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멋쩍게도 그 사람은 제게 좋은 인상을 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너무 무서운 사람이었고, 두 번째 만났을 때는 경계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이 바뀐 것은 세 번째 만났을 때 였습니다. 그가 인정을 가진 사람이고,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초라한 인간이라는 것을 느꼈을 때였죠. 그제서야 전 그에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제가 중학교 때 만났던, '깡패'였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서 맞닥뜨렸죠.

"야, XX. 너네 이리 와 봐"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욕설. 마치 태어나기 이전부터 "너는 욕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라고 삼신할매가 점찍어 놓은 듯, 욕과 일체된 모습이었습니다. 쫀득 쫀득 찰진 욕설이 제 귀에 달라붙어 맴돌았습니다. 절대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얼굴에 '소심'이라고 써붙이고 다녔던 전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에게로 다가갔죠. 헝클어내려뜨린 긴 머리칼, 단추 하나 풀러진 구겨진 교복 남방, 한껏 치켜 올린 치마에다 구겨신은 신발까지…. 그 여자 언니 깡패는 제게 맡겨 놓은 듯,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없다'고 말하는 제게 드라마 속 유치한 대사를 그대로 내뱉듯 "뒤져서 나오면 10원에 한 대씩이다"라고 말했던 그 언니 깡패. 뒤져서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자, 그제서야 고민하는 듯 했습니다. 당시는 여름이어서 해가 늦게 졌죠. 오후 5시 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낮처럼 밝았습니다. 지나가는 이들이 힐끔 힐끔 쳐다보며 가는 게 아무래도 불안했나보죠. 등짝 몇 번 맞고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얘들아, 다시 보자"는 섬뜩한 멘트와 함께 말이죠.

'설마 또 만날 일 있겠어'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똑같은 그 곳에 그 언니는 서 있었습니다. 그때는 안면이 좀 있다고 부드럽게 대해주시더군요. "야, XX. 오랜만이다." 역시 욕설은 빠지지 않았고요. 경계를 하며 다가갔습니다. '1000원이라도 들고 올껄'이라는 후회와 함께요. 무서워서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처음과 달리 두 번째는 그래도 좀 여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언니들이 하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언제쯤 집에 갈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세 번째 만났을 때는 제가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그 언니의 오묘하면서도 기쁜 듯한 표정이 인상적이었죠. 속 깊은 이야기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웃으며 안녕' 했던 것 같습니다. 진심이 담긴 듯 한 언니의 말도 제 마음 속에 남았습니다. '미안했다'라는 말이요.

그 후에는 한 번도 보질 못했습니다. 졸업을 한 건지 어쩐건지 눈에 띄진 않더라고요. 기억이 추억으로 변해버렸는지, 그 자리를 지나다보면 그 언니가 생각나더군요. 조금 더 많이, 깊이 알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죠. 사실 두 번째 만남에서 언니들이 하는 이야기가 마음이 쓰였거든요. 주로 가정사 이야기였는데, 흔히들 아시는 청춘 드라마에 나올법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불쌍하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후회되는 건, 제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하던 그 언니의 모습을 못 알아챘다는 겁니다. 후에 생각해보니 조금 알겠더군요. '미안했다' 뒤에 '또 보자'라는 말이 숨겨져 있었음을요. '그래요 언니, 우리 친하게 지내요'라는 말 한 마디 해줄 것을, 그렇다면 세상 살아가는 데 있어 조금은 든든하지 않았을까요.

외로울 때 마다 저를 스쳐지나갔던, 제가 무심코 지나쳤던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이 제게 준 따스함이 얼마나 값졌는지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그때의 한 장면, 한 장면이 가슴에 남아 인생의 갈림길이나 선택의 순간에 절 움직일 수 있게 해준 것 같네요. 그래도 '지나간 것은 언제나 그리워집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덕넷이 뽑은 오늘의 뉴스 전해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사이트로 이동합니다>

1. [중앙일보]인류, 태양신 영역 너머로 가다

1977년 한 장의 황금 레코드판이 우주로 날아갔다. 무인 탐사선 보이저(Voyager) 1호에 실려서다. 레코드판에는 ‘안녕하세요’란 한국말을 비롯해 55개 국어 인사말, 개 짖는 소리, 바흐 등의 음악, 지구 사진 118장 등이 담겼다. 인류가 외계 생명체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보이저 계획에 참여했던 천문학자 칼 세이건(『코스모스』의 저자)은 “성간(星間)우주를 여행하는 진보된 문명이 있다면 보이저는 그들과 만날 것이고 레코드판이 재생될 것”이라고 말했다.

