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나경환 생기원 원장 '기술사업화' 해답을 내놓다
연구원내 연구인력 절반을 중소기업 기술지원에 투입
"1시간씩 토론하며 인식 바꾸고 보상·평가체계 변경"

뿌리가 튼튼한 나무는 비바람에도 흔들림이 없다. 중소·중견기업도 마찬가지다. 선도적인 기술과 마케팅은 중소기업이 국내를 넘어 세계시장을 리드하며 히든챔피언으로 우뚝 설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새정부도 신성장 동력으로 중소기업 성장과 창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출연연의 기술사업화 지원은 더욱 중요해졌다.

그러나 정책이나 평가제도가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고 연구자들의 마인드도 중소기업 지원과는 거리가 있어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중소기업 기술사업화 지원은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출연연도 '중소기업통합지원센터' 설립을 추진하는 등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런 가운데 중소기업 지원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하 생기원)의 변화가 눈길을 끈다.

'9대 1에서 5대 5로.'

생기원의 연구와 기술사업화 지원(이하 실용화 기술지원, 생기원에서는 실용화 기술 지원으로 표현) 인력의 변화를 보여주는 수치다. 10%에서 50%로 증가했다. 연구 인력의 절반이 중소기업 실용화 기술지원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 마법이라도 부린 걸까.

물론 생기원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연구자들의 마인드를 바꿔놓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한번 일기 시작한 변화의 물결은 큰 파도가 돼 연구자들의 오래된 고정관념을 변화시켰다. 그런 변화가 있기까지는 나경환 원장의 토론 리더십이 큰 작용을 했다.

변화의 결과는 최근 공개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평가성적표에 그대로 반영돼 나타났다. 생기원은 36개 기관 중 경영과 연구사업 모두에서 우수평가를 받았다. 생기원을 포함해 3개 기관 뿐이다. 나경환 원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실용화 기술지원 우수 출연연으로 거듭 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알아보았다.

◆나경환 원장의 토론 리더십, 연구원들의 마인드에 변화를 주다

나경환 생기원 원장. 그는 중소기업 실용화 기술 지원의 중요성을 공유하기 위해 연구원들과 1시간씩 토론을 하기도 했다.
나경환 생기원 원장. 그는 중소기업 실용화 기술 지원의 중요성을 공유하기 위해 연구원들과 1시간씩 토론을 하기도 했다.
나경환 원장은 생기원 창립멤버다. 중소기업 지원을 전담할 연구기관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생기원 설립에 참여하게 됐고 그 인연으로 1989년 KIST에서 생기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20여년간 중소기업과 국가의 제조 산업 발전에 기여해 왔다. 그리고 지난 2007년 생기원의 수장으로 부임했다.

그의 어깨는 무거웠다. 생기원의 설립 목적과 역할, 책임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고민도 많았다.

생기원은 산업계, 그 중에서도 특히 중소·중견기업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하지만 생기원의 정체성과 달리 기업과 연구현장의 간극이 존재했다. 나 원장은 이에 대해 연구자의 특성으로 분석했다.

"연구자들은 특성상 자신의 연구 분야에 파고들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기술사업화에는 소홀하게 되죠. 그런데 중소기업에서는 완성된 단계의 기술이 아닌 각 단계의 기술이 필요한 경우가 더 많습니다. 현재 단계의 기술로 중소기업에 이전하고 이를 실용화 하는데 집중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나 원장은 "실용화 기술지원이 꽃 피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이 움직여야 한다. 자신이 연구한 기술이 기업, 산업계에서 쓸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이 필요하다"고 부연해 설명했다.

부임 직후부터 나 원장은 소규모 모임을 갖고 연구원들과 토론에 나섰다. 생기원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중소·중견기업 지원에 적합한 실용화 기술지원의 중요성을 경험을 들어 연구원들에게 공유했다. 그렇게 1, 2년을 보냈다. 연구원들도 그의 이야기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생기원의 장점은 설립목적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실용화 기술지원에 필요한 경험과 지식, 열정입니다. 생기원이 가진 경쟁력이죠. 경쟁력을 잘 살리기 위해 연구개발(R&D)과 기술지원 비율을 9대 1에서 5대5로 조정했습니다. 그리고 평가나 보상체계도 실용화 기술지원을 중심으로 바꿔 나갔고요."

