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권 원자력연 박사, 지하연구시설 KURT서 '한국형 기술' 연구 수행
2016년부터 임시저장시설 포화…국가차원 고준위폐기물 대책마련 시급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를 언제까지 쌓아두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외국으로 보낼 수도 없습니다. 가장 안전하고 영구적인 처리방법은 우리나라 어딘가에 묻는 것입니다. 과학적인 연구결과가 부지 선정 등 처리방안 마련의 기반이 될 때 국민들의 사회, 정치, 경제적 수용성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20일 정부가 고준위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의 중간저장부지 선정 공론화 작업을 시작했다.

10만년 넘게 고준위폐기물을 격리할 수 있는 최종처분장을 당장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40~50년 동안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중간저장시설을 만들자는 것인데 벌써부터 시민단체들의 반대 움직임이 심상찮다. 이런 때일수록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고용권 한국원자력연구원 방사성폐기물처분연구부 책임연구원.

21일 국내 유일의 지하처분연구시설인 KURT(KAERI Underground Research Tunnel)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 10월 모 국회의원이 원자력연에서 고준위폐기물 처분시설지역을 선정하기 위한 조사를 수행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한바탕 홍역을 치른 후였다.

당시 연구는 고준위 폐기물 처분 시설이 들어설 것이 유력한 화강암반 지역을 제외한 기타 암반 지역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는 '국내 화산암·편마암 지역 수리, 지화학 특성 기초조사'였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처분시설 후보지라 발표했고, 보고서에 언급됐던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은 그칠 줄 몰랐다.

고 박사는 "자신도 국민의 한 사람"이라며 "안전한 폐기물처리방법을 마련하는 자체가 국민을 보호하는 최선의 행위다"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연구소가 국민 몰래 비공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의심 하지만 모든 연구결과는 국회도서관 등에 공개돼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국내에서 운영되는 23개 원전은 매해 1만7000다발이 넘는 사용후핵연료를 쏟아내고 있다. 그동안 고리, 영광, 울진, 월성 등 4개 원전 본부에 임시 저장해 왔다. 올 6월 기준으로 국내 총 저장용량(51만8000다발)의 71%까지 육박했으며, 매년 2.1%씩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016년 고리원전을 시작으로 2024년이 되면 임시저장시설은 완전 포화상태가 된다.

사용후핵연료는 높은 열과 강한 방사선을 내뿜는 위험 물질로, 반감기를 거듭해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까지 안정화되는 데 최소 10만년이 걸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준위폐기물의 궁극적인 최종관리 방안은 지하 500m 깊숙한 심지층에 묻어 인간 생활권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하도록 완전 격리시키는 심지층처분방식이다.

이 방법은 1960년 초 미국에서 제안된 후 국제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신뢰성이 높다고 인정받고 있다. 원전을 운영하는 국가 중 핀란드와 스웨덴이 가장 먼저 처분장 부지를 마련하고 건설을 위한 부지평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심지층처분기술은 외국기술을 도입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고용권 박사는 "우리 심부지질환경과 원자력 산업 여건에 적합한 우리만의 고유 처분시스템 개발과 주요기술의 실증, 또 신뢰도 높은 안전성평가 기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원자력연에서는 파이로프로세싱과 같은 재활용을 거친 새로운 형태의 고준위폐기물을 비롯해 수명이 다한 원전을 해체할 경우 나오는 장반감기 폐기물, 연구로인 하나로에서 나오는 폐기물 등을 종합 관리할 수 있는 '복합폐기물 통합 장기관리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주요 연구내용으로는 고준위폐기물을 포장하는 공학적방벽의 성능향상과 현장검증 기술 개발, 심층처분 기술기준에 적합한 안전성 평가기법 개발, KURT를 활용한 현장검증 기반 구축 등이다. 처분기술과 관련된 모든 것을 연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좌)고준위폐기물 지하처분동물 모형 (우)사용후핵연료 를 구리관과 완충제를 이용해
밀봉한 모습.
ⓒ2012 HelloDD.com

◆ 고준위폐기물은 지하 심부에서 10만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

지하 500m 정도면 인간생활과 거의 완벽하게 격리가 가능해 반감기가 10만년으로 추정되는 고준위폐기물을 보관하기에 안전하다. 고용권 박사는 고준위폐기물을 지하 심층부에 처분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라고 설명했다.

첫째 처분장은 시설이기 때문에 지진 등에 안전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지진은 지표에 가까울수록 피해가 크고 지하로 갈수록 충격이 적다. 둘째 땅 속 깊은 곳일수록 지하수가 천천히 흐른다. 500m 지하에서는 지하수가 1년에 1m 이하로 이동한다. 마지막으로 땅속 깊은 곳일수록 산소가 희박해 우라늄 등 방사성핵종의 용해도가 급격히 줄어 환경으로 이동이 제한된다.

고준위폐기물은 내식성과 충격이 강한 구리로 제작한 처분용기에 담은 후 벤토나이트 성분의 완충제로 한 번 더 포장해 지하 터널에 묻는다. 구리는 금속 중 부식 속도가 가장 늦다. 또 벤토나이트는 지수성능과 흡착성능이 좋아 지하수 등 외부 물질이 침투하지 않도록 막을 형성한다. 이렇게 이중 삼중으로 밀봉한 다중방벽 시스템에 의해 고준위폐기물은 생태계로부터 완전히 격리, 혹시라도 모를 방사성물질이 인간 생활권으로 누출되는 것을 방지한다.

