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복관 개발로 선진국 기술 종속 탈피…연간 500억 수입대체
정용환 원자력연 부장 "연구자 9시 출근 6시 퇴근 직장인 아냐"

"특허를 받아도, 할덴의 검증서를 보여줘도 다들 인정하지 않았어요. 원자력발전소에 넣어봐야 진짜인지 안다고 했죠. 소재개발에 걸린 시간은 3년, 제품 생산과 성능 검증을 위한 시간은 12년이었습니다.

아레바와의 5년에 걸친 특허소송 등 고비를 넘으면 더 큰 고비가 찾아왔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위기 때마다 성능을 입증해 준 'HANA'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 원자력 R&D 역사상 최고액 기술이전, 원자력연 최초의 영년직연구원 선정, 7년 연속 우수과제 표창,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수상! 연구자로서의 최고의 영예는 물론 초고액 기술이전 '대박'신화의 타이틀까지 동시에 거머쥔 억세게 운 좋은 과학자가 있다.

핵연료 기술 중 유일하게 국산화가 되지 않았던 핵연료 피복관 HANA를 개발하고 지난 4일 한전원자력연료주식회사와 기술이전을 체결한 정용환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재료개발부장의 이야기다. 3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에는 피복관 소재 개발 자료부터 할덴의 성능평가결과, 아레바와의 특허소송 자료에 이르기까지 지난 20년간 진행해온 핵연료 국산화의 역사가 빼곡히 담겨있다.
 

▲정용환 부장은 20년간 보관해온 각종 자료를 소개하며 기술이전의 성과가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2012 HelloDD.com

현재 모습만 보면 운이 좋은 사나이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는 소재 불모지에서 계란으로 바위 깨기에 도전, 수많은 부서짐 속에 우직하게 성공한 집념의 연구자다. 피복관 소재를 개발한 후엔 제품화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제품이 생산된 후엔 검증할 곳을 찾아 전세계를 발이 닳도록 뛰어다녔다.

기술이전도 하루아침에 성공하지 않았다. 2006년 처음 시작된 기술이전 논의는 기술이전전담부서의 부서장이 3번이나 바뀌는 긴 시간동안 사업자와의 줄다리기가 계속됐다. 1985년 연구소에 입소해 HANA의 모든 검증을 마친 2008년까지 23년간 밤 10시가 퇴근 시간이었다.

가족들에게 그는 주말에만 얼굴을 볼 수 있는 존재였다. "연구자는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 공무원이나 직장인이 아닙니다. 오늘 못한 일은 내일 해도 되는 일이 아니에요.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연구결과도 달라진다고 믿습니다.

" 그는 연구실에 합류하는 신입 연구원들에게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과연 10년, 20년 뒤에 자식한테 내 한평생이 떳떳하게 연구했다고 얘기할 수 있는지 되돌아보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평범하게 주어진 조건에 피동적으로 움직이면 자기개발은 요원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함께 고생한 동료들과 팀워크를 다지는 것도 그가 20년 넘게 한길을 걸어온 비결 중 하나다.

연구성과가 좋아 받은 포상금으로 매년 한차례씩 부서원 전체가 가족동반으로 워크숍을 가졌다. 2006년은 중국, 2008년은 홍콩·마카오를 방문했다. 과제 초기에 부모를 따라왔던 초등학생 아이들은 지금은 어엿한 성인이 됐다.

지난 20년간 진행한 가족 워크숍의 역사도 그의 연구실 한 쪽에 고이 보관돼 있다. 정 부장에게 남은 숙제는 기술료 배분이다. 과제를 진행한 핵심멤버와 부분참여자까지 약 15명이 기술이전성과를 나눈다. 기술이전료는 50%는 기관에 귀속되고, 50%는 기술개발자들에게 돌아가는데 워낙 큰 금액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만족하게 배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그의 진심어린 고백이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과제참여기간별로 평가, 연구원에서 규정한 정량적으로 기준에 따라 배분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리란 생각이다.

그는 "기술개발은 연구자의 몫이었지만, 기술이전에는 전담부서인 원자력기술사업부의 노력이 컸다. 기술개발과 성능검정, 기술이전 과정에서 겪었던 많은 고비들마다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HANA의 기술이전 역사를 돌아보던 그는 "연구소에서 28년간 한 분야의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던 자신은 행운아가 맞다"고 시인하며 "이번 기술이전을 통해 기술적인 가치와 정책적인 가치를 모두 인정받았다"고 환하게 웃었다.
 

▲HANA 피복관은  할덴의 성능평과 결과 기존 피복관보다 부식저항성은 50% 이상 ,
 노내성능도 40% 이상 우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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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에서 싹튼 핵연료 소재 원천기술 개발의 꿈

정용환 부장이 개발한 핵연료 피복관은 핵분열 물질인 우라늄 소결체(pellet)를 감싸 핵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나오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1차 방호벽으로 원전의 핵심 부품이다.

지르코늄 소재의 피복관은 1990년 대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개발한 ZIRLO와 프랑스 아레바의 M5가 독과점 체제가 형성됐다. 정 부장이 원자력연에 입소했던 1985년엔 선진기술을 배우는 것만도 벅차 우리만의 소재개발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피복관 소재 개발의 꿈은 1991년 그가 IAEA 장학생 자격으로 독일 지멘스에 파견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우리나라도 우리만의 자체개발 소재를 갖지 않으면 원자력 기술자립은 이뤄질 수 없음을 깨달았어요. 곁눈질로 지르코늄 개발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며 한국에 돌아가서 해야 할 연구에 대한 꿈을 키웠죠." 당시 독일은 지르코늄 신합금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었다.

