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표 총장 6년 빛과 그림자④]갈수록 커지는 퇴진 요구
서 총장 "테뉴어 때문에"-교수·학생 "독단적 운영으로 파행"
타협점 못찾는 국내 최고의 이공계대학 운명에 우려의 시선

 
한국을 대표하는 이공계 대학이자 국내 과학기술의 요람, KAIST가 흔들리고 있다. 서남표 총장의 리더십을 둘러싼 갈등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교수와 학생들은 서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총장은 교수들을 고발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서 총장은 이번 달로 연임 2년이 된다. 4년 연임에 성공하고 절반의 임기를 채운 것이다.

지난 6년 동안 KAIST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폭로전과 고발, 사퇴요구와 흠집내기를 반복하고 있는 KAIST는 어디로 갈 것인가? 서 총장 임기 6년, 연임 2년을 맞아 총체적 난국에 빠진 KAIST의 상황과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서 총장의 리더십, 개혁정책의 현 주소를 집중 진단한다.

조직이 위기에 처할 때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따라 조직 명운(命運)이 좌우된다. KAIST 사태가 발생하기 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서남표 KAIST 총장의 개혁이 올바른 방향이냐 그른 방향이냐를 따지기에 앞서, 그의 움직임이 많은 이들의 반발을 살 것이라는 것을. 또한 그 개혁의 완성이 걸림돌없이 추진될 수 있으리라고도 보지 않았다.

사실 서 총장은 한국 과학기술계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KAIST 총장 자리에 오르기 전부터 한국 과학기술계 환경을 비판했던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냥 서남표로서가 아니라 세계적인 석학 MIT 대학 출신인 서남표 교수로서 평가됐기 때문에 더욱 더 부각됐다.

개혁 경향이 강하고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교수가 바로 서 총장이었다. 일찌기 총장 후보로 거론됐을 때부터 일부에서는 반감을 갖겠지만 KAIST 개혁을 원하는 관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던 인물이었다. 경영스타일이 다소 독선적이어서 교내 관계자들과의 불화도 어느정도 예측됐던 것도 총장 후보로서 결격사유로 꼽혔다.

지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의 예리한 판단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하지만 인간미가 없다는 것은 최대 단점으로 꼽혔다. 이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능력은 탁월한데 인덕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총장 선임 당시, KAIST 총동문회와 학생들, 교수들이 외부 인사(서 총장) 영입을 그만두라며 이사회 측에 반발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러플린의 망령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막연한 외부 인사보다 진정한 개혁을 추구할 수 있는 KAIST 내부 구성원이 총장이 되길 원했다. 조직의 단합과 학교 발전이 그들에게는 최우선 과제였다.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 총장은 KAIST와 함께 하게 됐다. 당시 이사회가 밝힌 총장 선임 이유는 KAIST를 세계 초일류 연구중심 이공계 대학으로 이끌 비전과 리더십을 갖춘 인물로 서 총장이 적당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서 총장 역시 "구성원들의 마음과 역량을 결집, KAIST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시키는 데 헌신하겠다"고 포부를 밝혔었다. 그러나 이사회의 판단과 서 총장의 결단에도 구성원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쉽지 않았던 듯 보인다. 연임 이후 절반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 연임 이후 반발 격화…KAIST 구성원 커지는 퇴진 요구

▲지난 5월 서 총장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학부 총학생회 기자회견 모습. ⓒ2012 HelloDD.com

결론만 놓고 보자. KAIST 내부 구성원들의 서 총장 퇴진 요구의 본격적인 시발점은 연임 이후부터였다. 연임 과정에서 상당한 내홍을 겪었던 서 총장은 지난해 초부터 논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첫 단초는 KAIST에 입학했던 첫 전문계 공고 출신 합격생의 자살이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KAIST 입학사정관 전형을 통해 입학한 A군이 다양한 재능을 가졌음에도 시스템 차원에서 입학사정관 제도를 뒷받침하는 충분한 관리가 학교에서 이뤄지지 못한 것 아니냐는 논조로 비판했다. 학교에서는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학교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한다고 발표했지만 더 큰 시련을 막지는 못했다. 같은 해 3월 KAIST 학생이 경기도 한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졌으며, 곧이어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했던 KAIST 학생도 집에서 투신 자살했다.

