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전 아날로그 제어시스템 디지털·사용자친화적 성능개선
앞으로 10년 기초과학 증진·동위원소 생산등 지속활약 기대

태국 수완나폼 공항에서 차를 타고 30여분 달려 방콕 시내 짝두짝 거리로 들어서자 태국원자력연구소(TINT:Thailand Institute of Nuclear Technology)의 간판이 보였다. 

태국 국립 카셋삿 대학(kasetsart university)과 나란히 위치한 TINT는 겉에서 보기엔 민간 시설과 다를 바 없지만 내부엔 보안요원들이 상주하는 국가 보안시설이다. 지금 이곳에서는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장 정연호) 기술진의 도움으로 태국 연구용 원자로(TRR-1)의 수명 연장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차나팁(Chanatip) 박사의 안내를 받아 4층 규모의 작은 건물로 들어서자 지난 40년간 태국의 기초과학 증진과 교육훈련에 사용됐던 태국의 연구용 원자로 TRR-1가 위용을 드러났다. 

TRR-1은 출력 1.2MW의 소형 원자로이지만 이곳에서 생산한 방사선동위원소는 매년 3만 명 이상의 태국 환자들이 이용하고 있으며, 보석 착색을 통해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등 태국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다. 
 

▲TRR-1 주제어실. 왼쪽의 초기배전반은 오래전 가동이 멈춰 오른쪽의 배전반으로만
연구로를 운영하고 있다.
ⓒ2012 HelloDD.com

하지만 주제어실에서 설치된 초기제어반은 가동이 멈춘지 오래다. 원자로 운전원이 조정할 수 있는 제어반은 1977년 성능개선 때 도입된 아날로그 제어반이 유일했다. TRR-1 운영은 운전원이 신호를 받아 종이에 펜으로 옮기면서 원자로 출력을 확인하고 연료봉을 조절하는 수동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운전원의 작은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TRIGA 원자로의 핵연료를 공급하는 프랑스 핵연료 전문회사 ‘써카(CERCA)’가 TRIGA형 연료의 생산 중단을 기정사실화 하자 TINT는 지난 5월부터 연료절약을 위해 주 3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연구로를 긴축 가동하고 있다. 때문에 태국내 연구로 이용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장 정연호) 지난 2009년 6월 태국 연구용 원자로(TRR-1) 성능개선 사업과 연구로 핵연료 분말 수출 등 연구용 원자로 관련 컨설팅을 주 내용으로 한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24일 6번째 태국을 방문한 연구진은 TRR-1의 제어시스템 성능 개선을 위한 물품구입 시방서를 최종 검토하고 기술자문을 진행했다. 올 하반기 성능 개선을 마무리하고 시운전을 마치면 내년 말 프로젝트가 마무리된다. 
 

▲솜폰 총쿰 TINT 소장이 'TRR-1'의
국가적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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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은 1962년 미국 GA사의 TRIGA 연구로 TRR-1을 도입했다. 1977년 1MW의 성능을 2MW로 늘리고 핵원료를 저농축 우라늄으로 전환하기 위한 개선작업을 한 차례 진행한 후 현재까지 기초과학연구와 방사선동위원소 생산, 보석착색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며 동남아 국가 중 가장 효율적으로 연구로를 운영해왔다. 

태국은 노후된 TRR-1을 대체하기 위해 지난 1995년 옹카락(Ongkharak)에 부지를 마련하고 GA사와 대체 연구로 건설을 추진했으나 인허가 문제와 태국 내부의 정치경제 사정으로 프로젝트가 중단되며 국제 재판을 진행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태국 정부와 TINT는 대체연구로가 건설되기 전까지 TRR-1을 안전하고 지속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설비개선과 제어시스템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판단아래 2009년 원자력연에 도움을 요청해왔다. 

솜폰 총쿰(Somporn Chongkum) TINT 소장은 “한국은 TRIGA 기종의 연구로 2기를 운영하고 안전하게 폐로한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원자력연합국협의체 중심국가로서 활약하고 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TINT는 지난 2009년 건물과 TRR-1 원자로에 대한 안전성 검사를 실시한 결과 앞으로 50년은 더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구조적으로는 안전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스페어 파트가 없는 상황으로 고장이 나도 수리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성능 개선이 절실하다. 

