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기하학수리물리연구단장이 말하는 수학과 연구의 세계
"연구기본은 자유로운 소통…노벨상 부담 있지만 그래도 즐기며 연구"

후배와의 토론이 언제나 즐거운 오용근 단장.
후배와의 토론이 언제나 즐거운 오용근 단장.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회다' 싶었다. 수학자로서의 꿈을 이 곳에서 이루고 싶다."

오용근 IBS(기초과학연구원) 기하학수리물리연구단장은 천상 수학자였다. 사진을 찍기위해 '연구하는 모습'을 주문하자 멀뚱 멀뚱 어떻게 해야 할지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어색해서 어쩔 줄 모르는 그에게 그냥 편하게 후배 수학자와 하던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더니 이내 연구 이야기에 빠져드는 그였다. 사진을 다 찍고, 연구실을 둘러 본 후에도 그와 후배의 이야기는 멈출줄 몰랐다.

대화를 중요시하는 그의 신념이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그의 의견에 따라 연구실도 카페 분위기로 리모델링했다. 커피향 물씬나는 이 곳에는 수많은 책들과 수식들을 나열할 흰 칠판,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사람들이 있었다. 연구단 사람들은 이 곳에 모여 자유롭게 소통을 한다. 원활한 소통은 이 연구단이 추구하는 가치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오 단장은 "대부분의 외국 수학 연구소들은 오픈된 공간에서 연구를 한다. 서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며 "수학에는 자재가 필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류다. 외국에서도 방문자들이 많은데, 이러한 공간은 수학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요소 중 하나다"고 설명했다.

기가막힌 타이밍으로 이 자리까지 흘러들어왔다는 오 단장. 그의 인생사는 한 마디로 장애물없이 흘러온 강물같았다.

"1983년에 유학갔다가 쭉 있었다. 1992년부터 위스콘신대학교에서 20년간 있다가 이쪽으로 오게 됐다. 한국과 인연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1996년부터 2년간 고등과학원에서 풀타임 잡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이후에는 여름마다 왔었던 것 같다. 사실 연구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아이들 교육 문제인데, 그 부분에서 자유롭게 됐다. 그런 와중에 연구단장 선정 소식이 들려와 '이때다' 싶어 기회를 잡았다."

그가 이끌 기하학수리물리연구단은 순수수학과 이론물리의 상호작용이 중요시 되는 세계적 학문추세를 반영해 순수수학인 사교기하학과 수리물리분야의 핵심인 양자장·끈이론을 융합하는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그룹이다.

오 단장은 앞으로 이 곳에서 대역해석학, 사교기하학, 동역학, 위상수학 그리고 수리물리의 높은 단계에서 통합이 필요한 '사교대수위상' 이라는 새로운 수학분야를 확립하는 큰 목표를 달성하는 등 수학적 토대를 마련해 순수 수학 및 이론물리에의 여러 응용을 모색할 예정이다.

그는 "연구소가 나가야 할 학문적 방향을 설정하고 총체적 목적 달성을 위해 전 구성원 간 학문적 교류를 장려해 분야 간 벽을 허물어 나갈 것"이라며 "융복합연구를 넘어 국내에서 그 기초가 확립되고 전 세계 학계를 선도하는 새로운 학문분야 창출을 추구 할 것"이라고 전했다.

◆ "한국 수학 도약, 지금이 기회다"

오 단장은 "한국 수학의 도약은 지금이다"고 말했다.
오 단장은 "한국 수학의 도약은 지금이다"고 말했다.
현재 오 단장은 기하학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촉망받는 수학자 중 한 사람이다. '사교위상수학의 플로어 호몰로지 이론'에서 중요한 응용방법을 규명한 업적을 인정받아 '젊은 과학자 상'을 수상했으며, 한국인 최초로 국제수학자총회에서 초청 강연을 한 바 있다.

