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화 반세기 과학화 100년-인물편②]국가성장 원동력 공통분모과학자들 "차기 정부 과학기술 진흥 위해 부처 신설 필요"

 

 

'과학기술은 국가 리더의 몫이다.' 과학기술 선진국이 되기까지 그 이면에는 국가 수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함께 했다는 의미다. 과학기술은 국력과 국격을 재는 가늠자라 할 수 있다. 선진국들이 기초과학과 거대과학 연구에 집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우주개발 역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당초 로켓기술 강국은 독일이었다. 그러나 2차대전에서 패망한 이후 독일은 우주기술을 진두지휘 할 리더를 배출하지 못했고, 과학자들마저 뿔뿔이 흩어졌다. 결국 소련과 미국에게 우주기술의 주도권을 넘겨 주고 말았다. 소련은 독일 과학자를 영입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우주 진출의 선두를 차지했다.

소련의 우주기술 속도에 놀란 미국은 케네디 대통령이 아폴로 우주계획을 강력한 지도력으로 추진한다. 그 결과 1969년 소련을 제치고 달에 착륙하는데 성공하며 우주개발 강국의 주도권을 잡았다. 최근 세계에서 세번째로 유인 우주선 도킹에 성공한 중국은 1956년 마오쩌둥이 과학기술 장기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지원하면서 우주개발이 본격화 됐다.

과학기술 강국 일본 역시 국가 리더의 역할이 컸다. 패망의 참담함을 경험한 나카소네 수상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로켓 기술을 이전 받기 위해 미국의 관계자를 직접 설득하면서 가능해졌다. 이처럼 국가 리더가 과학기술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과학정책은 물론 성과에도 큰 영향을 주는게 사실이다.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해방이후 이승만 대통령부터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 현 이명박 대통령까지 국가 리더의 관심과 의지는 조금씩 달랐지만 과학기술 정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다. 국민소득 80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한국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과학기술의 역할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실제 역대 대통령 대부분 과학기술관련 부처를 신설하는 등 각종 과학기술정책과 예산확대를 통해 과학기술계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연구현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과학자들은 "사람은 누구나 관심을 가져주고 격려해주면 기분이 좋아진다. 과학자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관심을 표시하며 연구현장을 방문해 '잘한다'고 격려해주면 어려움 속에서도 아웃풋이 착착 나오게 할 정도로 힘이 난다"면서 "대통령마다 과학기술에 대한 애정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관료들이 국가 연구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연구원으로서 사명감마저 흔들리게 한다. 대통령이 그걸 막아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박 대통령 이후에는 그런 면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 이공계 인력 해외 유학 장려하고 원자력연구소 세운 이승만
 

 

▲이승만 대통령(앞줄 왼쪽에서 두번째)이 TRIGA  MArk-Ⅱ공사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2012 HelloDD.com

이승만 대통령(1948~1960년) 시기에는 해방 이후 어수선한 상황에서 한국전쟁까지 겪어 과학기술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정부에서는 과학기술보다 전쟁이후 복구에 주력했다. 과학기술인력의 필요성은 인식했으나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 대통령은 이공계 인력들의 해외 유학을 장려했다. 또 미네소타 플랜을 통해 이공계 인력들이 미국의 선진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공계 인력의 필요성을 인식한 그의 안목이 있었다는 의미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이 대통령이 기여한 부분은 원자력 분야에 역점을 뒀다는데 있다. 1948년 5월 북한이 대한민국에 송전을 중단한 적이 있다. 당시 한국은 발전 설비가 거의 없었다. 미군이 발전 군함을 인천과 부산에 정박시켜 겨우 전기를 공급했다. 이런 이유로 이 대통령은 높은 열의를 가지고 원자력연구소 설립을 진두지휘했다.

그리고 1959년 한국 최초의 연구기관인 원자력연구소가 탄생한다. 한국이 오늘날 선진국들을 제치고 원자력 강국으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서는 이미 기사를 통해 보도했기에 여기에서는 넘어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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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직접 실천한 '전두환'

"그거 뭐지. 고리에 있는 원자로, 그게 경수로 아닌가. 우리 원자력발전소는 대부분이 경수로인데 거기서 사용할 핵연료는 왜 개발하지 않지? 우리 입장에서는 중수로 핵연료보다 경수로 핵연료가 더 중요하지 않나."(전두환 대통령이 원자력연을 방문해서)

전두환 대통령(1980~1988년)은 군부정권으로 출발해 집권초기 국방과학연구소의 핵심인력을 대대적으로 축소하고 원자력연구소 폐쇄 등 과학기술분야에서 여러가지 오점을 남겼지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책적으로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기술진흥확대회의, 기술진흥심의회의 등을 구성하고 직접 주재하며 과학기술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가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하기 전 잠시 들른 원자력연구소에서의 브리핑은 원자력기술개발의 방향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다.