솜폰 소장이 밝힌 성능개선의 제일 목적은 연구로 운영의 안전성 강화다. 기존의 아날로그 형식의 제어시스템을 디지털화하고 사용자 친화적으로 개선함으로써 TRR-1의 사용기간은 10년 정도 연장해 더 많은 사회적 역할을 한다는 계획이다.

 

▲TRR-1개선을 총괄하는 김영기
원자력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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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IGA 원자로 성능개선·연료 틈새시장 부각 

원자력연은 TRR-1 성능대선 사업을 발판으로 태국이 향후 건설할 연구로와 상용원자로 건설을 위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태국의 신규 연구로 타당성 및 개념설계에 관한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향후 신규 연구로 건설사업 시 기술협력을 강화키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태국 정부는 2028년까지 총 5기 상용 원전을 건설한다는 에너지 20개년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태국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김형기 원자력연 연구로공학부장은 “TRR-1의 연장 운전과 원자로 안전 운전을 위해 계측제어 시스템 개선이 시급한 상황에서 태국이 먼저 원자력연 측에 기술지원을 요청해 시작한 사업이라는 점에서 규모는 작지만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원자력연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컨설팅인 만큼 향후 TRR-1의 운전에 사소한 문제라도 발생하면 원자력연의 위상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사업규모를 떠나 최고의 기술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TRIGA는 미국의 GA사가 1950~60년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50여개 국가에 200여기가 넘게 설치했던 원자로다. 하지만 미국의 원자력 산업이 위축된 후 GA사가 부품 공급을 중단하자 TRIGA는 고장이 나도 부품을 조달할 수가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또한 40년 전 만들어진 노후된 제어시스템으로는 설계 용량인 2MW의 출력을 보장할 수 없었다. 전기·전자·반도체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현실에 비춰 TRIGA 제어시스템의 노후화는 세계 각국이 풀어야할 숙제가 됐다. 

TRIGA 기종의 80%는 20년 이상, 65%는 30년 이상 된 노후 연구로로 이를 대체하기 위한 수요가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연구로 수명을 40년으로 가정할 경우 향후 2050년까지 110여기의 연구로 대체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으며, 연구로 자력 건설능력이 없는 나라가 40여개국(50기, 10-20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보여 연구로 수출 시장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차바트 토스클카오 태국원자력청장 ⓒ2012 HelloDD.com
◆ [인터뷰] 차바트 토스클카오(Chaivat Tosklkao) 태국원자력청장

"작년 후쿠시마 사고로 태국의 원자력 상용화 프로그램이 연기 됐지만, 규제적 측면에서는 준비 시간이 길어진 만큼 다행이라 생각하고 그만큼 철저히 하겠다."

차바트 토스플카오(Chaivat Tosklkao) 태국원자력청장은 "지난 51년간 원자력청이 규제지침을 잘 따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일을 잘 해왔기 때문에 태국의 원자력이 안전하게 잘 운영돼 왔다"고 설명했다.

태국 원자력청은 안전규제와 원자력 기획 부분만을 남기로 6년전 연구개발 분야는 태국원자력연구소(TINT)로 분리하며 안전규제에 대한 기능을 강화했다. 태국 원자력청은 원자력을 이용하는 연구소와 병원 등의 기관을 1년에 4번 정기 검사를 실시함으로써 현장 중심의 규제를 하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자력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짐에 따라 대체 연구로가 들어설 옹카락(Ongkharak) 지역을 비롯해 원자로 건설부지가 왜 그 지역이어야 하는지 지역민들을 이해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차바트 총장은 한국의 중소형원자로 스마트(SMART)의 표준설계 인허가 소식을 축하하며, 스마트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그는 태국과 한국 정부의 원자력 협정 체결을 위해 노력 중이라며, 이를 통해 태국의 원자력 상용화 시대를 대비해 한국의 규제기술도 배우길 희망했다.

또한 "한국의 KINS는 21개의 원자력발전소를 잘 규제하고 하나의 사고 없이 잘 운영하고 있고, 원자력연이 해외의 R&D 사업을 잘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의 원자력 기술은 충분히 입증됐다"며 "태국의 원자력 전문가들이 한국에서 보다 전문적인 교육훈련 받을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4층 건물에서 태국의 연구로가 가동중이다. ⓒ2012 HelloDD.com

▲TRR-1 내부, 노심과 봉형의 연료다발이 보인다. ⓒ2012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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