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년 대비 7∼8월 전력 사용량 15% 절감…냉방기 다 꺼도 지침 못맞춰
연구현장 "연구하기에도 숨막힌 환경"-"그래도 에너지 절약 앞장서야"

출근하면 신발을 벗고 선풍기를 튼다(선풍기도 맘껏 틀 수 없다). 온도계는 30도에서 내려올 줄 모른다.
출근하면 신발을 벗고 선풍기를 튼다(선풍기도 맘껏 틀 수 없다). 온도계는 30도에서 내려올 줄 모른다.
"연구원 말고 밖에서 만나면 안될까요?"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에게 대뜸 밖에서 만나자는 B 박사. 그는 "연구원 내부 평균 온도가 30도다. 숨막혀서 연구하기도 지친다"며 "나갈 수 있는 일이 생기면 대부분 밖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우리 연구원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연구원들이 다 그렇다. 아직 7월인데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 어떻게 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원전 비리 저지른 사람들, 원망 안할 수 없죠."

A 박사 역시 지금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땀이 비오듯 쏟아져 내려오면 온 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듯 찝찝함이 퇴근할 때 까지 계속된다. 그렇다고 바쁜 일정에 쉴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일일이 씻는 여유는 생각할 수도 없다. 그는 "원전 비리 저지른 그 놈들만 아니었어도 조금은 여유가 있었을 것"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 모두가 에너지 사용 절약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겠지만 힘든 건 사실이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에너지 절약 지침으로 대덕연구개발특구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찜통연구소로 전락하고 있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에 과학자들의 업무 능률 저하가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연구원 관계자들은 앞으로 더욱 더 더워질 7월과 8월달 여름 나기에 골몰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윤상직)가 발표한 '2013년 하계 에너지사용제한 공고'에 따르면 에너지 사용제한 조치는 지난 달 18일부터 8월 30일까지 적용된다. 예년보다 높은 기온과 원전 3기 정지로 최악의 전력난이 예상됨에 따라 대규모 전기 사용자에 대한 전력 의무 감축을 시행하고, 전기 다소비 건물의 냉방온도를 제한하는 등의 의무가 부과됐다.

또 여름철 전력 피크시간대(오후 2시부터 5시)에는 에너지 다소비건물 476곳과 공공기관의 냉방기는 상시 순차 운휴한다.

문제는 공공기관에 대한 의무 사용량 절감 조치다.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냉방 온도를 28℃로 제한하고, 7∼8월 전기 사용량을 전년 동기 대비 15%를 절감함과 동시에 전력 피크 시간대 전기 사용량을 20% 절감하는 조치를 병행하도록 했다.

이같은 지침에 출연연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 연구원의 시설과 직원은 "현재 틀고 있지도 않지만, 냉방기를 다 끈다고 해도 지침에 맞추지 못한다"며 "이미 지난해 전년대비 10% 줄이라고 해서 줄였는데, 올해는 작년 기준으로 또 에너지를 절감하려고 하니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재작년 기준으로 25% 사용량을 줄이는 셈이다"고 설명했다.

실내온도가 28도 이상일 때는 냉방기를 가동할 수 있도록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은 게 연구원의 입장이다. 분기별로 에너지 절감 실적이 집계돼 다른 공공기관과의 눈치싸움을 해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느 때 불시점검이 진행될 지 몰라 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도 다 옛말이다. 요즘같아선 불이 켜져있는 연구원을 보기 힘들 정도다. 50% 이상의 형광등을 소등하고 있다. 대기전력 차단 기능 기기 사용과 고효율 에너지 사용을 위한 인버터 설치, LED 교체 등 에너지 절약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일 찌는 더위에 과학기술자들의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충남대학교병원의 한 관계자는 "무더위는 스트레스를 증가시켜 혈압을 상승시키고 심장박동수를 증가시키며, 혈당수치도 높인다"며 "결과적으로 더위로 인해 우리 몸의 체온조절시스템에 과부하가 가해지면 여러 가지 질환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산자부 관계자는 "연구 기관 역시 연구 목적에 따라 융통성있게 진행을 하려고 하고 있다. 우리가 세운 지침은 가이드 라인일 뿐"이라며 "일반적으로 에너지 절약을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더위를 견뎌라 하는 입장은 아니다. 건건이 다 파악할 수도 없다. 모두에게 이득이 갈 수 있는 방법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대답했다.

◆ 대덕특구 내 출연연 9곳, 집중휴가 예정

전력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출연연 9곳이 집중휴가에 들어간다. 대상 기관은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등 9곳이다.

ETRI는 오는 29일부터 내달 2일까지 정규직 및 파견직 연구원과 직원 등 2500여명 가운데 연구부서 등 필수 운영인력을 제외한 직원들이 동시 휴가를 간다.

정부의 에너지절약 시책에 동참한다는 취지에서 실시되는 것으로, 휴가기간 에어컨 등 냉방장비 가동이 중단되고 조명도 끄게 된다.

에너지연과 천문연, 한의학연도 같은 기간 여름 동시휴가를 실시한다.

에너지연은 전년보다 에너지는 30% 이상 절감하고 실내온도는 25도 이상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3025 하절기 에너지절약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김민성 에너지연 에너지효율연구단장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연구원 전체의 냉난방에 소요되는 에너지량을 20%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며 "현재 설비를 건설 중에 있다. 2년 안에는 이 설비를 이용해 에너지 이용량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지질자원연도 오는 24~30일(주말 포함) 집중휴가제를 실시하며, 이 기간 구내 식당도 문을 닫는다. 생명연은 7월 24~26일, 8월 5~7일 2차례로 나눠 집중휴가를 실시하며, 휴가 기간 구내식당 메뉴를 단일화하고 중요한 회의도 잡지 않을 계획이다.

표준과학연구원과 한국기계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도 내달 5일부터 9일까지 집중휴가를 실시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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