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대지진 2년-그때를 말하다①]현지 급파된 KINS 연구원들
텅빈 비행기 타고 일본행…교민·119 대원 공포 달래며 안전 지켜

"우리 아기 어떡하냐고 울부짖는 엄마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을 뒤흔들었다. 강진 이후 이어진 초대형 쓰나미는 센다이시 등 해변 도시들을 덮쳤다. 그러나 불행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대지진으로 인해 후쿠시마 원자로 1∼3호기의 전원이 멈췄고, 전원이 중단되면서 원자로를 식혀주는 긴급 노심냉각장치의 작동이 멈췄다.

다음 날인 12일 1호기에서는 수소 폭발이 일어났고, 이틀 뒤인 14일 3호기의 수소 폭발이, 15일에는 2호기 수소 폭발 및 4호기 수소 폭발과 폐연료봉 냉각보관 수조 화재 등이 발생했다. 자연재해로 인해 4개의 원자로가 동시에 사고가 진행된 사상 초유의 원전 사고였다. 아수라장이 된 상태에서 일본으로 향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각국의 구조·봉사대원들은 물론, 원자력·방사선 전문가들이 급파됐다. 정규환 KINS(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방사선비상보안대책실 실장과 장재권 박사도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일본으로 향했던 전문가였다.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고리야마 휴게소에서 측정한 방사선량률. 자연준위의 30∼40배가 되는 공간선량률인 시간당 2∼3마이크로 시버트가 측정됐다. 그 외의 사진은 쓰나미 이후 현장 사진. ⓒ2013 HelloDD.com

정규환 실장은 일본 현지 교민의 안전을 최대한 도모하기 위해, 장재권 박사는 일본으로 파견된 구조대원들의 방사선 피폭 위험을 관리하고, 방사선 오염이 확인될 경우 즉각 현장에서 구호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게끔 조치하는 전문가로 일본에 급파됐다. 정 실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시쳇말로 '멘붕(멘탈붕괴)' 상태였죠.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는데 텅텅 비었었더라고요. 일본으로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도쿄에 도착했는데 깜깜했죠. 밤문화가 유명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암흑이길래 심각한 상황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일본 공항도 난리법석이었죠. 출국장은 난리고 입국장은 한산하더라고요."

"방사능에 대한 공포가 당시 교민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죠. 임산부들이 자기 아기는 어떻게 하냐고 우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여차하면 아기를 지우겠다고 하는 엄마들도 있었어요. 그만큼 이성이 앞서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왼쪽부터 권철현 전 주일한국대사와 정규환 실장. ⓒ2013 HelloDD.com

정 실장에게 주어진 업무는 일본 현지 교민의 안전 도모와 주일한국대사의 자문이었다. 정 실장은 당시 대사였던 권철현 대사의 한 마디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권 대사는 정 실장에게 "우리 교민들이 위험하면 바로 대피시키겠다. 그 시간을 놓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급박한 순간에 빠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타이밍을 알려달라는 부탁이었다.

당시 주일한국대사관은 뭇매를 맞고 있었다. 정부가 국민 보호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던 것. 정 실장에 따르면 당시 대피권고를 내린 대사관이 독일과 인도네시아, 중국이었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전세기를 보냈고, 영국을 비롯한 유럽은 후쿠시마 현 쪽으로 가지 말라는 권고를 내렸다. 정 실장은 "왜 위험한데 대피를 안 시키냐는 연락을 많이 받고 욕도 많이 먹었다'며 "우리는 교민 철수 조치보다는 국민들에게 일본에 입국하는 것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하고 희망하는 교민들을 안전 지역으로 대피시키는 데 주력했다"고 전했다.

▲당시 교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방사능 공포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전파한 정규환 실장. ⓒ2013 HelloDD.com

