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밀 가공기' 개발 박천홍 기계연 박사·조순주 세스코 대표
기획부터 원천기술·상용화까지 협업 "어떤 문제든 해결 자신감"

"2007년 12월 처음 시작한 과제는 대면적 미세가공에 필요한 미세가공장비, 미세가공공정, 미세성형공정 등의 원천기술을 모두 개발하는 것이 최종목표였습니다. 과제가 완료되면 디스플레이의 백라이트유니트(BLU)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부품을 국산화하는 것은 물론 장비, 가공, 성형기술, 제품화까지 모두 우리 손으로 할 수 있게 되죠."

초정밀 분야에서만 20여년 한 우물을 판 박천홍 한국기계연구원 첨단생산장비연구본부장. 그는 올 3월 과제 2단계를 마치며 초정밀 롤 금형 가공기의 원천기술을 개발, 상용화에 성공했다. 성공의 바탕에는 과제 기획 단계부터 기업·대학들과 함께하며 시장을 공략, 조기에 성과를 창출할 수 있었다. 이번에 개발된 초정밀 롤 금형 가공기는 지난달 15일 본원이 위치한 대전을 떠나 인천의 연삭기전문업체 세스코로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원천기술 개발에 성공한 후 상용화를 위해 기업으로 장비를 이전하는 길. 이 자리에는 기술개발과 상용화의 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박천홍 본부장과 조순주 세스코 대표가 함께했다. 세스코는 지난 2000년 1월 조순주 대표가 설립한 연삭기전문업체로 규모는 작지만 국내 정밀가공분야에서 손꼽히는 강소기업이다. 지난 2010년 9월 한국기계연구원이 선정한 'KIMM-Family' 기업으로 꼽힐 만큼 경쟁력과 성장 가능성을 모두 갖추었다. 기계연과 세스코는 2010년 12월 '유정압형 롤금형미세가공기' 기술이전 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산·연 공동연구가 국산화 성공 지름길…박천홍 본부장과 조순주 대표의 협동 비결   

▲ 공동연구를 통해 개발한 초정밀 롤 금형 가공기.<사진=한국기계연구원 제공> ⓒ2013 HelloDD.com
Q. 어떤 인연으로 함께 과제를 진행하게 됐나요?

박천홍 : TV 디스플레이가 점점 대면적화되면서 2007년 본격적으로 과제를 시작했죠. 롤 가공기는 원천기술로 기계연이 주도하고 이후의 최종 생산품이 될 백라이트 제품의 생산과정에 이르는 가공기, 성형기술 등을 시장의 가치 사슬대로 과제를 기획했습니다. 과제에는 원천기술로 롤금형을 가공하는 장비, 롤금형 가공기술, 롤금형을 이용해 제품을 찍어내는 성형기술. 이 세 개의 원천기술을 상용화 하는 기술을 양산할 수 있는 기업 3곳이 참여기업으로 함께했습니다. 보통 중소기업이 기계를 정밀하게 만드는 기술이 부족하지만 세스코는 기본적인 가공, 조립에 대한 기술력이 있었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조순주 : 창업 20년 간 전통적인 연삭기를 제조 판매하는 것이 주력사업이었습니다. 그 기술을 기본으로 레벨업 할 수 있는 분야를 찾던 중 초정밀 가공기를 알게 됐습니다. 과제를 진행하며 기계연 연구원들이 저희 회사에 1달에 2~3번씩 정기적으로 방문해주셨습니다. 저희는 장비를 만드는 것은 자신 있었지만 실제 장비를 갖고 롤가공을 하거나 성형하는 시장을 전혀 몰랐죠. 저희가 장비를 만들었다면 기계연은 장비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해줬습니다.

Q. 과제를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박천홍 : 우리는 둘 다 장비를 만드는 사람들이에요. 실용화는 장비를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요자가 필요하고 잘 쓸 수 있는 장비인가가 문제입니다. 때문에 처음부터 가치 사슬을 염두에 두고 개발을 진행한 것이 장점이 됐습니다. 또 과제에 직접 참여하진 않지만 최종 제품 수요자 등을 포함한 운영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공작기계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고 수요업계는 디스플레이 업계죠. 그런 분들을 운영위원회로 구성해 장비개발과 상용화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잘 수용해 방향을 잡았습니다.

조순주 : 과제의 총괄책임자인 박천홍 박사의 리더십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각 파트에서 총 5개의 과제로 이뤄졌는데 이를 잘 조율하고 이끄는 리더십이 중요하죠. 또 국내와 세계를 선도해야 하는 기술이기에 시장의 블루오션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박천홍 : 가장 중요한 것은 해보겠다는 생각이었어요. 한번 제품까지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이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많은 과제를 해봤지만 과제의 성패는 기획에 40%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서로 개발하려고 하는 구성원들이 의욕 있게 추진하려고 했던 것이 주요했습니다. 기획이 탄탄하게 잘 돼 있어 각자의 역할만 잘하면 잘 굴러갈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지경부가 우리 사업을 산업원천기술개발사업 시범사업으로 추진했던 점입니다. 이는 책임감을 느끼고 더 잘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원천기술과 실용화 기술을 함께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준 것에 감사드립니다. 조순주 : 기계연과 저희 모두 지금까지 공작기계를 핸들링 해왔는데 이번에도 공작기계를 갖고 자동차나 조선 등 기존의 사업체에 적용했으면 이렇게 좋은 성과가 나오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새로운 분야를 도전했기 때문에 더욱 진취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기업과 출연연이 함께 과제를 진행함으로써 얻는 장점은?

