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찬 연세대 교수, 9일 연구재단 정책세미나서 강연
'연구가치·패러다임 변화' 주문…가치 추구하는 연구를"

민경찬 교수가 10일 열린 연구재단 정책세미나에서 '연구인가? 지식창조인가?'를 화두로 던졌다.
민경찬 교수가 10일 열린 연구재단 정책세미나에서 '연구인가? 지식창조인가?'를 화두로 던졌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한 교수가 지난 20년간 하나의 연구테마만 집중했다면 무엇을 이뤄도 이뤘을 텐데, 연구비 따고 논문수 채우기 급급하다 보니 이뤄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후회를 하더군요. 이는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닌 한국 연구현장의 현주소입니다."

민경찬 연세대학교 수학과 교수(기초연구진흥협의회 위원장)가 10일 제18회 한국연구재단 정책세미나를 찾아 "한국의 미래는 우수인재 양성과 과학기술 두 축에 달린 만큼 기존의 수단 중심이 연구가 아닌 가치와 목표를 중시하는 패러다임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민 교수는 "우리는 연구성과를 논문수로 평가하다 보니 정작 '무엇을 위해 연구하느냐'는 고민은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일침하며 "이제 '사회가 연구자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연구를 해야 할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할 때"라고 말했다. 

그가 세미나 화두로 던진 '연구인가? 지식창조인가?'는 양적 목표가 중심이었던 '연구'가 아닌 질적 가치를 담은 '지식창조'를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위해 연구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자와 지원자, 정책입안자가 공통된 가치를 공유하고 지향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평가 잣대로 삼아온 논문편수, 논문피인용도, IMD 평가 순위 등은 사실 최종 목표가 아닌 수단이었음에도 우리는 '과학기술경쟁력 세계 5위'와 같은 양적 수치에 고취돼 있었다.

지난 5월 지구촌 연구자와 단체들이 숫자 중심의 연구 평가제도를 개선하라며 이른바 '샌프란시스코 선언'을 한 것과 대조적이다. 또 2007년 한국을 방문한 더 타임즈 편집장은 대학별 순위는 총체적으로 대학을 평가한 것이 아닌 수집할 수 있는 지표들로만 평가한 것임에도 한국만이 유독 순위에 민감하다고 꼬집은 바 있다.

민 교수는 우리가 국민소득 2만 달러의 덫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치와 개념에 대한 프레임과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까? 민 교수는 이해를 돕기 위해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소개했다.

먼저 미국이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기본철학은 ▲삶의 질 ▲국가안보 ▲미래 세대의 삶의 질에 대한 것으로 그 바탕에 인력양성과 과학기술의 혁신이 있다. 일본 나카소네 총리는 1987년 그동안 일본은 기초연구에서 무임승차 했지만 이제는 기여해야 한다며 과학기술의 방향을 인류와 사회가치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초점을 둔 R&D STS 포럼을 제안했다.

민 교수는 "연구에 대한 가치와 개념을 바꾸기 위해서는 교육의 목표와 목적도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며 우리나라 대학이 인재상 중심의 교육을 진행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대학마다 설립목적에 맞춰 어떤 인재를 키울 것인지 설정한 후 이에 대한 핵심역량을 결정, 학생선발, 교육프로그램 운영한다면 지금의 대학 간 랭킹 비교는 사라질 것이란 기대다. 또 미래 방향에 대한 기본 철학, 비전, 전략을 세울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시스템보다 사람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민 교수는 더불어 연구생태계의 변화도 요청했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들은 이미 몇 십년간 반복 돼 온 것들로 무엇이 발목잡고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풀어야 한다. 그중 '평가제도'는 모든 연구 방향과 방법을 끌고 갈 만큼 중요한 기반이기 때문에 평가 개념의 대 전환과 혁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가 생각하는 연구의 수월성, 경쟁력의 의미는 논문, 특허 수가 아니다. 성과의 의미는 수치가 아닌 본질적 가치로 국내외 학문적 명성, 외국 초청강연에 얼마나 참여하는지, 실질적으로 그 커뮤니티에서 어떻게 인정받는지가 중요하다.

더불어 사회 환경의 변화도 기대했다. 몇 해 전 중국 후 주석은 중국 최고 수학자 우원쥔의 서재를 찾아 존경을 표했다. 이는 국가가 과학자를 우대하고 존경하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보로 사회에 미치는 파장은 크다. 우리나라 지도자들에게 이런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연구문화와 관련해서는 "연구내용, 목표, 방식은 호기심에 기반을 둔 창의적 연구, 융합연구가 되어야 한다"며 "연구자들은 연구비가 수단인지 목표인지, 권리인지 혜택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연구비는 국민들에게 받는 것으로 연구자는 국민들에게 무엇을 돌려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민 교수는 연구현장 구성원들이 다 같이 짚어 봐야 할 것으로 '융합'의 개념을 꼽았다. 융합은 분과의 통합이 아닌 질문의 통합으로 지식이나 기술을 섞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융합이라는 설명이다.

또 하나 글로벌 전략문제도 함께 고민할 것을 제안했다. 세계적인 대학, 연구소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에서 우수한 학자, 인재들이 오고 싶어 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 유학을 왔던 학생들 중 60%가 혐한 감정을 갖고 돌아간다. 우리는 이들에게 학비 챙기기에 바빴지 이들에게 경쟁력을 높여주는 지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6월 오바마 이민개혁법이 통과돼 우수한 인재를 끌어가고 있다. 유럽은 15세기 초 '대항해 시대'를 개막했다. 21세기 또 새로운 '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있는 만큼 우리도 사람, 인터넷, 문화 등을 기반으로 우리만의 글로벌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민 교수는 "기초연구진흥협의회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며 연구재단 직원들도 단순 지원 기능을 넘어서 현장기반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이날 정책세미나에는 연구재단 직원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한 참석자는 "강연내용이 연구지원사업을 벌이는 연구재단 직원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만큼 느끼는 바가 많았다"며 "연구평가를 비롯해 연구비 배분 등 많은 부분에 있어 고민과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고 소감을 전했다.

연구재단은 매월 1~2회 점심시간을 이용, 정책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세미나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연구재단은 매월 1~2회 점심시간을 이용, 정책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세미나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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