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표준연 김광섭 명장…30년 호흡이 완성도 좌우
나로호·남극·원자력 연구…무결점 가스로 힘 보탰다

김광섭 표준연 대기환경표준센터 명장은 지난 30년간 표준가스를 제조하며 우리나라 산업·과학발전에 이바지해왔다.
김광섭 표준연 대기환경표준센터 명장은 지난 30년간 표준가스를 제조하며 우리나라 산업·과학발전에 이바지해왔다.
"2002년 독일과 미국 표준연구기관 등이 참여한 자동차 배기가스 분석 국제 비교에서 처음으로 표준연이 1등을 했어요. 1983년 연구소에 입사해 가스 제조 한 길을 달려왔지만 국제대회 1등이라는 객관적인 성적표를 받고 나서야 '내가 정말 제대로 일을 해왔구나'하는 보람과 확신이 들었죠."

한국표준과학연구원(원장 강대임)이 지난 2012년 연말 명장으로 선정한 '김광섭 책임연구기술원', 지난 30년간 수없이 많은 종류의 표준가스를 제조·분석하며 우리나라 산업과 과학발전에 이바지한 일등공신이다.

'가스'하면 화학공장에서나 접할 수 있는 특수 물질로 생각, 일반인의 삶과는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 인류가 숨 쉬는 대기는 수없이 많은 가스들로 구성돼 있다. 생명유지에 꼭 필요한 산소를 비롯해 질소, 아르곤, 이산화탄소, 헬륨, 오존 등 우리는 좋든 싫든 가스와 동고동락해야 한다.

김광섭 명장이 몸담고 있는 표준연 대기환경표준센터는 대기와 가스 분석, 표준가스의 제조·개발과 보급을 연구하는 대기환경 및 가스측정 분야 국가표준 연구실이다.

김 명장의 설명에 의하면 가스관련 연구에도 시대상이 반영된다. 대기환경표준센터는 초기 쓰레기 매립지 가스 분석부터 시작해 이산화탄소와 일산화탄소·프로판가스 등의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량 측정기준이 되는 인증표준물질(CRM)을 개발·보급해 왔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 등 지구환경 보호를 위해 세계적인 표준기관들과 함께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30년, 짧지 않은 시간인 만큼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도 수없이 많다. 올 초 전국민의 염원이 함께했던 나로호 발사현장에도 그가 있었다. 표준연 대기환경표준센터가 나로호 1,2,3차 발사 전 과정의 가스분석과 품질검사 임무를 진행한 것.

당시 주어진 임무는 조립동부터 발사대에 이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로호에 사용될 모든 가스의 품질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이었다. 외부에서 수송된 가스를 고압가스용기에 충전하고 나로호에 주입할 때까지 여러 단계에 걸쳐 세밀하게 성분을 분석해야 했다.

로켓뿐만 아니라 원자력 연구와 발전소, 극지·해양연구 현장에서도 가스는 필수 재료로 사용된다. 또 LED 생산 공정의 시험검사를 비롯해 자동차 하이브리드 가스의 순도 검사도 진행하는 만큼 국내외 산업체와 대학, 출연연 모두가 그의 주 고객이라 할 수 있다.

◆ 고객맞춤형 서비스…"힘들었지만 성장의 발판이 됐다"

김 명장은 "처음 1등하기가 어렵지 한번 1등을 하고 나면 경험과 노하우가 쌓여 더 잘하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김 명장은 "처음 1등하기가 어렵지 한번 1등을 하고 나면 경험과 노하우가 쌓여 더 잘하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김광섭 명장은 모시로 유명한 서천군 한산에서 태어났다. 5살 되던 해 충주비료공장에서 일하시는 부친을 따라 충주로 이사했다. 비료공장은 공정상 암모니아 가스가 종종 누출되곤 한다. 동네에 자욱하게 깔린 냄새의 정체를 궁금해 하며 자란 만큼 가스와의 만남은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김 명장이 입사하던 30년 전만해도 표준연은 지금처럼 연구분야가 세분화되지 않았다. 초창기엔 분석화학실에서 일반 전기화학을 비롯해 분석화학, 가스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다 27년 전쯤 가스만 전담하는 부서가 탄생했다. 지금의 대기환경표준센터의 기틀이 잡힌 것은 대략 10년 전쯤이다.

"당시 만해도 우리나라의 가스분야 기술과 장비는 보잘 것이 없었어요. 표준이 되는 가스를 외국에서 수입해야 했는데 모든 가스가 비쌌습니다. 우리가 만든 1차 표준가스를 확실히 믿지 못해 미국 것을 사와 우리 것을 보정하곤 했는데 지금은 대만, 싱가폴, 말레이시아 등에서 우리가 제조한 표준가스를 사가 자국의 가스와 비교분석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처음 1등하기가 어렵지 한번 1등을 하고 나면 경험과 노하우가 쌓여 더 잘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가 불과 십 수 년 만에 세계적인 연구그룹으로 성장한 비결을 배우기 위해 싱가폴 등 외국의 표준기관과 산업체에서도 교육을 올 정도다.

