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소 마련된 을지대병원 장례식장 각계 조문 행렬…10일 발인
과기계 종사자 "안타까운 일에 휘말려…성과주의 풍토 바꿔야"

지난 6일 오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고(故) 정혁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원장의 빈소는 대전 을지대학병원 장례식장 특2호실에 마련됐다.

주말과 휴일 정 원장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을 듣고 빈소를 방문한 직원과 조문객의 얼굴에는 침통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생명연 관계자는 "전날에도 연구원에서 치러진 공식행사를 마치셨다"라면서 "이렇게 가실 분이 아닌데 믿어지지 않는다"며 애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빈소를 지키고 있는 생명연 관계자들은 갑작스러운 비보에 충격이 가시진 않은 듯 정 원장의 안타까운 죽음을 언급할 때마다 예외없이 눈물을 보였다.

빈소가 마련된 을지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정부출연연구기관과 기업 등 각계에서 보내온 화환들이 줄을 이었다. 장례가 주말 동안 계속 되는 만큼 과학기술계 인사들의 조문은 8일과 9일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빈소를 찾은 많은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2012 HelloDD.com

정 원장은 6일 오후 6시37분께 생명연 내 3층 높이의 국가생명공학연구센터 건물 앞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다 직원에게 발견돼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생명연은 곧바로 장례위원회(위원장 김성욱 선임연구본부장)를 구성하고 고인을 보내는 장례절차에 들어갔다.생명연 장례위원회는 6일 밤 9시경 같은 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했다.

언론을 통해 정 원장의 비보를 접한 조문객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조문객들은 한결같이 정 원장이 평소 보여준 연구자로서의 강직하고 올곧았던 모습을 떠울리며 경찰이 무게를 두고 있는 '자살설'을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때문에 장례 절차를 진행하는 생명연 관계자나 유가족, 조문객들도 조심스러운 표정이다.
 

▲을지대학병원 빈소 앞 모습. ⓒ2012 HelloDD.com

지난 7일 오전 조문을 마치고 울먹이며 빈소를 나서던 최선미 한의학연 박사는 "비보를 들고 달려오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자생식물사업단장을 하시며 많은 연구자들을 격려해주시고 결단력 있게 일을 추진해오셨는데 너무나 안타까운 죽음"이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강문선 생명연 경영기획부장도 "사고 당일에도 원장님이 직원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업무를 보셨기 때문에 사고 소식을 듣고도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세포조직 배양기술의 대가로서 북한을 비롯한 세계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고자 열정을 다하셨는데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됐다"며 침통한 마음을 전했다.

한편 정 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과학기술계 역시 애통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 더욱이 현직 출연연 기관장이 재임 도중에 자살이든, 사고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일 자체가 처음이라며 일선 연구현장에서는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한 출연연 기관장은 "애통을 금할 길이 없다. 천상 과학자셨다. 그런 분이 안타까운 일에 휘말려 세상을 떠나신데 대해 과학기술계는 물론 대한민국에서도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라며 "현재 과학기술계는 안팎으로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기관장이라는 자리가 외부에서 볼 때는 한 기관을 통솔하는 리더로서 대우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현재의 과학기술계를 둘러싼 상황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기관장 역시 정부 기관에서는 일개 기관의 일원일 뿐이다.

과학자를 대우하는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다"며 "이번 사건으로 인해 과학기술계를 둘러싼 환경이 조금이라도 변화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정 원장 역시 애타게 바라던 일이었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약 140여 개의 근조화한이 장례식장을 가득 채웠다. ⓒ2012 HelloDD.com

일부에서는 정 원장이 최근 연구소기업과 관련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왔던 점을 상기시키며 연구와 경영에서 모두 최대의 성과를 바라는 연구기관의 풍토를 지적하기도 했다.

최종인 한밭대 경영회계학과 교수(대덕벤처협회 정책연구소장)는 "63빌딩 만한 인공 씨감자 배양 공장을 짓겠다는 꿈을 갖고 의미 있는 제품개발을 통해 인류에 기여하기 위해 30년간 과학자로 연구개발에 전념하신 분"이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또 최 교수는 "이번 불행한 사건은 기술개발과 사업화한계의 모호함에서 비롯된 점도 있다. 사업 분야에서 책임져야 할 일을 연구소에 전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출연연이 최고의 연구개발 성과를 내는 것만이 아니라 더욱 복잡하고 역동적인 불확실성 속에서 성공적 사업화를 요구받는 것이 올바른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생명연 장례위원회는 정 원장의 장례를 연구원장(葬)으로 치를 예정이다. 10일 오전 8시 30분 을지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식을 한 뒤 고인이 평생을 몸담고 연구해온 생명원에서 영결식을 진행하게 된다.

장지는 충남 연기군 남면 고정리 은하수 공원(1599-4411)으로 결정됐다. 상주는 정 원장의 남동생인 정원석씨가 맡고 있으며 유족으로는 미망인과 두 딸이 있다.
 

▲출연연과 과학계가 정 원장의 죽음을 애도했다. ⓒ2012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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