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DNA를 키우자⑮] 순수 비타민 C 안정화 기술 '바이오제닉스'
손태훈 대표 "벤처에서 새로운 미래를 찾았다"

벤처붐이 사그라지기 시작한 2005년. KAIST 동기동창이던 손태훈 바이오제닉스 대표와 공동 창업자인 김철환 전 대표는 서로 다른 벤처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손 대표는 바이오 업체의 재무담당 이사로, 김 전 대표는 화학재료 업체의 연구소장으로 '벤처'라는 울타리 내에 각기다른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대학 동기동창이고 벤처에 종사한다는 공통점이 있어 둘은 퇴근 후에 종종 만남을 가졌다. 더욱이 둘 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근무한 뒤 벤처기업에 있었던 터라 그 누구보다 통하는 게 많았다. 둘은 자연스럽게 만나 벤처기업에서 겪는 애로점과 어려움을 서로 나누고 소통하며 대기업과 벤처를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그러던 중 벤처창업 열풍이 한풀 꺾이며 기업가정신과 도전정신이 희미해진 상황에서 우리나라 벤처의 미래와 벤처가 지향해야 할 가치 등으로 이야기가 넓혀져 자신들의 속내를 허물없이 얘기하게 됐다. 만남이 잦아지면서 둘은 '자신들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라는 공통된 화두 속에 새로운 도전을 벤처에서 찾기로 하고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대기업과 벤처기업을 모두 경험했기에 서로 의기투합하면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장단점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벤처를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그리고 아무도 하지 않는 우리만의 사업모델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다.

"김 전 대표와 저는 대학, 대기업, 벤처기업 등 걸어온 길이 같았고, 대기업과 벤처기업에 근무할 당시 각각 사업기획과 연구 분야를 두루 경험했기에 이를 제대로 접목시키면 우리가 지향하는 비전과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이상적인 사업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데 공감하게 됐죠. 다시 말해 저의 사업기획 및 재무관리 역량과 김 전 대표의 기술적 역량을 결합하면 기술벤처의 장점은 잘 살리면서 단점은 최소화할 수 있는 벤처기업을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 섰던 것이죠."

이러한 확신과 믿음이 서로의 가슴 속에서 공명하자 벤처창업을 위한 준비 작업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결국 1년 반 가량의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친 끝에 2006년 7월 지금의 '바이오제닉스'라는 이름으로 벤처 깃발을 올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창업을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저와 김철환 전 대표 모두 벤처에서 일했고, 지인들의 창업과정을 지켜봤기에 창업 준비가 완벽하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학습이 돼 있었던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서로 각자의 일이 끝나면 만나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창업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철저한 준비와 전 직원이 공감하는 비전을 가져라

손 대표는 지금도 벤처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창업 준비를 철저하게 하라'고 조언한다. 특히 창업 준비 과정에서 회사의 비전(Vision)을 세우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라고 말하곤 한다. 이 점은 손 대표와 김 전 대표가 창업을 준비하던 당시 반드시 실천했던 사항이고 가장 공들였던 부분이기도 했다.

비전 수립은 회사 설립 이후에도 계속됐을 정도로 중요시했던 것 중 하나였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비전은 '우리는 고객의 아름다움과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공한다'였다. 창업 아이템이 화장품의 원료로 사용되는 생리활성소재였기에 이 같은 비전을 수립한 것이다.

"잭 웰치가 강조했듯이 위대한 기업은 일관되고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경영한 기업입니다. 비전이라는 것이 CEO를 비롯한 몇몇 회사 임원들만이 공감하고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전 직원이 따르고 행동할 수 있도록 내재화돼야 비로소 비전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손 대표는 이러한 비전이 직원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 내고 실천력을 발휘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도록 신입직원 교육 때 가장 먼저, 가장 철저히 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노력은 직원들이 공감할 수 있을 때까지 진행됐다. 

이는 회사의 비전을 직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내는 것 역시 CEO의 몫이라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직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비전은 제 아무리 강조해도 가슴에 와 닿지 않아 실천력으로 승화되지 못한 채 추동력을 잃어 결국 회사의 발전도 더뎌질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그만큼 많은 정성과 노력, 시간을 들여 공감을 이끌어 내는데 안간힘을 썼다.

비전 수립과 함께 비전을 실천할 수 있는 미션(mission)도 정했다. '생리활성소재 분야에서 최고의 기업이 되자. 우리는 최고의 기술력과 제품으로 관련 업계를 선도할 것이다'를 바이오제닉스의 비전을 실천할 미션으로 결정했다.