일개 외국 유학생에게 연구 과정을 공개할리 만무했다. 하지만 어깨 넘어 배운 프로젝트 진행절차 등의 기본지식은 큰 자산이 됐다. 연구소로 돌아왔지만 '선진국도 15년 이상 투자해 성공할까 말까한 일을 시작하려 한다'며 국산화 연구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1997년 본격적인 피복관용 신합금 개발연구가 시작됐다.

1950년대부터 진행된 피복관 소재의 연구배경, 선정배경, 특성과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는 일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선보인 모든 합금의 장단점을 정확히 분석하며 연구의 기반을 다졌다. 700종에 달하는 후보 합금에 대한 기초 연구를 토대로 합금 설계, 제조 및 평가시험 등의 과정을 거쳐 2000년 중성자 방사능에 노출돼도 잘 깨지지 않는 지르코늄 성분과 주석, 철, 크롬 등을 조합해 새로운 피복관 소재 개발에 성공했다. 하나(HANA)의 탄생이었다.

◆ "신약개발처럼 소재도 개발부터 단계별 성능검증 거쳐야"
 

▲정 부장은 '주어진 조건에 피동적
으로 움직이면 자기개발은 요원하다'며
후배들에게  연구자로서의 자세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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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개발을 완료하고 국내의 강관 회사에 정밀 피복관 제조 가능성 타진했지만 국내 기업들은 생산은 하더라도 품질보장은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시제품을 만들 수 없었어요." 예상보다 뛰어난 성능으로 3년의 실험실 평가를 마쳤지만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원자력 선진국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데 한국의 기술 성장을 원치 않았던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은 모두 거절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일본의 한 기업이 한국시장 개척을 염두에 두고 시제품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우리가 소재 재료비만 주면 제품을 만들어 주는 상당히 좋은 조건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사업상 손해만 안겨준 프로젝트가 됐기에 항상 고마움과 미안함이 남아있다. 2001년 외국의 선진 핵연료 회사들이 개발한 최신 신소재 피복관보다 부식 및 변형 저항성이 40% 이상 향상된 'HANA 피복관'시제품이 탄생했다.

신약개발시 동물실험을 거쳐 임상, 전임상을 거치며 성과를 입증해야 하는 것처럼 피복관도 원자로에 넣어 성능을 평가해야 하는데 국내 모든 원전에선 이를 거절했다. 시제품 테스트 결과를 갖고 한국수력원자력을 수없이 설득한 끝에 '외국 원자로에서 동일한 조건으로 테스트하고 안전하다는 평가가 나오면 그다음에 국내 원전에서 검증해주겠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전세계원자로의 문을 두드린 결과 2004년 노르웨이 할덴(Halden)연구용 원자로와 인연이 됐다. 4년간 성능 시험 결과 HANA가 외국의 신소재 피복관보다 50% 이상 부식저항성이 뛰어났고 노내성능도 40% 이상 우수했다. 할덴 결과를 근거로 2006년 한전원전연료와 기술이전 협의가 시작됐다.

국내 상용로 연소시험을 추진하기로 합의했지만 HANA를 상용로에 장전하겠다는 국내 원전은 없었다. 실험실 평가, 할덴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한수원 본사의 실무차장부터 팀장, 처장, 본부장까지 단계단계를 거쳐 겨우 설득이 끝났나 싶었는데 담당자가 바뀐 경우도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했다.

정용환 부장은 "연구개발보다 검증 작업이 계란으로 바위 깨기만큼 어려웠다"며 "당시에는 기술을 몰라준다고 많이 야속해하기도 했지만 내가 사업자 입장이었다면 그들보다 더 보수적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담담히 말했다. 원전은 두꺼비집 하나만 불량이 발생해도 큰 파장을 야기하는데 하물며 안전과 직결된 노심부위에 갓 개발된 피복관을 시험 삼아 넣어보겠다는 모험을 할 사람은 없었다. 사업자의 입장을 그도 잘 알고, 또 이해했기에 그만큼 힘든 도전이었다. 원자력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교됐던 특허전쟁이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다. 특허 출원자는 다른 부서로 이동하는 등 인력이동도 많아 연구 시작부터의 전체 히스토리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팀원들을 비롯해 연구원 차원에서 다함께 대응을 했다.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사상 외국과 특허소송은 처음이었다. 세계 최대 회사가 우리 특허를 무효화 시키기 위한 소송을 시작한 자체가 우리의 기술을 인정한 것으로 의미있는 일이었다.

2006년 상용로인 영광 1호기에 HANA 피복관을 최초 장전해 5년간 연소시험을 진행했다. 2012년 3월까지 최종검정시험을 통해 외국제품보다 2배 이상 좋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리고 12월 4일 기술이전식을 통해 연구의 결실을 맺었다. 올봄 1단계 검증시험마치고 2015년에 2단계, 3단계를 검증을 마치면 2015년부터 완전 상용화 하는 것이 원자력연료의 계획이다.

기술이전을 했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 정 부장은 넥스트 HANA 개발을 시작했다. 모든 R&D 분야가 빠르게 변화하는 것처럼 피복관 소재 역시 신형 원자로에 맞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는 미래 원전인 소듐냉각고속 원자로 등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극한 환경에서도 우수한 성능을 나타낼 수 있는 원전형 신소재 개발에 남은 연구인생을 바칠 것이라고 다짐을 밝혔다.
 

▲현재 원자력연에서 가장 오래된 연구동에 자리잡은 원자력연료개발부는 내년
신연구동으로 이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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