한 달 후에 또 한 건의 자살 사건이 벌어지자, 언론과 학교 관계자들에게서 서 총장의 개혁 정책을 적극적으로 문제삼고 나서기 시작했다. 잇따른 악재에 KAIST 구성원들은 서 총장의 거취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KAIST 교수협의회는 KAIST 혁신비상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서 총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에 서 총장은 기존 개혁 행보를 일시 중단하고, 모든 역량과 일정을 KAIST 구성원들과의 소통에 올인하겠다고 말했고, KAIST 개교 이래 처음으로 학생들의 주도 하에 열린 비상총회에서 가까스로 한 번의 기회를 더 얻었다.

그러나 학교 측과 교수협 측은 갈등의 평행선을 달렸다. 서 총장이 혁신위에서 결정된 사항들을 이사회 의결에 따르겠다고 하자 교수협 측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의결안 중 많은 사안들이 이사회 승인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사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 총장이 이사회를 핑계로 실행을 피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7월 이사회가 혁신위에서 결정한 26가지 의결 사항 중 23가지를 실행하겠다고 승인했다. 그러나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남은 3가지 의결사항 중 평의회 구성이 발목을 잡고 나선 것이다. 이에 교수협은 지난해 9월 29일 비상총회를 개최하고 서 총장에 대한 성명을 채택하고 나섰다. 공식적으로 서 총장의 용퇴가 수면 위로 올라왔던 계기였다.

▲KAIST 교수들이 임시총회를 마친 뒤 서남표 총장 퇴진을 요구
하며 교내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2 HelloDD.com

소통 부재로 교수들의 총장 퇴진 요구까지 받으며 리더십에 손상을 입었던 서 총장은 지난해 10월 전체 교수회의를 열고 직접 소통에 나서는 등 위기 국면 돌파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KAIST 교수협은 서 총장의 용퇴를 재차 촉구하며, 기존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사실상 교수협 측에서는 서 총장을 퇴진시키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셈이었다. 교수협 뿐만이 아니었다. 교육과학기술부 뿐만 아니라 오명 이사회 이사장까지 서 총장 퇴진 압박에 함께 나섰다. 용퇴를 넘어선 해임 요구가 나왔던 때가 바로 이 시점이다.

이사회의 반대로 가결되지 않았던 평의회 역시 승인됐지만, 그에게 돌아갔던 것은 퇴진 촉구 뿐이었다. 교수평의회 역시 교수협과 마찬가지로 퇴진 요구에 입장을 함께했다. 계속되는 갈등 속에 지난 2월 특허 논란이 터졌고, 볼썽사나운 진흙탕 싸움에 결국 KAIST 학생들까지 발벗고 나서게 됐다. 학생들은 1인 시위, 공부시위 등 모임을 진행하며 서 총장의 일방적 소통에 제동을 걸었다.

'Anyway, goodbye'였다. 물론 학생들이 직접적으로 시위에 나서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 상황이다. 교수협의 배경이 있었다느니, 학생들이 어떤 이의 주도하에 움직이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는 많지만 확실히 밝혀진 건 없는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KAIST 학부 총학생회가 5월 기자회견을 열고 서 총장의 사퇴를 촉구했다는 사실이었다. 학생들이 서 총장의 퇴진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총동문회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입장을 발표했다.

그들은 성명을 통해 "우리 동문들은 현재의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중대하고 시급한 사안으로 인식하고, 사태해결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현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신속한 대응을 촉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 서 총장 "테뉴어 심사제도 때문에" vs 교수협, "독단적 운영으로 학교 파행"

최근 기자회견에서 만난 서 총장은 교수협의 움직임에 대해 "테뉴어 심사제도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고 일축한 바 있다. 서 총장에 따르면 현재 KAIST 교수들 중 테뉴어 심사제도를 통과하지 못한 교수들은 전체 교수의 49%나 된다.

