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재단 출범 3년 이승종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연구자 감동 지원시스템 시행…3개 기관 통합 안착"

기초연구 지원시스템의 효율화와 선진화를 위해 한국과학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을 통합해 탄생한 한국연구재단(이사장 이승종)이 26일로 출범 3년을 맞는다.

3개 기관의 통합으로 잡음이 일었던 당시와 달리, 3년이 지난 지금까지는 실패보다는 성공에 가깝다는 게 연구현장 안팎의 평가다. 이승종 이사장은 출범 이전부터 2년간 과학재단 기초연구본부장으로 봉직하면서 연구재단의 탄생을 물심양면 지원했던 인물이다.

그는 "이사장으로 부임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출범 이전부터 통합을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감회가 남다르다"며 "현재 연구재단의 성과는 점진적이지만 가시적으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재단은 ▲과학기술분야를 지원하던 '과학재단' ▲과학기술과 인문사회분야를 지원하던 '학술진흥재단' ▲과학기술분야 국제협력을 지원하던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이 통합돼 출범한 국가대표 연구지원 전문기관이다. 인문사회와 과학기술, 예술체육, 심지어 문화 융·복합까지 우리나라 모든 학문과 연구 분야의 기초원천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연구재단의 출범은 연구 과제 지원의 중복 문제가 시발점이 돼 진행됐다. 통합되기 전, 수십년 간 학술진흥과 연구개발(R&D) 지원체계가 크게 과학재단과 학술진흥재단으로 양분되다 보니 일부 비슷한 연구에 지원이 중복됐기 때문이다.

특히 과학기술분야에 대한 지원이 분산돼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고, 국가예산이 낭비되고 비효율적으로 집행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또 과학기술과 인문사회를 연계한 융·복합연구 지원에도 한계가 있었다.
 

▲연구재단의 이공계 분야 기초연구사업 구조 ⓒ2012 HelloDD.com

연구재단의 출범 이후 3개 기관의 유사 기능을 통합해 중복 지원을 해소했고, 그 결과 국가연구지원체계의 전문성과 효율성이 크게 제고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이사장은 "하나의 완전한 피라미드와 같이 연구자들의 연구발전단계에 따른 생애주기별 전주기적 지원이 가능해졌다"며 "체계적인 시스템(피라미드 구조)으로 구축·운영할 수 있어 시너지효과를 창출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인문사회와 과학기술 융·복합 연구지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토대도 마련됐다. 지금까지 생명공학과 나노기술 정보통신기술 등 기술 간의 융합, 과학기술 간의 융합 또는 인문사회 간의 융합은 통합 이전 기관에서 충분히 이뤄져 왔지만, 진정한 의미의 융합인 인문사회와 과학기술 간의 융합연구를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는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이 이사장은 "21세기 융·복합 시대를 맞이하여,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이 서로 융합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미래 신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없고, 향후 국제 경쟁에서도 뒤쳐질 수밖에 없다"며 "모든 학문의 근간이 되는 인문사회의 상상력과 과학기술의 객관성·논리성이 더해져야만 비로소 국가적·사회적 이슈에 대한 해결책과 신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같은 신념을 토대로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매김한 융합 연구를 체계적·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융합해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의 핵심 동력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6T(IT, BT, NT, CT, ET, ST) 등 신기술 간의 폭넓은 화학적 융합을 통해 미래 신성장동력을 창출해내는 중심축의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 "글로벌 과학기술 경쟁력, 이공계 인재육성에 달렸다"
 

▲이 이사장은 과학기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공계 인재 육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2012 HelloDD.com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도 마찬가지지만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갖추기 위해서는 우수한 신진연구인력, 특히 이공계 대학원생에 대한 적극적인 육성이 무엇보다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 이사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력은 이미 전 세계인의 평가를 받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지난달 31일에 발표한 '세계경쟁력연감 2012'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IMD의 조사가 시작된 1997년 이래 최고 수준인 22위로 평가됐다.

과학연구의 양적·질적 수준을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주로 사용되는 지표인 SCI(Science Citation Index) 역시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의 경쟁력을 나타내준다.

전체 249개 세부분야 중에서 ▲세포와 조직공학(cell & Tissue Engineering, 세계 2위) ▲컴퓨터 과학, 하드웨어와 건축(Computer Science, Hardware & Architecture, 세계 3위) 등 26개 분야(10.4%)는 세계 5위안에, 82개 분야(32.9%)는 10위권에 포함되고, 세계 20위권에 드는 분야도 175개(70.3%)에 달한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에도 이공계 기피현상, 우수 연구인력 해외유출 등 한국의 과학기술 인재육성 문제점은 점차 심화되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상태다. 이공계 학과에 입학한 후 10년 가까운 고생 끝에 겨우 박사학위를 취득해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곳이 없는 현실에서 우수한 과학인재가 이공분야를 등지고 특정 학과(의대와 법대 등)로 몰리거나 해외로 떠나는 현실을 탓할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이 이사장은 "무엇보다 우수 인재의 이공계 기피현상과 해외 유출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점은 바로 과학기술자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는 인식의 변화다"며 "그들의 업적과 능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풍토 마련이 선행되어야 하고, 특히 학위를 따면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생활이 가능한 일자리 마련도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1997년 외환위기 때 구조 조정된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자식들에게는 절대로 대물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과학기술을 전공하지 못하게 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권유한 결과 이공계 기피 현상과 해외 유학 등이 촉발됐다"며 "우리나라의 성장 잠재력이 크게 훼손된 상태다. 유능한 과학기술인력을 양성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한 번 경력이 중단되면 다시 돌아오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연구재단이 물심양면으로 나선다는 계획이다. 연구재단은 이공계 기피현상 해결과 우수인력 해외유출 방지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국내 우수 대학원생들이 학비와 생활비 걱정 없이 학업과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지난해부터 박사과정 및 석·박사통합과정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글로벌박사 펠로우십(Global Ph.D. Fellowship)'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특히 단순히 학업성적이나 연구실적보다는 잠재적 발전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을 선정·육성하겠다는 목표 하에 지난해에는 94억5000만원의 예산으로 전 학문분야의 박사과정생 중에서 총 295명을 선발했고, 올해에는 155억5000만원(지난해 대비 1.6배 증액)의 예산으로 205명을 새롭게 선정·지원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우수한 인재를 지속·안정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2단계 BK21사업과 WCU사업의 장점만을 취한 새로운 후속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다양한 사업들을 통해 연구재단은 이공계 기피현상을 해결하고 우수 연구인력의 해외유출을 방지하고자 국내 대학원생들이 학업과 연구에만 몰입하도록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그러나 충분하지 않다.