또한 얼마 전에는 세계 최대 수학단체인 미국 수학회가 선정한 초대 펠로에도 선정돼 이목을 끌었다. 초대 펠로는 총 1119명의 수학자가 선정됐으며 한국인 수학자로는 최영주-오용근 교수를 포함해 미국 브라운대 오희 교수, 고등과학원 황준묵 교수, 서울대 박종일 교수 등 총 5명이 펠로의 영광을 안았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수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경암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국내외적으로 업적을 인정받고 있는 만큼 오 단장에게 기대하는 바도 클 수 밖에 없다. 그는 "한국 수학계가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단계다. 지금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다"며 "한국 수학은 지난 15년 전만 해도 매우 뒤처져 있었다. 그러나 내년 세계 수학자 대회를 우리나라에서 개최할 만큼의 수준을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국제수학연맹이 4년마다 여는 이 대회에는 100여 개 나라에서 4천여명의 수학자가 참가하는 세계 최대 수학학술 행사다. 행사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나라마다 매겨지는 수학 등급에서 4등급 이상을 획득해야 한다. 그 전까지만해도 2등급이었던 한국이 4등급으로 업그레이드 한 데에는 모든 수학자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노력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 단장은 "수리 분야 기초연구단이 선정된 것 역시 수학계 발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며 "연구단에서 새로운 수학 분야를 확립해 나갈 수 있도록 연구에 몰두해 나갈 것"이라고 피력했다.

◆ 연구단 중요 미션 중 하나는 후학 양성…연구단 교류 통해 문화 만들 것

"수학과 이론물리 융복합연구를 위해서는 두 학문 분야를 포괄하는 전공자들로 구성된 그룹리더와 IBS 정년트랙 조교수 등을 한 테두리 안에 묶어 유기적 상호작용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완전 새로운 형태의 연구소를 추구할 것이다."

캠퍼스 연구단이 좋은 이유는 젊은 수학자들과 거리낌없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 단장은 "포스텍의 캠퍼스 연구단으로 수학과 뿐 아니라 물리학과(이론물리분야) 그리고 아·태이론 물리연구소(APCTP)의 우수한 교수진과의 활발한 연구교류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외에도 연구단의 우수한 인적자원 추가를 통해 관련분야 미래의 리더 양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확립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구단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로 후학 양성을 꼽기도 했다. 지난 시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해 온 한국 수학계의 미래를 위해서도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오 단장은 "아직까지 미국에서 유학하는 국내 수학자들이 많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주류에 속해있다"며 "발전하다보면 바뀌게 돼 있다. IBS 연구단을 통해 젊고 유능한 수학자들이 많이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노벨상 부담? 가져야 하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즐기는 연구'를 하겠다"

갤러리형 연구실은 강의실이 되기도 하고, 까페가 되기도 하고, 공부방이 되기도 한다.
갤러리형 연구실은 강의실이 되기도 하고, 까페가 되기도 하고, 공부방이 되기도 한다.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으로 과학기술 정책이 바뀐다면 노벨상도 가까운 장래에 현실화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최대한 즐기는 연구를 해야 한다."

오 단장이라고 노벨상에 대한 부담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IBS 연구단 자체가 노벨상 수상을 하나의 목적으로 두고 있어 다른 여느 과학자들보다 압박감은 더욱 더 심할 터였다.

그는 "미국에서 이공계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한국인의 70%가 현지에 남아있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국내 과학자의 상당수가 선진국에서 일하고 싶어한다"며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사기진작 부분도 있지만 과학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국은 근대화 이후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산업적인 활용도가 높은 연구에 대한 지원을 집중해왔다. 단기간에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선택한 전략이었다. 그럴수록 과학의 기초체력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 밖에 없었고, 국가 경제의 지속 성장은 희망 섞인 바람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오 단장은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해서는 기초과학의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민의 관심과 지지가 뒷받침되는 사회적 합의가 미약하기 때문에 과감한 정책 전환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현실은 과학자들의 연구 의욕을 상실케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IBS의 연구단 지원이 그 예다. 기초과학 연구에는 거대한 자원과 인프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과학 연구 수행에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지원 시스템의 구축은 과학자가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창의적인 연구 환경 조성으로 이어진다"며 "활용할 수 있는 자원에 큰 제한이 없고, 연구자들의 의사 반영이 수월한 자유로운 환경에서 더 뛰어난 연구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오 단장은 "과학자들이 단순히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하는 연구, 잘할 수 있는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은 연구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다. 어떤 사람이든 즐기는 자를 이길 수는 없다"며 "과학자들이 연구에만 몰두해 노벨상 수상의 쾌거를 이루고 과학기술 정책 담당자들은 소신있게 지원할 수 있어야 과학강국으로의 도약을 앞당길 수 있다"고 소신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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