조순주 : 디스플레이나 광학계 쪽은 시장이 하루아침에 변합니다. 선진국의 경우 업체 업력과 역사가 오래되고 돈이 많아 선행연구가 굉장히 많이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사실 선행연구가 쉽지 않습니다. 5년 동안 이런 과제를 하다 보니 이제는 규모와 관계없이 어떤 과제라도 100%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 또 하나의 수확입니다.

박천홍 : 평생 연구를 하면서 불안했던 것 중 하나가 개발된 기술이 돈으로 따지면 얼마나 되는지, 국가세금으로 쓸모 있는 연구를 하는 건지, 나름대로 선행연구를 한다고 하는데 정말 쓰일 수 있는 것인지 늘 불안했습니다. 20여 년 전 개발한 기술이 아직 국내 시장이 열리지 않은 것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직접수요자인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연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또 그래서 기업과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기업과 함께 소통하지 않으면 시장이 필요한 기술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렵습니다.

◆ 원천기술 개발에 성공한 초정밀 가공기는?

이번에 개발된 가공기는 TV, 노트북 등의 디스플레이에 주로 사용되는 LCD Back Light Unit(BLU)용 대면적 미세패턴 광학필름 생산을 위한 초정밀 가공기다. BLU는 LCD와 같은 액정화면의 뒤에서 빛을 방출해주는 역할을 하는 광원장치로, BLU를 구성하는 도광판과 프리즘시트는 대표적인 대면적 미세가공 제품이다. 박천홍 박사팀이 개발한 초정밀 롤 금형 가공기는 LCD의 BLU를 구성하는 미세패턴 광학필름 생산을 위한 초정밀 롤 금형을 가공하는 장비로, 약 2m 길이의 롤 금형에 다이아몬드공구를 이용해 20~100㎛ 주기의 미세패턴을 균일하게 가공할 수 있다. PET 등의 베이스 필름에 UV(자외선) 경화형 광학소재를 코팅하고 프리즘 패턴, 렌티큘러 패턴 등 필요한 미세패턴이 미리 가공된 롤 금형을 코팅된 광학소재에 그대로 전사한 후, UV를 이용해 패턴을 경화시키면 베이스 필름 위에 미세패턴이 성형된 광학필름이 생산되는 것이 연속성형공정의 원리다. 해당 공정에 사용되는 미세패턴 마스터를 롤 금형이라 하며, 이 때 대면적의 롤 금형을 정밀하게 가공할 수 있는 장비인 초정밀 롤 금형 가공기가 필수적이다.

기계연이 개발한 초정밀 롤 금형 가공기는 전축에 유정압 베어링 및 리니어 모터 등의 무마찰 요소를 적용했으며, 2㎛/2m의 진직도 및 최대 온도상승 0.5℃ 이내의 냉각성능을 가지는 등 기술적 측면에서 선진국 수준의 성능을 달성했다. 그 동안 초정밀 가공기 분야는 기술적 어려움으로 인해 전량 미국, 일본 등에서 수입해왔다. 특히 초정밀 롤 금형 가공기는 대당 10~20억원에 이르는 고가 장비로 국내 기업들이 투자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으나, 이번에 기계연이 국산화에 성공하며 해외장비 보다 60~70%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이 가능하게 됐다.

또한 신제품 개발과 양산과정에서 국내 기업 간 협력이 강화돼 국내 광학필름 산업 분야의 가격 경쟁력 확보 및 기술력 향상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BLU용 광학필름 시장은 2012년 기준 약 45억 달러(약 4조9000억원) 규모이며, 기계연의 국산화 개발을 통한 수입 대체 효과는 연 100억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팀은 개발과정에서 설계·조립·구동·평가의 개발 전주기에 걸친 원천기술을 독자적으로 확보했다. 개발 기술은 참여기업인 세스코를 통해 상용화에 성공했으며, 현재 총 5대의 가공기가 판매돼 생산현장에 사용되고 있다.

기계연은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기존 다이아몬드 선삭에 초정밀 밀링 및 레이저 가공 기능을 복합한 차세대 초정밀 롤 금형 가공기 개발에 착수했으며, 광학필름뿐만 아니라 차세대 유연소자 생산에도 해당 기술을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이번 기술개발은 지식경제부 산업원천기술개발사업인 '대면적 미세 가공장비 원천기술 개발(참여기업 세스코)' 사업을 통해 진행됐다. 해당 과제는 2012년도 지식경제부 산업원천기술개발사업 혁신성과 과제로 선정됐으며, 2008년 한국산업기술평가원에서 주관한 전략기술발표회 기계부문 우수성과상, 2010년 산업기술연구회에서 주관한 R&D 속도전 장려상을 수상하는 등 그 성과를 인정받았다. 또한 논문게재 26편, 논문발표 76편, 특허출원 7건, 특허등록 4건 등 정량적 측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달성했다.

▲광학필름 양산을 위한 연속성형공정 모식도.<자료=한국기계연구원 제공> ⓒ2013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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