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회견서 법적대응 방침 시사…고위층 사퇴압력 언급
이사회 "소모적 논쟁 자제를"…학생들은 "사퇴하라" 시위

서남표 KAIST총장은 16일 "오명 이사장은 내가 물러나야 할 사유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며 자진사퇴 의사가 없다는 뜻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서 총장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서머싯 팰리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사회 날짜만 정해지면 하루가 멀다 하고 사퇴요구가 빗발쳤다"며 "사실 앞에서 눈과 귀를 막고, 시끄러우니 물러나라 하면 이사장님은 물러나겠느냐"고 계약해지안을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한 오 이사장에게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또 그는 "총장 해임 사유를 못 찾아 편법적 수단을 쓰며 총장 자리를 노리는 이들에게 KAIST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며 "내가 나가면 테뉴어(교수정년) 제도·영어강의 폐지 같은 요구가 사라지고 문제가 해결되는지 오 이사장에게 묻고 싶다. 관성에 바탕을 둔 낡은 문화를 바꾸는 KAIST 개혁은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서 총장은 "나는 한국에 있는 마지막 날까지 한국 대학교육의 주춧돌을 놓기 위해 주어진 소임을 다할 생각"이라면서 "며칠 뒤에 이사회로부터 해임을 당하겠지만 당당하게 마주하고 책임있게 도전하겠다. KAIST 발전을 위해 여생을 바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문 낭독에 이어 진행된 질의응답에서는 서 총장이 받고 있다는 '사퇴 압력'의 경위와 배후에 질문이 집중됐지만 서총장은 "오명 이사장이 대답해야 할 부분"이라는 답변을 반복해 기자들로부터 빈축을 사기도 했다.

또 법률대리를 맡고 있는 이성희 변호사가 동석해 '계약해지'와 '해임'의 차이, 이후 법률적 문제 등에 대해 장시간 설명하는 등 이사회 이후 법적 대응에 나설 뜻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서 총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까지 해서 임기를 마치고자 노력하는 이유는 개인적 욕심이 아니라 KAIST 발전을 위해서"라며 "오명 이사장과 학교발전 방향이나 비전에 대해 이야기해서 학교를 위해 좋은 방안이 나온다면 무엇이든 다 하겠다"며 대화의 여지를 남겼다.

이같은 서 총장의 회견에 대해 KAIST 이사회는 "오는 20일 임시이사회에 총장 계약해지안이 의결안건으로 상정되었으며 이사회는 이 안건을 충분히 논의해 KAIST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결론을 내릴 계획"이라며 "그러나 이사회가 개최되지도 않은 현 시점에서 이번 안건을 놓고 소모적인 논쟁이 계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만큼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와 함께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KAIST 총학생회 소속 학생 십여 명이 찾아와 입장을 시도했지만, 서 총장 측은 "언론을 대상으로 한 공식자리인 만큼 입장을 허용할 수 없다"며 학생들의 입장을 막으면서 한때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학생들은 회견장 밖에서 사퇴를 외치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호텔 앞으로 자리를 옮겨 서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한편 KAIST 이사회는 서 총장의 임기가 2년 남은 상황에서 '소통이 부족하고 학내 여론이 악화됐다'며 오늘 20일 이사회에 그의 계약해지 안건을 상정했다. 이에 앞서 KAIST 교협은 18일 총회를 열고 서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채택할 예정이다.
 

▲KAIST 총학생회는 기자회견장 밖에서 피켓시위를 진행했다. ⓒ2012 HelloDD.com
 
◆아래는 서남표 총장과 기자들의 주요 질의응답 내용

▲이사회에서 사퇴를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른다. 오명 이사장이 답해야 할 질문이다. 2010년 10월 오명 이사장이 취임하며 사퇴를 요구했는데, 왜 KAIST를 완전히 이해하기 전에 그런 결론(서남표 총장 사퇴)을 내렸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왜 그런지 아는 사람은 나에게 말해 달라.

▲연임하며 '2년만 하겠다'고 말했다는데 그 소문의 진위는 무엇인가? 내가 아는 한에서 이야기하겠다. 2년 전 이사회에서 연임 여부를 표결할 때 이종문 이사가 내게 와서 '2년만 한다고 이야기하면 표를 주겠다'고 했다. 난 그런 말은 못한다고 했다.

