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기념식서 마지막 인사 "자랑스러운 지질연 되어달라" 당부
2월초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투병중에도 연구원 걱정만"

이효숙 원장은 9일 열린 지질자원연 창립기념식에서 사실상 공식적으로는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이효숙 원장은 9일 열린 지질자원연 창립기념식에서 사실상 공식적으로는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원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전직원이 한마음돼서 지속적인 우수 연구성과 창출을 노력해 줄 것을 기대합니다."

이효숙 지질자원연 원장의 마지막은 담담했다. 그는 9일 열린 창립기념식에 참석해 연구원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며 "자랑스러운 연구원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얼굴은 파리했지만 희미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이 원장은 이날 열린 창립기념식에서 사임 의사를 밝히고 원장직에서 물러났다.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었다. 지난 2월 초 진단받은 이 원장의 병명은 급성골수성백혈병. 비림프구성 또는 골수에서 만들어지는 골수성 백혈구의 줄기세포에서 발생한 악성종양으로 치료받지 않는 경우 수개월 이내에 사망하는 급성 질환이다. 원장이라는 중차대한 직무에 집중할 수 없는 상태였다. 진단받은 후 한참을 쉬쉬했지만 눈에 보이는 이 원장의 건강 악화는 숨길 수 없는 부분이었다.

지질자원연 관계자에 따르면 이 원장은 진단을 받은 이후에도 병원 치료와 업무를 병행했다. 그러나 무리였다. 회복이 됐다고 하더라도 과로를 하게 되면 더 안 좋아질 수 있는 질환이었다. 안타깝지만 이 원장은 연구원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연구원에 들어온지 38년만의 일이다. 1976년 연구원으로 입원한 그에게 지질자원연은 고향과도 같다.

지난 2011년 여성과학기술인으로는 3번째로 출연연 기관장에 선임된 이 원장은 특유의 꼼꼼함과 세심함으로 연구원을 이끌어왔다. 연구원, 선임연구원, 책임연구원, 주요 보직자 자리까지 두루 거쳐온 이 원장은 연구원들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우수 연구자에 대한 특별 포상을 진행해 사기를 진작시켰고, 출연연 최초로 어린이집 건립에 나서 여성과학기술인들에게 힘을 보태기도 했다.

기관장이 되기 전부터 직장 어린이집의 필요성을 느껴왔다는 이 원장은 선임되자마자 프로젝트를 가동시켰고, 그의 지시를 받은 실무팀은 전국에서 시설과 프로그램이 가장 우수한 어린이집들을 방문해 벤치마킹 했다. 

당시 이 원장의 어린이집 건립 포부는 많은 과학기술인들에게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는 "인성이 바르고 꿈이 있는 어린이를 키우는 것이 소망이다. 직원들이 안심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최고의 육아서비스를 지원하겠다"며 "성공적인 어린이집 운영을 위해 자질이 훌륭한 교사 유치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간부 워크숍에 참석해 드럼을 두드리는 방법을 배우는 이효숙 원장(가운데).
간부 워크숍에 참석해 드럼을 두드리는 방법을 배우는 이효숙 원장(가운데).
연구원 설립 100주년을 위한 준비도 차근 차근 진행했던 그였다. 지난해에는 핵심 간부 15명과 설립 100주년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원장은 "무엇보다 '호흡'과 '화합'의 중요성을 체감했으면 했다"며 "연구원의 브랜드가치를 높이는 일에 리더들의 힘이 필요한 때다. 지질자원연의 영원한 존속과 발전을 위해서는 리더들이 촉매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연구원과 관련된 일이라면 몸사리지 않고 뛰었던 그의 사임이 안타까운 이유다. 연구원 관계자는 "업무나 이런 부분 때문에 병이 생겼다고 하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며 "직접적인 원인이야 밝혀진 바가 없지만 그래도 여성과학기술인으로서 힘든 일을 잘해오셨는데, 아무쪼록 건강이 좋아지시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지난 9일 마지막 강단 자리에서 "한 세기 역사를 가진 연구원은 국내에는 없고,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그만큼 역사와 전통을 가진 연구원에서 근무한다는 자긍심을 가져도 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동안 국가의 지속적인 성장 마련 등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항상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과학자들에게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고 인사했다.

이어 그는 "새로운 정부와 미래창조과학부가 출범하면서 과학기술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창조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과학기술 연구개발 체제와 성고가 요구되고 있다"며 "생각으리 발상을 새롭게 한다면 창조적인 아이디어나 기술이 나올 수 있다. 창조경제에 끊임없이 도전해달라"고 부탁하며 단상에서 물러났다.

한편 이 원장의 사임으로 지질자원연은 당분간 수장 공백 상태를 맞이하게 됐다. 산업기술연구회는 조만간 신임 원장 선출 작업을 위한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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