외국기술에만 의존하던 한국이 경수로 계통설계부터 핵연료 기술개발까지 할수 있는 계기가 됐다. 전두환 대통령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은 연구현장 방문에서도 잘 나타난다. 박정희 대통령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KIST(1회), ADD(1회),ETRI(3회), 원자력연(1회) 등 연구현장을 골고루 방문하며 과학기술인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당시 브리핑을 맡았던 한필순 전 소장은 "처음에는 15분동안 머무르기로 했던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며 50여분동안이나 있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분분하지만 원자력 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누구보다 관심이 높았다"면서 "대통령의 한마디로 한국이 원자력 기술 선진국으로 가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회상하며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 핵융합기술에 해박했던 '김대중' 미래 위한 과학기술 강조

"지금 상황이 어렵다고해서 미래를 포기하면 우리에게는 정말로 미래가 없습니다.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더라도 미래에 할 수 있도록 준비 해 놓아야 합니다."(김대중 대통령의 핵융합 연구에 대해)

1998년은 모두가 기억하듯 외환위기로 국가 부도 지경의 심각한 상황이었다. 일부 정부관료 중에는 핵융합, 우주개발 등 미래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했다. 김대중 대통령(1998~2003년)은 이런 관료들에게 아무리 어려워도 미래를 포기하면 안된다며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통령의 철학과 주장은 과학기술관련 예산편성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또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설립해 2025년 과학기술 장기비전을 수립하고 과학기술기본법을 발효시켰다. 실제 김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연구개발투자 분야 예산을 확대했다. 이런 영향으로 IMF 당시 예산조차 거의 없는 상태에서 명백만 유지하던 핵융합 연구는 2001년부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김 대통령은 핵융합기술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졌으며 관심도 높았다고 한다. 2001년 미국에서 9.11테러가 일어난 다음날 핵융합연구시설을 방문하기로 했던 일정이 취소된 적이 있다. 모두들 추후 방문은 없을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대통령의 주장으로 20일 후 다시 일정이 정해졌다.

핵융합연구현장을 방문한 김 대통령은 자리에 참석한 관계자들에게 핵융합의 원리를 설명할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갖춰 모두를 놀라게 했다는 후문이다. 이경수 전 국가핵융합연구소 소장은 "특히 과학기술분야의 해박한 지식은 관련 과학자들도 깜짝 놀랄정도"라고 평가하면서 "김 대통령은 미래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하는 것 같았다. 또 책을 통해 과학기술에 대한 공부도 많이하시고. 정치적 입장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지만 어려운 국가상황에서도 미래 비전을 가진 리더가 있었다는 것도 대한민국에게는 행운"이라며 리더의 미래 비전을 강조했다.

◆ 과학현장에 대한 애정 듬뿍 표현한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에서 세번째)이  KSTAR 완공식에 참석해 기념식을 하고 있다.(사진제공 국가핵융합연구소) ⓒ2012 HelloDD.com

"(몇 분정도 아무말도 못하고 뒤돌아 서 있다가)가슴이 너무 벅차올라서 무슨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노무현 대통령 ETRI 와이브로 시연 후)

"요즘 기쁠일이 하나도 없었는데 KSTAR를 보니 정말 기쁩니다." 연구현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기억하는 과학자들이 유난히 많았다. ADD, ETRI, 핵융합연 등 그는 방문한 연구소마다 잠시 머무르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많은 애정을 가지고 결과를 지켜보며 연구자들을 격려했다.

노무현 대통령(2003~2008년)은 '제2 과학기술입국'을 국정운영의 슬로건 중 하나로 내세우며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과학기술부의 부총리부처 승격, 과학기술혁신본부 신설 등을 골자로 하는 '신과학기술행정체제'를 국정운영의 주요 지표로 삼았다.

노 대통령은 국방과학기술에도 많은 애정을 쏟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2002년 7000억원이던 국방연구개발비 예산을 2003년에는 1조2000억원으로 78%나 대폭 늘렸다. 또 방위사업청을 신설해 국방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도록 했다.

국내 기술로 개발한 지상장비 전차시연회를 보기위해 ADD를 방문 한 노 대통령은 한시간 이상의 시간을 할애해 안전성 등을 꼼꼼하게 질문하며 관심을 보였다. 발표를 주관했던 김의환 전차사업단장은 "전차개발 사업은 노무현 대통령의 재가로 재임시기부터 시작됐고 임기 말쯤에 마무리 됐다. 많은 애정을 보였는데 당시 경청하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라고 회고했다.

