 2곳을 제외한 나머지 11개 기관은 모두 부원장이나 선임연구부장이 대리 출석했다. 협약식보다 먼저 잡힌 약속을 깨뜨릴 수 없었다는 게 이유다. 

모든 행사에 반드시 원장이 참석해야 하냐고 강변할 수 있다. 불가피한 사전 약속도 있을 수 있다. '모든' 행사에 원장이 참석할 필요는 없다. 가능하지도 않다. 하지만 '어떤' 행사에는 원장이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지난 8일의 행사가 그렇다.   

이날 불참한 기관장은 공교롭게 출연연이 공동으로 연구하기로 한 달탐사나 노인질환, 화학물질 사고 등의 과제에서 비켜나 있는 곳이다. '절대로' 그럴리 없지만 이번 행사가 자기들 기관과는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일부 기관은 출연연 중에서도 가장 덩치가 크다. 역시 '절대로' 그럴리 없겠지만 융합이니 소통이니 담벼락 허물기니, 그런 것에 관심 기울이지 않아도 기관운영에 별 상관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 지 모르겠다. 조연이 어색한 것이다.  

출연연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 출연연을 이끌고 있는 기관장도 마찬가지 질문을 받고 있다. 정치인, 고위관료, 대학교수 등에게 자리를 내주며 "연구자들 설 자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외부환경도 분명 문제지만 이러한 현상이 빚어진데는 내부의 잘못도 크다. 당연히 그 책임의 상당부분은 기관장의 몫이다.

지난 8일 행사에 주목하는 이유는 출연연이 한번 힘을 합쳐 뭔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보자는 취지로 만든 자리였기 때문이다. '보여주기식' 행사라는 지적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이런 일을 해보자는 출연연의 움직임에 많은 이들이 기꺼이 박수를 보냈다. 그런 자리에 절반이 넘는 기관장이 불참했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묻고 싶다. 장관이나 차관이 참석하는 자리여도 그랬겠느냐고. 출연연들 스스로, 함께, 뭔가를 해보겠다는 자리에 절반의 기관장이 불참한 것은 여전히 스스로, 함께, 뭔가를 해볼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지난 8일 행사가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여전히 궁금하다. 그 많은 기관장들은 그 시간, 어디에 있었을까?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