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관 봉착해 포기직전 R&D…다른 전문가와 대화도중 답 찾아
생명연 송대섭·정대균 박사, 융합연구로 '돼지백신' 개발 성공

송대섭 : 아~ 정말 개발하고 싶은 백신이 있는데 아무리해도 안돼서 이제 접어야 할까봐. 평생 한(恨)이 될 거 같아. 정대균 : 단백질 구조분석 할 수 있을 정도의 사이즈는 나왔어? 내가 한번 봐볼까? 구조만 안정되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거든.
"바이러스만 다루는 제가 바이러스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과 단백질 구조 전문가가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더군요. 몇 년째 상용화 단계에서 발목을 잡혔던 연구 프로젝트의 단백질 염기서열을 보내드렸더니 하루 만에 안되는 이유를 알겠다는 답변이 왔어요. 그 뒤로 연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죠." 양돈산업에 큰 피해를 유발하는 '돼지써코바이러스(PCV2)'의 재조합백신 제조 기술개발과 기술이전에 성공한 송대섭·정대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두 박사의 융합연구 스토리가 연구실 벽을 넘는 융합연구 성과로 연구현장에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송대섭 생명연 바이러스감염 대응 연구단 박사는 생명연 입사 전 약 7년간 몸 담았던 동물용백신회사에서부터 백신개발 업무를 진행해왔다. 회사를 그만두기 직전까지 관심을 가졌던 백신프로젝트가 양돈산업에 큰 피해를 유발하는 써코바이러스(PCV2)다. 국내에서 시장이 가장 큰 분야로 많은 국내 모든 백신회사들이 개발과 생산에 힘을 쏟았지만 결과는 매번 다국적 기업의 백신에 참패였다. "국내 제조사 백신은 가격도 더 비쌀 뿐 아니라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국내 백신은 공짜로 줘도 안쓰려는 분위기였어요."

생명연으로 적을 옮긴 2010년은 전국이 구제역 파동에 몸살을 앓을 때였다. 돼지써코바이러스는 국내 양돈산업에서 큰 경제적 피해를 유발하는 전신성 소모성 질병 증후군 (PMWS)의 주요 원인체 바이러스다. 전신성 소모성질병 증후군의 경우 돼지의 이유 후 폐사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병원체 중 하나로 양돈 농가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써코바이러스는 양돈산업을 위해 꼭 개발해야할 백신이었고, 또 미흡했던 성과에 대한 아쉬움으로 생명연에서도 연구를 지속했다. 하지만 다국적 회사 수준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실험실 규모까지는 연구결과가 좋았지만 대량생산에 늘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동물백신은 사람용 백신과 달리 개발과 생산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기 어려워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백신은 효과만 입증되면 몇 십 만원이 되도 팔리지만 양돈, 양계와 같은 산업 동물은 시장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동물 한 마리를 살리기 위해 막대한 금액의 백신을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송 박사의 계속된 백신 연구는 연구소 수준에서는 성과가 좋았지만 양산단계에서 경제성이 떨어졌다. 효과를 좋게하면 생산비용이 너무 비싸고, 가격을 맞추기 위해 이를 희석하면 효과가 떨어졌다. 해답은 2012년 여름, 평소 친분이 있던 정대균 단백체의학연구센터 박사와 커피를 마시던 중 너무 쉽게 찾아왔다. 단백질구조 전문가인 정대균 박사는 고민을 듣자마자 단백질 구조가 발견됐는지를 물었다. 다음날 전해받은 구조보고서를 살펴보자 단백질의 앞부분이 질서정연하지 않았다. 백신의 성능과 관계없는 불필요한 단백질 구조와 같이 단백질이 불안정한 부분을 잘라주면 상당히 안정된 덩어리가 된다. 안정된 덩어리는 구조 분석도 용이할 뿐만 아니라 대량증식도 용이하다.