김 단장은 이어 "국방기술개발에 참여하는 연구원들은 자신의 연구성과에 대한 성취감을 느끼기 어렵다. 국가에 대한 사명감이 많이 필요하다"면서 "나라가 이에 대해 격려를 해주고 인식해주고 독려하는게 가장 필요하다. 박정희 대통령 이후 이런부분이 약화 돼 가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ETRI에서 와이브로 기술을 직접 체험한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는 지금도 연구원 내에서 회자되고 있다. 평소 달변가로 소문난 그였지만 한 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와이브로 기술개발에 참여한 50여명의 연구원들을 앞에 세워놓고 그저 뒤돌아서서 연신 헛기침만 해댔다.

모두들 의아해했다. 황승구 단장은 "그렇게 한참을 있더니 천천히 돌아서서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너무 놀라워서 말을 못할 것 같아 뒤돌아있었다'고 말하면서 연구원 모두와 악수를 하며 치하를 했다"면서 "연구원들 모두 크게 고무됐다. 리더의 역할은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핵융합연구소에 방문해 플라즈마 현상을 눈앞에서 본 그는 조금은 흥분된 표정으로 플라즈마 기술에 대해 거침없이 설명하기도 했다. 이경수 전 소장은 "대통령의 관심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관련 연구자들의 사기가 껑충 뛰었다"며 당시를 뒤돌아봤다.

◆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과학기술 관심 있었으나 현장 방문은 '글쎄'

노태우 대통령(1988~1993년)은 헌법상 과학기술자문기구를 새로 설치하도록 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과학기술자문회의는 비상설기구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듯이 노태우 대통령의 과학기술정책은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더구나 경제수석비서관실 과학기술담당경제비서관이 없어지면서 과학기술정책에서 대통령의 역할은 줄었다는 평가다. 국내외적 환경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 원자력기술에 관심이 높았으나 1991년 자의반 타의반 비핵화선언을 하면서 노 대통령은 원자력분야 기술 개발에서 강한 드라이브를 걸지 못했다.

실제 연구현장에서도 그에 대한 기억은 '글쎄'다. 한 연구원 출신 인사는 "그가 연구원을 방문했었는데 전시실만 한번 둘러보고 아무말도 하지 않고 갔다"면서 "과학기술에 관심이 있었는지조차 의심이 들 정도였다"고 씁쓸해 했다. 재임 기간동안 그의 연구현장 방문은 KIST(1회), ADD(1회), ETRI(2회)다. 김영삼 대통령(1993~1998년) 시기는 선진기술의 강력한 국제적 보호주의로 과학기술 자립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됐다.

김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시기에 만든 '2000년대 선진 G7국가 진입'이라는 주제아래 과학기술분야 투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실제 1994년 과학기술분야 예산인 전년대비 32.7%나 늘어났다. 또 경제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과학기술장관회의를 설치하는 등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을 담당하던 비서관이 폐지되면서 경제관료의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됐다. 실제 과학기술정책은 경제정책 다음으로 밀려났다.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연구현장의 반응은 긍정과 부정 반반이다. ADD에 근무했던 한 과학자는 "그에 대해서는 실망이 크다. 대통령으로서 자주국방에 관심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정도로 국방과학기술에 소홀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다른 과학자는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우주개발과 핵융합 등 거대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기술개발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대통령의 리더십은 국가정책 전반에 영향을 주는게 사실이다. 그중 과학기술 정책은 국가성장의 기반으로 대통령의 관심에 따라 결과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다행히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저마다 관심분야는 조금씩 달랐지만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공통분모는 같았다. 과학자들은 "대통령의 관심은 많은 영향을 준다. 바쁜 중에도 직접 책을 보고 공부하며 관심을 갖는다는 것만으로도 과학자에게는 큰 힘이 된다"면서 "대통령의 철학이 중요하다. 국가의 장래를 위해 미래 기술을 볼 줄 아는 혜안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학자들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아쉬움도 살짝 언급했다. 그들은 "현 정부에서는 과학기술분야 예산은 늘렸지만 관련 부처를 폐쇄하는 등 과학기술계에 실망을 안겨줬다. 한국의 미래과학기술의 중심역할을 할 기초과학연구원 개원식에서도 대통령은 참석하는데만 의의를 둔 것처럼 보여 아쉬움이 많았다"면서 "현 대통령의 판단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우려가 되는게 사실이다. 대선을 앞두고 각 당의 후보들이 과학기술관련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누가 되든지 과학기술의 진흥과 미래를 위해 부처는 꼭 신설해야 한다"며 간곡히 당부했다.
 

 

▲이승만 대통령 시기 TRIGA  MArk-Ⅱ 도입 품의서.  ⓒ2012 HelloDD.com

 

▲전두환 대통령은 ETRI의 전신인 한국전자기술연구소에 방문해 초고집적반도체기술공동개발(안)에 '전자통신연구소장은 전연구원의 인사권을 장악해야 하며 3사(공동개발에 참여한 삼성반도체통신, 금성반도체, 현대전자)는 공동운명체로서 연구소장의 지휘 하에 순응 협조해야 함'이라는 친필 메모 친필 사인을 남기기도 했다. ⓒ2012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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