이후 다른 이사 한 분과 같이 와서는 '기자들 앞에서 비공식적으로 농담식으로 한 번만 해달라'고 다시 요구했다. 그때는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야 알겠다. 학교 교수들의 부탁을 받은 것 같다. 연임이 결정되고 교과부 장관에게 인사를 갔는데 거기서 또 '2년' 이야기가 나왔다. 당황해서 말을 우물쭈물했다. 이후 2년만 하겠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이사회에서 결정된 4년 임기에 따라 법으로 해야지 그걸 왜 임의로 바꾸려 하는지 모르겠다.

▲고위층 압박설이 있는데 정확히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가.

지난해 12월 이사회 때 교과부에서 내가 사표 내는 것을 기대하고 준비해왔다. 오명 이사장이 날 데리고 잠깐 밖으로 나가 이야기 했다. 그는 '내가 아무개와 이야기했는데 2년만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했다. 거기에 대해 이사회 끝날 때 내 의견을 말하겠다 했고, 난 내 개혁추진 의사를 밝혔다.

▲임기 중 가장 잘한 것과 미흡한 것은 각각 무엇이라 생각하나.

잘한 것은 KAIST가 세계 수준의 대학이 된 것이다. 세계적 대학들과 어깨를 견주고 있다. 더 이상 우리나라의 KAIST가 아니라 세계의 대학이다. 그 배경에는 300여명의 젊은 교수들을 영입하는 등 여러 가지 성과가 있다. 미흡한 것은, 학생들이 자살하는 것을 막지 못한 부분이다. 여러 가지 노력을 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똑똑한 학생들이니까 알아서 잘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학생들에게 수학이나 영어를 따로 더 가르쳐줬더라면 어땠을까…. 내 생각이 짧았다. KAIST에 4년 할 생각으로 왔다. 하지만 미국 정부에도 1년만 기약했다가 4년을 있었던 거나, MIT에서 3년 예정이 10년으로 된 것처럼, KAIST도 떠나려니 내가 떠난 후 다시 옛날로 돌아갈까 걱정됐다. 특히 KAIST가 잘되도록 도와준 좋은 분들이 남아 달라 부탁하니 거절할 수 없었다. 반대세력이 있었지만 연임이 결정된 후에도 계속 반대할지 몰랐다. 연임 이후엔 일만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발표문에서 '사죄한다'의 의미는 정확히 무엇인가.

총장으로서 KAIST가 안 좋은 이야기로 신문에 오르내리고 학생들이 시위하고 그런 것들이 부끄럽다. 그것에 대해 사죄한다는 의미다. 교수와 학생들이 이메일을 많이 보내는데 나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 사람들이 이러한 자리에 함께 하겠다고 했지만 오지 말라고 했다. 그 분들이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다.

▲이사회에 법적 대응을 할 것인가?

(이성희 변호사 답변)'해임'이 아니라 '해지'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해임사유를 못 찾았다는 의미다. 하자가 없는 건물을 부수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지난해와 올해 1월만 해도 '문제가 없다며 그대로 추진하라'고 지시했던 이사회가 갑자기 입장을 변경했다. 하나의 협의체가 별다른 이유 없이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 사퇴를 종용하는 이유도 소통 문제에서 사적인 욕심으로 변화했다. 특히 특허 부분은 이사회에서 진위파악을 하지 않고, 검찰수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이를 문제 삼아 사과를 종용하거나 사퇴를 촉구했다. 아마 서 총장이 해임되고 나면 이사회로 화살이 쏟아질 것이다. 어쩌면 서 총장이 지금 온몸으로 막고 있는 거다. 일단 현재로서는 '계약해지' 안건이 '상정 예정'일 뿐이다. 이사회 측의 일방적 해지시 서 총장에게 8억원을 지급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있고 대화를 통해 상황이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후에는 상황에 따라 대응하겠다.

▲오명 이사장과 구체적인 대화 계획이 있는가?

대화를 안 할 이유가 없다. 과학기술과 KAIST 발전의 목적이 무엇이냐를 두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학교를 위해 좋은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 기본적으로 당당하게 해임당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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