서 총장이 개혁의 칼을 뽑아들기 전에는 기간만 지나면 테뉴어를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 총장은 이같은 제도로는 세계 유수 대학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 교수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교수들의 능력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적용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시기상조였을까. 개혁의 이름으로 도입됐던 KAIST만의 무한경쟁 시스템은 교수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연구실적이 좋지 않을 경우 정년 보장을 해주지 않는 테뉴어제도 도입으로 KAIST 교수 140여 명 중 23%가 탈락하는 일이 발생하자, 2010년에는 두 명의 교수가 심장마비로 쓰러지기까지 했었다.

KAIST 내부 관계자는 "성과주의에 매몰돼 질적인 발전을 도외시한 단기적이고 외형적인 팽창과 독단적이고 외부 과시적인 형태로 추진되는 개혁은 장기적으로 KAIST가 세계 제일의 대학으로 발전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교수들 역시 변화의 바람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소통과 타협 없는 일방적 개혁에 지쳐갔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소통과 타협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가 없는 무형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교수협 측이 제기하고 있는 소통에 학교 측이 반발하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학교 측 관계자는 "소통이라고 하는 것이 막연할 수 밖에 없다.

총장이 개인적으로 학생들과 일일이 이야기하고 할 수는 없는 입장 아닌가"라며 "소통을 하자고 해도 '이제는 됐다'식으로 나오는 교수협과의 싸움이 이제는 머리아플 따름이다"고 토로했다.

◆ 정면충돌로 치닫는 구성원…타협점은 없나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양 측이 서로가 원하는 부분을 채워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평이 대부분이다. KAIST 구성원들은 그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었고, 서 총장은 그들이 특권의식을 당연하게 갖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서 총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는 교수들이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다. 교수들은 교직원보다 우대 받기를 원하며 점심식사도 따로 한다.

하지만 교수들은 교직원이 동료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며 " 교수들은 상호존중 정신을 배워야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들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KAIST를 더 나은 학교로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서로 도와야 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주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개혁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에게 있어 개혁의 정당성을 무너뜨리는 타협은 있을 수 없었다.

서 총장이 말하는 기득권이란 사전에서의 의미와 조금 다른 듯 하다. 사전에서의 기득권의 정의는 특정한 자연인 또는 법인이 정당한 절차를 밟아 이미 법규에 의해 얻은 권리를 뜻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기득권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 자체가 부정적으로 변질돼 있어 자칫 잘못하면 안 좋게 비춰질 수 있다는 게 문제로 작용했다.

기득권이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KAIST가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그들 스스로의 자존감이 높아져야 한다. 어느 정도 선에서의 타협점을 찾았어야 한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KAIST 교수는 "과감한 변화와 시도는 좋지만 일방적 추진이 문제가 되는 것"이라며 "KAIST 내부 문제가 밖으로 퍼지기 전에도 교수들이 서 총장에게 경고의 메세지를 많이 보냈었다.

어떤 일이든 독단적인 추진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들이 적이든 함께 가는 친구든, 주변이 움직여야 변화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대 의견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밀고 나가는 것은 잘못된 개혁 방법이다.

구성원들이 어떤 점을 고민하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을 수렴하지 못한다면 개혁은 힘을 잃을 수 밖에 없다"며 "서 총장이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은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느냐'가 아니라 '내가 개혁하면서 무엇을 빠뜨렸는가'에 대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현재 KAIST의 상황에서 타협점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잇단 폭로에 개교 이후 처음으로 총장이 교수를 고발까지 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교협은 "연임 임기가 절반이 되는 7월에 서 총장이 물러나지 않고, 이사회에서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서 총장측 역시 "지금 총장에게 물러나라는 요구는 아무런 근거도 명분도 없다"며 이같은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결국 구성원과 학교측이 타협점이나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다면 KAIST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이공계 대학을 국민들은 걱정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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