송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바이러스 백신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먼저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사용하는 경우와 화학제제를 이용해 바이러스의 독성을 없앤 불활화백신, 다른 하나는 유전자 재조합 백신이다. 유전자 재조합 백신은 면역에 관여하는 특정 단백질만 인위적으로 대량 생산하는 방식으로 송 박사가 개발하던 써코바이러스 백신도 재조합 방식이었다. 송 박사는 면역성이 우수한 단백질의 구조까지는 개발에 성공했지만 이를 대량 생산하는 과정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신 셈. 정 박사는 바로 실제 단백질 염기서열을 확인하며 면역에 영향을 주지 않는 불필요한 구조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면역은 보다 강화하면서 저렴한 비용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길을 제시했다.

두 사람 모두 몇 년간 헤매던 연구가 이렇게 쉽게 실마리를 찾게될지 기대하지 못했다. 정 박사는 이번 백신은 일차적으로 단백질의 구조를 안정화한 뒤 몇 번의 시행착오를 반복한 끝에 보통의 경우보다 더 높은 pH 수준에서 정제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기존의 바이러스 연구방법에서 살짝 시각을 바꾼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PCV2 단백질의 대장균 발현벡터 디자인 및 제작기술.ⓒ2013 HelloDD.com
두 사람은 작년 8월 본격적인 협동연구를 시작했다. 연구는 일사천리로 진행돼 여름 끝날 무렵 후보물질을 이용한 시제품이 나왔다. 10월에는 기니피그를 이용한 동물실험을 실시해 백신의 효과를 입증했다. 곧이어 실제 양돈농가에서 돼지를 대상으로 진행한 동물실험도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왔다. 특히 다국적기업의 백신과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한 결과 새로 개발된 백신이 더 우수한 결과가 나오자 양돈주조차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개발된 백신을 맞은 돼지의 경우 해외백신 투여 돼지보다 체중이 빠르게 늘었고, 편차없이 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PCV2를 치료할 수 있는 핵심 백신을 규명, 대량생산 할 수 있는 틀을 마련했다.

송 박사와 정 박사 연구팀은 PCV2의 재조합 백신 항원 생산기술을 개발, 국내 동물용 백신 제조업체에 기술이전까지 성공했다. "사회적으로 융합연구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지만 사실 옆 실험실에서도 무슨 연구를 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또 동물백신 기업은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들이 많은데 출연연이 산업에 필요한 부분에 직접 대응을 했다는 것에 대해 의미를 갖고 싶어요."

송 박사는 "조금만 마음을 열고 상대의 고민을 들어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서로 각박한 생활에서 연구과제와 평가에 시달리다 보면 사실 다른 연구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관심갖기가 쉽지 않다"며 "어쩌면 이번 성과는 과제 이전에 편안한 인간관계가 배경이 됐기 때문에 일로 연결된 후에도 더 잘 풀렸을 수도 있다"고 귀뜸했다. 바이러스감염 대응 연구단에 근무했던 김정기 고려대학교 약대 교수의 소개로 맺어진 인연으로 시작된 저녁모임이 지금은 기술이전한 회사 관계자를 포함해 한달에 한번씩 정기모임으로 발전했다. 모임의 성격도 처음에는 식사를 하며 안부를 묻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연구생들까지 동석해 연구내용을 발표하는 등 발전적인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두 연구자는 써코바이러스 외에도 '내셔널 아젠다 프로젝트' 중 하나인 인플루엔자바이러스의 대유행 대응기반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또 일본뇌염 등 인수공통 감염병에 대한 백신 후보주를 발굴하는 등 협력할 연구들이 무궁무진하다. 정 박사는 "각자 다른 연구 필드의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재미있는 연구내용들이 하나둘 발견된다"며 "기업에서는 출연연처럼 기초원천 연구를 하기 쉽지 않지만 현장의 이야기를 들으면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생명연 내부만해도 워낙 다양한 연구분야와 해당 전문가들이 있기 때문에 조금만 서로의 연구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 더 많은 해법을 찾고 더 좋은 연구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융합연구에 대한 기대를 전했다.

▲써코바이러스에 의한 양돈장의 피해 사진.<사진=서울대수의대 제공> ⓒ2013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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