교민들의 공포를 잠재우는 것도 정 실장의 역할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주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설명회를 열고 방사능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전하려 노력했다. 정 실장은 "방사능 공포는 다른 환경 재해와는 다르다. 어떤 영향보다도 과하게 부풀려서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며 "불신이 뿌리깊게 박혀있어 바꾸는 데 애를 먹었다. 도움이 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센다이 현장도 그에겐 놀라움 그 자체였다. 센다이로 가는 350km 구간의 고속도로는 지진 때문에 갈라지고 솟아올라 있었다. 구호물품을 실은 자위대 차량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연료를 넣기 위해 고속도로 휴게소의 주유소에는 길게 꼬리를 물고 있었다. 그는 "배들이 도로 양편에 올라와 널부러져 있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차들이 뒤집혀 있거나 나뒹굴고 심지어 건물 지붕에 올라가 있기도 했다"며 "집들은 산산히 부서져 쓰레기 더미가 되어 있었다. 직접 눈으로 본 규모가 정말 놀라울 정도였는데 일본 본토(혼슈) 동북 해안의 절반 가까이가 이러한 상태였다. 망연자실이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정 실장에게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도 교포들과 연락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공포를 느끼고 두려워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일본에서는 아직도 사고 후유증이 현실에 있습니다. 앞으로도 KINS는 물론, 개인적으로 도울 수 있는 일은 발벗고 나설 참입니다."

◆ "추위와의 싸움이 제일 큰 시련…방사선 피폭 걱정 없었다"
 

▲장재권 박사. ⓒ2013 HelloDD.com
일본서 구호작업을 펼쳤던 우리나라 구조대원 105명의 방사선 오염 방호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됐던 장재권 박사. 그는 "방사선은 잘 알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추위는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장 박사가 5박 6일간 지원을 다녀온 곳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180㎞가량 떨어진 니가타였다. "시체가 1000구 이상씩 몰려있는 처참한 사고현장이 보도되지 않았던 것은 일본 경찰이 통제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속도로도 비상차량만 다닐 수 있게 통제를 한다는 소리도 들었죠."

구조대원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구조현장 인근에서 사고가 터졌을 때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버스가 상시대기하고 있지 않았다"며 "함께 구조하던 러시아와 프랑스 구조대마저 철수하자 불안감이 더 가중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구조대와 장 박사만 두려웠던 게 아니었다. 한국에 남아있는 가족들 역시 불안에 떨었다. 국내 상황을 수시로 전했던 구조대원들과 장 박사에게 가족들은 귀국을 종용했다. 임무를 해야만 하는 구조대원들에게는 힘든 일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당시 브리핑을 통해 "현지에서 구조대원들에 대한 방사성 오염도 측정 결과 이상이 있는 대원은 없었고 3∼4명의 장갑에서 120cpm(count per minute) 안팎의 오염도가 나왔는데 이는 국내 발전소에서 특별한 처리 없이 반출하는 수준"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구조대원들이 구조 활동을 벌일 당시의 방사선량률은 시간당 0.2μSv(마이크로시버트) 정도였다. 이는 국제선 항공기 탑승시 선량률(6μSv)의 약 30분의 1에 해당한다. 그래도 장 박사는 "개인적으로 재난현장에 다녀온 것이 큰 경험이라 생각하고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구조대원들의 불안감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줘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후쿠시마 사태 이후 양분된 원전 정책…탈원전-신기술 개발 등 박차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부 원전 운영 국가들이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가동을 중단하거나 폐기 결정을 내리는 사례가 나왔다. 또한 셰일가스와 신재생 에너지가 각광을 받으면서 원전의 입지가 줄어드는 모양새다. 그러나 원전 선진국들은 발전단가가 가장 낮은 원전의 경제성 때문에 쉽사리 원전 비중을 축소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과 스위스, 이탈리아, 벨기에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 바로 '탈원전 정책'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사고 당사국인 일본의 '2030년대 원전 제로' 정책이 불을 붙였다. 독일은 2020년까지 대체에너지 비율을 40%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2022년까지 17기의 원전을 모두 폐기하기로 하는 등 가장 강도높은 탈 원전 정책을 펴고 있다. 스위스 상원은 2034년까지 원전 폐지 정책을 점차 승인했고, 태국도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무기한 연기한 상태다. IEA(국제에너지기구)도 지난해 11월 발간한 '2012 세계에너지 전망' 보고서에서 2035년 전세계 원자력 설비용량을 한해전 전망치 보다 10% 줄어든 580GW로 추산했다.

원전의 발전량 점유율도 13%에서 12%로 낮춰 잡았다. 미국, 프랑스 등 주요 원전 수출국들은 사고 이후에도 원전 중심의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34년 만에 원전 건설을 승인했고, 중국은 원전 건설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인도는 2050년까지 전체 전력의 25%를 원전으로 공급할 계획이며, 러시아는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30%까지 늘리기로 했다. 이뿐만 아니라 수명 한계에 도달한 원전이 늘어남에 따라 원전 해체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분야의 기술력 제고에 나선 원전 업체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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