비전과 미션이 확정되자 회사의 핵심가치도 정해졌다. 첫째,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고객에게 최상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둘째, 자신들과 회사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함으로써 언제나 업계를 선도한다. 셋째, 직원 개개인을 존중하고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개인보다는 전체를 먼저 생각한다. 넷째, 우리의 제품과 서비스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고객과 사회에 이바지한다.

이 네 가지가 바이오제닉스의 미래를 이끌어 가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핵심가치로 지금껏 직원들의 가슴에 자리 잡고 있다.

"비전, 미션, 핵심가치를 지향하는 우리의 모토는 'Beyond The Limit'입니다. 고객의 아름다움과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어떠한 어려움이나 난관도 극복하겠다는 바이오제닉스인의 창조적인 프론티어 정신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리활성소재 실험실 전경.
생리활성소재 실험실 전경.

◆차별화된 기술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다

바이오제닉스는 바이오로부터 유래된 업종을 영유하는 회사라는 의미에서 지어졌다. 창업 아이템은 보유한 원천기술 즉 안정화 및 캡슐화, 나노화 가용화 기술들을 활용할 수 있는 생리활성소재 분야와 전자 재료 분야인 전자잉크 등으로 정했다. 생리활성소재 분야는 우선적으로 화장품 분야에 적용하기로 하고  고기능성 기초 소재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에 주력했다.

국내 화장품 시장이 해외 명품 브랜드와 국내 대기업들이 양분하고 있는 상황에서 화장품 완제품으로 시장에 진출하기 보다는 이들 업체에게 바이오제닉스만이 갖고 있는 차별화된 소재를 제공함으로써 승부를 건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해외 명품 브랜드 화장품과 국내 화장품 대기업조차 자체적으로 화장품 소재를 개발해 사용하기보다는 외부에서 개발한 소재를 발굴해 적용하는 C&D 전략을 대부분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로부터 기술력만 입증 받으면 시장 공략에 용이할 것이라는 판단에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화장품 소재야말로 거대 기업이 경쟁을 다투고 있는 국내외 화장품 시장에서 틈새분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향후에는 화장품 소재 시장에 머물지 않고 생활용품, 음료, 건강식품, 의약 등의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나갈 수 있다는 점도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게한 이유가 됐다. 

하지만 소재분야는 장기간에 걸친 연구개발(R&D)과 함께 많은 인력과 자금이 지속적으로 투입돼야 한다는 점에서 자금과 인력 측면에서 열악한 벤처기업에겐 진입 장벽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것도 신생 벤처기업이 감당하기 쉽지 않은 분야인 것이다. 

대내외적으로 녹록치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손 대표가 이러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화장품 소재분야에서 차별화된 기술 경쟁력을 갖고 오랜 기간 창업 준비과정을 거치면서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에 창업과 동시에 제품으로 출시가 가능한 4개의 사업 아이템을 갖고 출발한 점도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로 하는 화장품 소재 시장에 뛰어들 수 있게 한 요인이 돼 줬다. 4개의 사업 아이템은 곧바로 제품 출시로 이어져 바이오제닉스가 기업으로 생존해 갈 수 있는 토대가 됨과 동시에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시드 머니가 돼 줬다.

"우리나라 메이저 화장품 회사의 소재 기술력은 한방 추출물, 천연물질 추출물 등 아시아 지역 사람들에게 적합한 아이템이기에 아시아권에서는 경쟁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반면 화장품의 최대 시장인 미국을 포함한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아이템이었죠. 서구인들에게 한방 물질과 천연 추출물 등에 기반한 화장품 소재는 어필 할 수 없는 기술 콘셉트였습니다."

그래서 바이오제닉스는 국내 화장품 소재 시장보다는 해외 화장품 소재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기술 콘셉트를 타깃으로 연구개발을 착수했다. 그 결과, 물질 안정화 기술과 캡슐화 기술, 가용화 기술, 나노화 기술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핵심 원천특허를 가질 수 있게 됐다. 관련 특허만 45건에 이르게 됐다.

◆글로벌 기업으로 꿈을 키우다

Micro Bead Fludizer(유동층 코팅기).
Micro Bead Fludizer(유동층 코팅기).

기술력으로 무장한 바이오제닉스는 부푼 꿈을 꾸며 본격적인 국내외 시장 진출에 나섰다. 기술만큼은 자신이 있었고, 국내외 파트너들이 기술력을 인정했던 터라 조만간 '대박'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매년 화장품 해외 전문 전시회에 참가했는데, 해외 바이어들의 반응이 무척이나 뜨거워 대박을 향한 희망은 점점 커져만 갔다.

