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빈 한의기술표준센터장 "한국을 전통의학 대표주자로"
한때 명의로 소문…한의학 홍보 '헤이그 특사(?)'로도 활동

'10년동안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명의라는 소문도 들었다. 그에게 진료받기 위한 환자들도 많았다. 그런데 갑자기 한의원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새로 선택한 길은 대한한의사협회 상근이사. 한의학의 대중화와 표준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기 위해서다.

지난해에는 한의학의 우수성을 세계 무대에 알리기 위해 '헤이그 특사(?)'로 떠났다. 일본과의 경쟁을 거쳐 '국제 표준화 기구 총회' 세번째 회의를 한국에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한의학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정채빈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표준센터장(이하 표준 센터장)의 이야기다. 그는 최근 표준센터장으로 부임하며 센터 오픈과 총회 개최국 주관자로서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쓸 정도로 바쁜 일정을 보냈다.

◆한의학은 내운명, 집안 분위기로 자연스럽게

"예전에는 공직에 있던 선비들이 퇴임 후 동의보감 등을 보고 마을사람들에게 일부 처방을 해주기도 했는데 집안어른들이 그런 역할을 해 왔다고 들었어요. 자연스럽게 한의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죠." 정 센터장은 부친의 추천으로 한의대로 진로를 결정했다.

84학번인 그가 대학을 진학할 당시만 해도 한의대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었단다. 그는 부친의 조언도 조언이지만 어릴적부터 한의학을 친근하게 접해왔기에 자신의 길처럼 받아들였다. 친구들이 의대, 치대, 약대, 전자공학과로 진로를 결정할 때 그는 한의대를 선택했다. 한의대를 마치고 당연한 순서처럼 한의원을 열었다.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한의학 이용자인 환자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 정 센터장은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면서 "한방병원은 가는 곳마다 처방이 달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불안하다고 했다. 순간 가야할 길이 보였다"고 말했다.

그가 한의원을 접고 다른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분명한 이유다. 2005년 말 그는 10년 동안 운영하던 한의원을 접기로 했다. 그리고 새로 선택한 직업은 대한한의사협회 상근이사. 집안의 반대는 당연히 심했다. 잘 가고 있던 길을 왜 뒤집어엎느냐고들 했다.

"수입이 반으로 줄어드는 것도 있었지만 가족들은 다른 길을 가려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죠. 그렇지만 이미 가야할 길이 분명하게 정해졌기에 가족을 설득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한의학 대중화와 표준을 위해 누군가는 일을 해야한다고 설득했습니다.

" 가족들의 지지를 얻은 그는 대한한의사협회 상근이사로 재임하는 동안 한의학 보험적용확대 등 한의학 대중화와 우수성을 알리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단절됐던 한의학, 전문성 확보와 표준 확립에 주력할것

"한의학의 시작은 단군시기부터라고 볼수 있습니다. 오랜기간 이어지면서 100년전까지만해도 의학의 주류였던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강점이 본격화 되면서 한의학 의사들의 자격은 폐지되고 새로운 의학제도(양의)가 출발했죠.

한의학은 40여년 이상의 공백기를 거친 뒤 1950년에야 다시 한의사 자격이 복원됐습니다." 정 센터장은 한의학의 아픈 역사를 설명하며 "한의학은 주로 책자와 구전을 통해 전해 왔다"면서 "그동안 단절된 한의학을 복원하고 계승하는데 주력해왔다. 그러다보니 표준 등은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표준확립은 앞으로 해야 할일"이라고 강조했다.

각 국이 보유하고 있는 전통의학에 대한 표준 확립의 필요성을 공감하면서 3년전부터 중국이 주도해 '국제표준화 기구 전통의학 기술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이는 ISO에서 운영하는 기술위원회로 전통의학은 249번째로 등록됐다. 정 센터장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300억원의 예산과 30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중의학 표준작업에 뛰어 들고 있다.

중국이 자국내에서 등록한 표준만 80여개가 넘는다. 그는 "동양의학의 주류는 중국과 한국이다. 중국이 자국내 등록한 표준은 곧 세계 표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라면서 "한의학 표준은 현재 6개정도다. 그러나 한의학이 더 우수하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모두가 인정한다. 해서 중국과 같이 협력해 같이 가는 방향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헤이그 특사의 심정으로 한의학 우수성 알릴 기회를 잡다

지난 5월21일부터 24일까지 한의학연 주관으로 국제표준화 기구-전통의학 기술위원회(IST/TC249, Traditional Chinese Medicine(Provisional))3차 회의가 열렸다. 각 국의 전통의학 관계자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번 행사는 한국에서 열렸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중국 호주 일본 인도 등 32개국이 회원사인 이 위원회는 첫번째 중국에 이어 지난해에는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됐다. 정 센터장은 지난해 헤이그 회의 참석에 앞서 결연한 각오로 출발했다. 중국이 처음 회의를 개최하면서 동양의학의 중심이 중국에 집중됐고 회의 명칭에도 'Chinese'가 들어가게 됐다.

그는 회의에서 한의학의 역사와 우수성에 대해 설명하며 용어의 잘못됨을 지적했다. 그 결과 한시적으로 사용하겠다는 뜻의 'Provisional' 용어를 넣는 성과를 이끌어 냈다. 그리고 3차 회의 개최국으로 한국이 선정될 수 있도록 했다. "100년전 헤이그 특사로 파견됐던 열사들의 심정으로 갔습니다. 한의학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다음 회의는 꼭 한국에서 개최되도록 해야겠다는 각오로.

일본과의 치열한 경합 끝에 한국으로 결정됐고요." 이제 그가 전념할 부분은 한의학 표준 확립이다. 22일 한의기술표준센터 개소식에 이어 동물실험동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센터는 연면적 5862.57㎡(표준센터동 4112.35㎡, 동물실험실 1740.22㎡) 규모로 9명의 인력이 표준기획팀과 인프라 운영팀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정 센터장은 "표준에 대한 국민의 수요조사가 기본이고 이를 통해 아이템을 발굴하고 연구해서 표준을 만들고 이를 보급, 교육하는 역할까지 할 것"이라면서 "체질에 따른 표준을 만들어 한중일 중 한국이 동양의학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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