고준위폐기물 처분 기술은 세계적으로 완성되어가고 있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고준위폐기물을 심지층에 처분하는 기술은 지하에 처분조건과 비슷한 환경을 조성하고 실제로 안전성을 입증하는 단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원자력연 부지 내에 위치한 KURT는 총 연장만 255m에 달한다. 180m 길이의 진입터널과, 처분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모듈 75m(좌측 연구모듈 30m, 우측 연구모듈 45m)로 이뤄져 있다   ⓒ2012 HelloDD.com

▲KURT에서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기술을 실제에 적용하기 위한 다양한 현장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2012 HelloDD.com

◆KURT 지하 실험실에서 한국형 처분 시스템의 안전성·신뢰성 검증

국내 유일의 동굴식 지하처분 연구시설인 KURT는 한국형 처분 시스템의 기술적 타당성과 안전성 적합성을 실험적으로 검증하는 기초 연구시설이다. 총 연장만 255m에 달한다. 180m 길이의 진입터널과, 처분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모듈 75m(좌측 연구모듈 30m, 우측 연구모듈 45m)로 이뤄져 있다.

화강암 지반인 원자력연 부지 내에 2006년 완공,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기술들을 실제 처분장에 적용했을 때 성능을 확인하기 위한 다양한 현장실험을 실시하고 있다. 또 일반에게 공개해 교육시설로 이용하며 고준위폐기물 처리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높이는 임무도 맡고 있다.

지하처분연구시설이라고 해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직접 다루지는 않는다. 대신 소금과 같은 안정한 자연 시료를 이용해 1년에 10∼100cm 속도로 흐르는 지하수의 움직임이나 지하 미생물의 생태 등을 연구한다.

어떠한 방사성 물질도 사용할 수 없는 '일반 시설'로 분류돼 주변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 암반 내 균열을 통한 유체 이동, 지하 환경에서 이온 및 콜로이드의 거동 연구 등을 통해 일반 대기와는 다른 지하 환경의 지하수 체계와 지질 조건 등에 대한 분석, 지하 구조물의 장기적 안정성 평가, 지하수의 화학적 조성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고 박사가 KURT의 암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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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석에는 지하수가 없지만 균열된 틈으로 지하수가 침투하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도 점검한다.

지하 500m까지 멀티패커를 이용한 정밀 장비로 지하수를 심도별로 격리시킨 상태에서, 해당 지반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 또한 고준위폐기물은 열이 나기 때문에 이 열이 암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제 자연상태에서 암반이 어떤 변화가 있는지 히터를 심어놓고 각종 센서로 데이터를 확보했다.

선진국들이 고준위폐기물 처분 연구를 30년 이상 진행해 온 것과 비교해 우리는 시작이 늦었지만 KURT를 활용한 체계적인 연구로 지금은 기술자립에 자신감을 갖고있다.

고 박사가 소속된 방사성폐기물처분연구부 30여명의 연구원이 더 안전한 곳에 더 안전한 시설로 처분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 중이다. 고준위폐기물을 포장하는 공학적방벽의 성능도 20%이상 향상 시킬 계획이다. 사용후핵연료 다발을 처분용기에 담으면 폭은 1m, 높이 5m 정도의 크기다. 현재 처분용기로 사용되는 구리는 5cm 두께. 비용을 절감하며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저온 분사로 보다 얇게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원자력연은 그동안 스웨덴, 스위스, 일본 등과 심지층 처분 기술 개발을 위한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다. 지난 2010년부터 미국 샌디아국립연구소로부터 기술용역 2건을 수주해 수행하는 등 시설의 우수성과 기술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IAEA '지하처분연구시설 네트워크‘ 협력기관으로 지정됐다.

이 네트워크는 방사성폐기물 처분에 필요한 기술 개발을 목적으로 지하연구시설을 이용한 회원국 간 연구 성과와 노하우 등을 공유하고, 안전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심지층 처분 프로그램을 계획하기 위해 2001년 발족했다. 스웨덴, 스위스, 핀란드, 일본 등은 지하 500m 깊이에 지하처분연구시설을 건설하고 처분의 안전성을 연구하고 있다.

다른 시험시설이 지하 500m 수준임에 비해 KURT는 약100 깊이로 앞으로 확장을 통해 보다 정밀한 환경을 구축하고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고 박사는 "국내적으로는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이 건설하고 있는 월성 중저준위폐기물 처분장의 인허가 안전성 평가, 지하수 유동 특성 평가를 지원하는 등 KURT 건설과 운영에서 확보한 기술을 원자력 산업계에 적극적으로 전파해 나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원자력 선진국들도 지하처분연구시설을 이용해 기술 실증을 하고 있다. ⓒ2012 HelloDD.com

▲원자력연이 진행하는 복합폐기물 통합 장리관리시스템 개요. <자료=원자력연 제공> ⓒ2012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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