많은 이공계 학생들이 마음 놓고 학업과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 과학기술인들이 중심이 된 능동적 참여 촉구…소극적 대응 안돼
 

▲과학가술계 현안 해결을 위해서는
과학기술계의 능동적 참여가 필요하다고
피력하는 이 이사장.
ⓒ2012 HelloDD.com
최근 과학기술계에는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고, 우리 과학기술인들은 국가 과학기술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사안들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이 이사장은 이때야말로 소극적으로 대응 또는 회피하거나 조직과 개인의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특히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떠한 해법과 방향이 우리나라 과학기술과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지를 과학적·객관적으로 판단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등 우리 과학기술인들이 구심점이 되어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며 "지식인들이 먼저 국민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들의 전문성을 십분 활용해 사회적 이슈에 적극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연구에 과감한 시도를 부탁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도쿄대 고시바 마사토시 명예교수는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수개월 간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학업에 매진하지 못해 졸업성적도 꼴찌였다"며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중성미자 12개를 검출해냈고 그 결과 200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의 주인공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집중적으로 연구한 사람이 결국 노벨과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을 수 있다"며 노벨상 수상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밝히기도 했다.

연구를 지원하는 기관답게 과학자들의 윤리의식 부분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땀과 노력으로 얻은 세금인 재단의 연구비를 지원 받아 연구할 때에는 학술 및 R&D의 새로운 경쟁력을 창출해 국가와 사회 및 학문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며 "개인의 영욕만을 위해 의도적으로 잘못된 데이터를 기재하거나 과장하는 연구태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자들이 확고한 연구윤리의식을 가지고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아이디어를 발현해 우리나라 학문 발전에 크게 공헌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연구재단은 연구자들이 창의적·도전적 연구를 수행해 우리나라 신성장동력 창출과 선진일류국가 진입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 연구자 감동 연구지원 시스템 발굴 시행…"소통 강화하겠다"

연구재단의 향후 계획은 기존의 제도를 발전시켜 더 나은 시스템을 구축시키는 것과, 과학자는 물론 일반인들과의 소통을 강화해 탁월한 연구 성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전략을 시행해 나간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우선 연구재단 출범부터 시작한 '한국형 PM(본부장과 학문단장)제도'를 보완·완성하기 위해 규정에는 있었지만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던 '책임전문위원(CRB)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다.

이번 CRB 선임으로 기존의 '본부장-학문단장-RB(전문위원)' 체제에서 '본부장-학문단장-CRB-RB' 체제로 확대 개편되고, PM에게 집중된 과중한 업무량을 CRB에게 분산해 CRB와 RB는 평가업무에, PM은 기획업무에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재단의 지원으로 창출된 우수한 연구 성과가 교육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선순환 연계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 이사장은 "요즘 우리나라 대학들은 수많은 대학평가 순위경쟁으로 연구업적을 높이는 것에만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현 정부에서 교육과 과학기술을 합쳐 '교육과학기술부'를 출범시켰고 그 일환으로 우리 연구재단도 통합되었기 때문에, 연구재단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연구와 교육 간의 선순환 고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는 재단의 우수한 연구성과가 대학원 교육과정으로 이어지도록 하고, 다음 단계로 대학교(학사) 교육과정으로 선순환 될 수 있도록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시범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아울러 연구자가 만족하고 감동하는 연구지원 시스템을 발굴·도입하겠다는 계획도 눈길을 끌었다.

특히 올해에는 풀뿌리 기초연구자들의 창의성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도록 '한국형 그랜트 제도'를 이공분야의 경우 일반연구자지원사업과 학문후속세대양성사업에 우선 시행한다. 이 이사장은 "한국형 그랜트 제도는 기존의 계약 개념이 아닌 수여 개념으로 연구비를 지원함으로써 가혹한 결과평가보다는 연구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여 탁월한 연구성과 도출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연구자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해 우리나라 학술과 과학기술의 저변을 넓히고, 국민의 지식력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연구재단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입니다. 납세자인 국민에게 재단의 사업을 알리고 우수한 성과를 되돌려 드리는 것은 재단에 부과된 가장 중요한 의무 중 하나입니다. 지역과 계층을 확대하고 콘텐츠를 양적·질적으로 개선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국민에게 한걸음 다가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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