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전 우수하다" 빌 게이츠 초청으로 지난해 8월 첫 만남
박대통령 취임식 초대했지만 불발…22일 청와대서 회동 성사

빌 게이츠와 장순흥 KAIST 교수가 21일 서울대학교에서 만났다.
빌 게이츠와 장순흥 KAIST 교수가 21일 서울대학교에서 만났다.
빌 게이츠 테라파워 회장과 장순흥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인류를 구원할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원자력 에너지를 주목하고 있는 두 대가의 인연은 지난해 8월 빌 게이츠 회장이 장 교수를 미국으로 초청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극빈층의 에너지 비용을 낮춰주고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을 보여온 빌 게이츠 회장은 2008년 3500만달러(약 400억원)를 투자해 테라파워를 설립하고 차세대 원자력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국과 미국의 원자력 기술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에 착안, 국내 전문가를 수소문해 장 교수를 찾아냈다. 그 뒤부턴 일사천리였다.

장 교수는 당시 상황에 대해 "가서 만나 보니 한국의 원자력 발전과 전력 체계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다"며 "무엇보다 우리의 값싼 전기료와 우수한 원자력 기술을 부러워했다"고 전했다.

사실 IT 황제로 군림하던 빌 게이츠 회장이 원자력 에너지 전도사로 전격 나선 것에 대한 의문도 상당수 존재했다. 여기에 IT와 원자력, 이어질 것 같으면서도 이어지지 않는 두 분야의 거리감이 일반인들이 받아들이기에 상당했던 것도 보탬이 됐다.

장 교수는 "자동차와 인터넷은 결국 전기 게임이다. 전기는 국민 삶의 질을 결정하는 기준이다"며 "한국의 IT 경쟁력은 바로 저렴한 전기료에 있다는 것이 빌 게이츠 회장의 판단이었다. 엄청난 전력 소모가 불가피한 IT의 발전을 위해서는 값싸고 충분하며,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다"고 설명했다.

빌 게이츠 회장은 한국의 원자력이 IT 강국을 이끈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장 교수는 "빌 게이츠 회장과 내가 내린 결론은 한 가지다. 원자력이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안전하다는 것"이라며 "한국 원자력의 국제 경쟁력은 국민 모두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큼 세계 최고 수준이다. 빌 게이츠를 비롯한 많은 미국 기업가들이 왜 한국의 원자력 발전을 칭찬하고 부러워하는지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해 8월 이뤄졌던 만남은 올해 4월 다시 성사됐다. 이번 빌 게이츠 회장의 방한은 사실 장 교수와의 고속로 개발 협력 때문이었다.

박원석 한국원자력연구원 SFR(소듐냉각고속로) 개발사업단장은 "장 교수가 대통령 취임식 때 빌 게이츠를 초청하려고 했다. 일정이 안 맞아서 못 오게 된 빌 게이츠 회장이 장 교수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축하 서신을 보냈다"며 "그때 올해 4월에 다시 오겠다고 해서 이번에 방문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21일 빌 게이츠 회장과 면담한 뒤 "현재 4세대 원자로 개발을 추진 중인 원자력연이 테라파워와 공동으로 원형로(프로토타입)를 개발하는 방안을 협의했다"며 "이를 위해 3개월간 타당성 조사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빌 게이츠 회장은 22일 국회에서도 "한국 방문 목적은 4세대 원자로의 장점 때문에 개발 부분에서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서다"며 "한국이 바로 그러한 새로운 4세대 원전의 돌파구를 만들 수 있는 리더십 국가"라고 강조했다.

빌 게이츠 회장이 개발하고 있는 진행파 원자로(TWR)와 한국의 SFR의 경우 금속 연료를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합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가능한지에 대한 여부를 앞으로 공동연구 할 계획이다. 이미 연구원 측은 테라파워 측과 기술 협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이 공동 개발할 기술은 물 대신 소듐 액체를 냉각제로 사용해 핵발전 효율을 60배가량 높이는 4세대 원자로다. 수십년간 핵연료를 갈아 끼울 필요가 없어 안전성을 높이면서도 방사성 폐기물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장 교수는 빌 게이츠 회장의 원자력 에너지 옹호론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에게 에너지는 세 종류다. 화석과 원자력, 신재생에너지인데, 화석 에너지는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신재생에너지는 아직까지 비싸고 공급량이 턱없이 적다"며 "그렇게 생각했을 때 남는 건 원자력 밖에 없다.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원자력 밖에 대안이 없다는 게 빌 게이츠 회장과 나의 공통적인 생각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 교수는 "빌 게이츠 회장이 전 세계 에너지 난을 해결하기 위해 어디에 투자를 해야 할 것인가를 자문 받기 위해 세계 현자라는 사람을 다 불러 자문을 받았다"며 "모든 관련된 전문가들에게 전체적으로 브리핑을 듣고 내린 결론이 원자력 발전이었다는 이야기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미국에서 성공한 기업가들은 공통적으로 미래를 위한 투자에 적극적이며 이를 위한 핵심 사업을 파악해내는 통찰력을 갖고 있다"며 "원자력 전도사로 나선 빌 게이츠뿐 아니라 미국에서 만난 다수의 기업인 역시 이런 관점에서 미국의 미래, 나아가 전 세계 공통의 미래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로 전력과 원자력을 지목했다"고 말했다.

빌 게이츠 회장과의 인연은 앞으로도 계속 될 전망이다. 장 교수는 "빌 게이츠 회장과 원자력 에너지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에 앞으로의 일도 함께 진행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중요한 것은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위험성을 바꾸는 것이다. 홍보를 잘 해 나가야 하고, 그에 대한 빌 게이츠 회장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여겨진다"고 피력했다.

한편 빌 게이츠 회장과 장 교수는 22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 자리에서도 이같은 협력 계획을 소개하고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빌 게이츠 회장에게 "이 시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인재 모델이다. 창의성과 빈곤퇴치를 위해 애를 많이 쓰고 계신데, 사회적 책임도 겸비했다"고 극찬하며 새 정부 정책 기조인 창조경제와 ICT 선순환을 위한 생태계 조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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