◆연구원 논문 수보다 기업 지원 성과 높이 평가

"실용화 기술지원에 참여하는 연구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한 것은 물론 연구원 평가체계도 논문수가 아닌 중소기업 지원을 평가지표로 했습니다. 지원 기업의 생산성 향상, 불량률 절감, 애로기술 해결, 기업 육성 등을 내용으로 평가지표를 다시 만들었죠."

이렇게 생기원은 당초 설립 취지를 되살리며 중소·중견기업에 맞는 실용화 기술지원 전문 연구기관으로서 기능과 역할을 충실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이에 대해 나 원장은 "그동안 구성원들과 함께 기업 지원 과제를 하며 중소기업 지원의 중요성을 서로 공감할 수 있었기에 변화가 쉬웠다"고 말하며 "이는 신규직원 선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생기원 면접에서 꼭 묻는 질문 중 하나는 '기업에 파견하거나 현장 근무도 필요한데 할 수 있겠는가'다"라고 소개했다.

생기원은 복잡했던 연구분야도 생산현장의 필요와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공통적으로 필요한 뿌리산업기술, 생산시스템, 융합생산기술분야의 3대 중점 연구영역에 집중했다.

또 천안 본원 이외에 인천, 안산, 광주, 대구, 부산, 강릉에 근접기술지원본부를 구축해 지역산업과 연계된 R&D 밀착 기술지원에 나섰다. 각 본부에서 근무하는 구성원간의 다양한 소통 채널을 마련, 정보를 공유하며 기업지원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했다.

노력들은 성과로 이어졌다. 생기원의 지난해 지식재산권 출원건수만 542건(국내 366건, 국외 176건), 등록건수도 486건(국내 312건, 국외 176건)에 이른다. 또 에코마그네슘(온실가스인 SF6(육불화황), 인체 유해가스인 SO2(이산화황) 등의 보호가스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합금소재 기술) 을 개발하고 이를 토대로 에코 알루미늄 합금기술을 개발, 굴지의 글로벌 기업에 이전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SCI급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수도 지난 한해만 242건, 과제 수행 건수도 128건에 달해 선택과 집중의 묘미를 보여줬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생기원은 2012년 지식경제부(지금의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하는 '제38회 국가품질경영대회'에서 '서비스품질 우수상'을 받았다. 또 미국 GPTW(Great Place To Work)가 선정하는 '2012 일하기 좋은 100대 기관'에 선정됐다.

최근에는 정부출연기관 평가성적표에서 경영과 연구사업 모든 분야에서 '우수' 평가를 받으며 우수 연구기관으로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았다.

◆지금은 국민소득 2만 달러에서 4만 달러 갈 수 있도록 패러다임 바꿔 나갈 시기

우리나라 정부출연기관의 태동은 기술사업화에서 시작됐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과 최형섭 KIST 초대 소장은 기술자립 의지와 과학입국의 명제아래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출연연의 기술지원으로 우리나라는 가장 짧은 시간에 압축 성장하며 기적처럼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게 된다. 국민 소득도 절대 빈곤국이었던 80달러에서 2만 달러에 진입했다. 그러나 2만 달러에서 성장이 멈춰있다.

나 원장은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2만 달러에서 4만 달러로 가는 길목에 있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 성장률로는 3만 달러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은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시기"라고 진단하며 "새정부에서도 신성장 동력으로 중소기업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출연연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구원이 가지고 있는 기술 중에는 그 단계에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이 많다. 이를 발굴하고 기업에 매칭하면 연구원들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기업을 지원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우리나라는 전체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다. 이들 중소기업 중에는 규모는 작지만 세계적인 기술로 인정받으며 히든챔피언 반열에 이름을 올린 기업도 다수다.

나 원장은 "독일과 일본에 세계적인 히든챔피언 기업이 많다. 그 뒤에는 프라운호퍼연구협회(FhG)나 일본 산업기술총합연구소(AIST) 소속 연구기관들이 있기 때문인데 생기원이 그들과 견줄 수 있는 세계 3대 실용화 연구기관으로 성장하고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세계적인 히든챔피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