김 명장은 "초기에는 우리가 터득한 노하우와 비결을 숨기려고 했지만 이제는 외부에 공개하고 다 같이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며 "이는 기술을 공해해도 우리가 최고라는 자부심, 우리만의 숨은 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대기환경표준센터에서 다루는 가스는 400~500종 정도다. 말이 400~500이지 '산소' 하나만해도 연구소, 대학, 산업체에서 요구하는 농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실제로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된다.

미국의 표준기관이 수소 1%, 산소 1%와 같이 정해진 농도만 제공하며 '사갈려면 사가라'는 식의 배짱영업을 하는 것과 다르게 표준연은 고객이 요청하는 농도를 제조해주는 맞춤형 지원을 하고 있다. 사실 기관 입장에서는 관리도 제조도 힘들지만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세계 1등 연구실로 성장할 수 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1년에 13억원 정도의 표준가스가 학교, 산업체 등으로 나가고 있다.

◆ 명장이 혼자되는 것이 아니다…"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 같이한 동료들에 감사"

"수백 종류의 가스를 안전하고 완벽하게 만들려면 팀워크가 살아야 합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부직학생들이 용기를 깨끗하게 씻는 것부터 일이 시작되죠. 가스가 잘 제조돼야 연구원들은 데이터를 잘 뽑을 수 있고 산업현장에서도 제대로 된 생산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김 명장은 "팀워크와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으면 좋은 성과가 나오기 어렵다"며 "명장 칭호는 자신 혼자 받은 것이 아니라 팀의 성과를 자신이 대표로 받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기환경표준센터에서는 현재 김 명장을 포함해 6명의 기술원이 호흡을 맞추고 있다. 김용두, 김병문, 이진복, 문동민, 배현길…이들 기술원은 짧게는 20여년, 길게는 31년 간 표준연에 몸담아 온 베테랑들이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한 시간보다 이곳에서 동료들과 함께한 시간이 더 길다.

방사능이나 가스 제조, 분석업무는 1~2년에 기술과 노하우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일상적이고 반복되는 작업이지만 세밀한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오랜 세월 본인의 경험과 역량이 다져져야 작업의 완성도도 함께 올라간다. 제조 공정을 함께하는 팀원들과도 호흡이 맞아야 작은 실수도 방지할 수 있다.

그는 "족구에서 토스맨은 엄마, 스트라이커는 아버지, 오른쪽 수비는 아들, 왼쪽은 딸이다. 일도 가족처럼 호흡이 맞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팀워크 강화 비결은 운동이다. 운동을 통해 서로 손발이 맞추면 업무현장에서도 위험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또한 체력이 바탕이 돼야 업무능률이 향상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유난히 폭염이 기승을 부린 올 여름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운동을 했다. 12시부터 40분까지 팀원들과 축구를 하고 20분간 식사를 한 뒤 오후 업무를 시작하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이렇게 다져온 축구실력은 연구단지 최강이다. 특히 30년 멤버로 구성된 족구팀 실력은 전국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 

최근 언론에서 심심찮게 가스 폭발사고 소식을 접하기 때문에 '가스'하면 위험하다는 생각을 많이 든다. 김 명장은 요즘 폭발 사고가 많은 건 안전수칙, 절차를 지키지 않아서라고 단언했다. 특히 수소와 산소를 같이 넣거나 메탄을 바로 연결해서 넣으면 폭발한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는데 조금 빨리, 조금 편하게 하려다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

그는 "절차서를 따라하면 가스 제조에서 특별히 어려운 것은 없다"며 "극미량의 가스들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절차대로 차근히 하다보면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착실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자. 미래도 오늘이 있어야 있는 것이다'를 좌우명으로 30년을 한 우물을 판 김 명장. 퇴직을 2년 4개월 남겨두고 있는 만큼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다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가장 큰 꿈은 정년까지 함께 일해 온 동료들과 함께 가스 관련 책자를 하나 만드는 일이다.  요즘 대학에는 당구과도 있고 골프과도 있는데 가스과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 일반적인 교육교재를 뛰어넘어 현장에서 체득한 디테일한 부분까지 담을 수 있는 교재를 만드는 것도 열망이지만 연구원 일이 바빠 실제 진행이 가능할지 걱정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나 더 바람이 있다면 지금의 작업들이 바탕이 돼 20~30년 뒤에 내가 있던 팀, 나와 함께 한 후배들이 노벨상을 탔다는 소식을 듣는 것"이라며 "작지만 나도 그 일에 기여했다는 사실로도 내 인생과 삶에 대해 긍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센터에서 개발한 '오토매틱외인시스템'. 1mg에서 15kg까지 정밀하게 잴 수 있는 이 장비의 개발로 표준연은 국제비교에서 좋은 성적을 얻게 됐다.
센터에서 개발한 '오토매틱외인시스템'. 1mg에서 15kg까지 정밀하게 잴 수 있는 이 장비의 개발로 표준연은 국제비교에서 좋은 성적을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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