하지만, 전시회 이후 그토록 좋은 반응을 보였던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다른 해외 바이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자, 희망은 실망으로 변해갔다. 그때서야 '우리가 너무 기술력만 믿고 안일하게 준비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

제품만 있었지, 그 제품을 신뢰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는 관련 데이터와 자료가 너무나도 부족했고, 생산시설이 국제적 수준에 미치지 못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면 정말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기대도 많이 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어떠한 피드백도 없더라고요. 화장품 분야의 세계적 기업인 로레알도 직접 우리 회사를 찾아 생산시설 등을 둘러보며 실사를 하고 갔지만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상하다 생각했죠."

이유는 간단한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들이 지향하는 기술 콘셉트와 시장상황이 우리와 맞지 않았고, 제품의 질도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었다. 생산시설도 국내에서는 최고 수준을 자랑했지만, 세계적인 시설과 비교하면 미흡했던 게 원인이었다.

이대로 물러날 수 없었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다시금 신발 끈을 고쳐매고 새롭게 시작했다. 남들이 하지 못하고 진입을 꺼리는 분야를 타깃으로 삼아 화장품 소재 개발에 적극 나섰다. 바이오제닉스만의 차별화되고 독창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이를 위해 화장품 소재에 일반적으로 쓰이는 바이오 기술에 나노기술을 접목시킨 이른바 ‘나노바이오 기술융합’을 통한 기술개발에 주력하며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비타민C 안정화 기술이었다. 바이오제닉스는 생리활성소재의 100년 난제인 순수 비타민C를 안정화시킬 수 있는 독창적인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이를 통해 국내 굴지의 화장품 대기업인 태평양, LG생활건강, 한국화장품 등에 소재를 공급할 수 있게 됐으며, 국내를 대표하는 화장품 OEM 기업 및 중저가 화장품 회사 등에도 납품하는 결과를 얻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태평양, SKT, 대덕연구개발특구의 이노폴리스파트너스 등으로부터 투자유치에도 잇따라 성공함으로써 생산시설 확충 및 기술개발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하게 됐다. 이처럼 국내에서 물꼬가 터지자, 해외에서도 투자제안 및 소재공급 등을 요청하는 연락이 이어졌고 미국과 유럽 등의 화장품 회사에 소재를 공급하거나 투자를 받아낼 수 있었다.

특히 일본 최대의 상사 중의 하나인 스미토모는 바이오제닉스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하고 투자를 제안해 와 최종 협상을 거쳐 지금은 대주주로서 회사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 최대의 종합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에 화장품 소재를 공급키로 하는 등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을 눈앞에 두고 있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로레알은 3-5년 전부터 바이오제닉스를 눈여겨보고 화장품 소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생산시설과 차별화되고 독창적인 기술력, 재무 건전성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검토한 결과, 바이오제닉스를 파트너로 최종 결정했다.

바이오제닉스가 공급하는 화장품 소재는 대부분 미백 효과 증대나 주름개선제 화장품으로 소비자들에게 판매되고 있다.

"남들이 하지 못하고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기술개발에 주력했기 때문에 국내 유수의 화장품 회사는 물론 세계적인 화장품 기업들이 작은 나라 한국의 화장품 소재 기업인 바이오제닉스의 문을 두드리게 된 거죠. 결국 창업 때부터 우리가 화장품 소재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게 되면 70-80% 가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화장품 소재 시장의 수입 대체 효과를 가져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또한 글로벌 화장품 기업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어 글로벌 화장품 소재 전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현실로 꽃을 피우고 있는 겁니다."

환한 웃음을 띠며 얘기하는 손 대표의 말에 올해에야말로 바이오제닉스가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해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스미토모와 로레알 등 세계적인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올해는 글로벌 시장 진출의 원년이 될 것이라는 각오도 느낄 수 있었다.

손 대표는 미래 먹을거리와 관련, 사업 다각화를 위한 포트폴리오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바이오제닉스가 강점을 갖고 있는 생리활성소재 관련 다양한 기술력을 생활용품, 건강식품, 의약품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을 담은 사업 포토폴리오를 올해 중으로 마련, 제2의 창업을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올해는 국내외 유수의 화장품 기업과의 탄탄한 네트워크 및 협력체계를 바탕으로 화장품 소재 분야에서 시너지를 창출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해 화장품 소재 분야의 글로벌 기업으로 한 단계 도약함으로써 최고의 기술력과 제품으로 관련 업계를 선도해 가며 수 년 내 생리활성소재 분야의 최고 기업으로 만들어 가겠습니다."

바이오제닉스의 순수 비타민 C 화장품 브랜드 '시샘(C-SEM).
바이오제닉스의 순수 비타민 C 화장품 브랜드 '시샘(C-S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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