2. [동아일보]이것이 한국의 청년기업가 정신이다

지난해 12월 케냐에 놀러 간 이영주 소울오브아프리카(SoA) 대표(29·여)는 현지 예술가들의 그림을 팔면 돈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케냐 화가들의 작품은 유럽 회화처럼 고급스러웠지만 훨씬 쌌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친구 2명과 사업을 위한 팀을 꾸렸다.

그러나 사업 계획을 구체화하려고 7월 말 케냐에 이어 탄자니아에 있는 ‘팅가팅가’ 예술인 협동조합을 방문하면서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3. [조선일보]와이브로(휴대인터넷), 한국發 IT '신기원'에서 '신기루'로 추락

"와이브로는 우리나라가 국제 표준을 주도해 세계 최초로 기술 개발에도 성공한 사례다. 밖(외국)에 나가서 큰소리 칠 수 있겠다."(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 "와이브로는 2010년이면 국내 가입자가 800만~900만 명에 달할 것이다."(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한때 '한국발(發) IT 혁신'으로 기대를 모았던 와이브로(WiBro)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와이브로는 시속 60km 이상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도 초고속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통신 기술이다. 2005년과 2006년 우리나라에서 세계 처음으로 시스템 개발과 상용 서비스가 이뤄졌고, 이후 미국·일본·대만·중국 등 40여 개 국가로 전파되면서, 세계 표준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4. [중앙일보]잡스 사진 떼버려라 … 애플 '팔로어' 전락하나

“잡스의 영혼이 새 아이폰과 함께 애플을 빠져나갔다.”(USA투데이), “애플 신제품은 시장 선도자에서 모방자로 변신했다.”(블룸버그)

애플의 창업자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지 약 2년. 잡스의 카리스마가 떠난 자리는 후임인 팀 쿡 최고경영자(CEO)의 실리주의가 메우고 있다. 하지만 잡스의 흔적이 생각보다 일찍 지워지면서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애플의 빛이 바래는 분위기다. 애플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야심 차게 공개한 새 스마트폰 ‘아이폰5S’(고가형)와 ‘아이폰5C’(저가형)에 대한 주요 외신의 평가가 그렇다. 새롭다고 말하기엔 민망한 라인업을 들고나온 데다, 애매하게 보급형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어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5. [한국경제]최문기 "창조경제도 코끼리처럼 우직하게 밀고 나갈 것"

"R&D를 했으면 결과를 누군가 활용하게 해야 하는 게 기본이다. 케이스 스터디하듯 하는 것은 R&D라고 볼 수 없다.R&D는 결국 기술을 사업화하는 게 목적이다. 장관으로 와서 보니 출연연구원장들도 사업을 추진할 때 보수적인 태도를 갖고있는 것 같다. 연구원들이나 원장 모두 열정을 갖고 일해야 한다."

6. [동아일보]체내 누적되면 암 유발… ‘보이지 않는 위협’이 불안 부채질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흘러나온 ‘방사능 오염수’로 전 세계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 특히 가장 가까운 이웃인 우리나라 국민의 불안감은 심각하다. 인터넷에는 ‘후쿠시마 괴담’이 떠돌고, 방사성물질에 오염됐을까 걱정한 나머지 아예 생선을 먹지 않는 이도 늘고 있어, 추석 대목인데도 수산물 시장은 ‘파리만 날리고’ 있다.

방사선은 X선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처럼 인위적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지각 내부에 존재하는 토륨같이 자연 방사선 형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방사능이 인체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주는 피폭선량 단위가 밀리시버트(mSv)인데, 우리나라 사람은 연간 평균 3mSv 정도의 자연 방사선에 노출된다. 전 세계 평균 자연 방사선량은 2.4mSv 수준이다.

7. [동아일보]문·이과 프레임 깰 때다

“테크놀로지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애플의 DNA입니다. 인문학과 결합된 테크놀로지여야 합니다.” 이렇게 말했던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 사랑은 유별났다. 리드대에 다닐 때 수강한 서체(書體) 과목이 매킨토시 서체 개발에 영감을 준 일은 유명하다. 버튼이 하나뿐인 단순한 디자인의 스마트폰은 그가 한때 선(禪) 사상에 빠졌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그에게 인문학은 혁신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는 느낌이다. 인문학이란 성찰과 비판의 학문인데 그는 인문학을 자기 수양의 자양분으로 삼지 못했다.

8. [매일경제]R&D 실패해도 책임 안묻겠다

"기술 있는 인력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창업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들을 위해 결과에 책임을 묻지 않는 정부 연구개발(R&D) 자금 지원 제도를 도입하겠다."

한정화 중소기업청장은 12일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희망 중소기업 포럼`에서 "중소ㆍ벤처기업을 위한 `도전적 R&D` 지원 프로그램을 내년 예산에 반영할 방침"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