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장 중도 하차 후 수개월째 공석…이달 말 신임 선출
사퇴배경 놓고 여전히 설왕설래…후임 누가되나 관심 증폭

권철신 전 이사장의 중도 하차 이후 산업기술연구회 수장이 3개월 가까이 공석상태가 지속되면서 연구회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로운 국회 출범과 함께 다시 출연연 거버넌스 개편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도 산업기술연구회의 목소리를 모으고 대변할 수장의 부재(不在)에 대한 불안감도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산업기술연구회가 새로운 이사장 공모에 들어가면서 이런저런 논란을 빚었던 권 전 이사장의 '리더십'을 대체할 수 있는 인물로 누가 새 수장이 될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산업기술연구회 수장 누가 오나…"정부 R&D 프로세스 혁신에 눈돌려야"

지경부는 지난 5월 7일부터 16일까지 산업기술연구회 이사장 재공모에 들어갔다. 연구회에 따르면 ▲권영한 전 한국전기연구원장 ▲김기혁 전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장호남 KAIST 생명화학공학과 명예교수 등이 3배수에 올랐으며, 이 달 말 개최되는 이사회에서 최종 선임자가 나오면 다음달 신임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집무에 들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신임 이사장 선임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권 말기에 취임하는 신임 이사장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과학기술계 한 관계자는 "혁신은 내부가 아니라 정부 정책에 있다.

출연연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사장이 역할을 해야 한다"며 "어떤 사람이 이사장으로 선임되든지 내부 혁신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 이 관계자는 "내부를 변화시키려는 것은 현재의 출연연 기관장들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것 밖에 안된다"며 "오히려 대외적인 국가 R&D 프로세스에 관심을 갖고 연구원들을 격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임 이사장 돌연 사표…"배경 뭐냐" 여전히 설왕설래

권철신 전 이사장은 지난 3월 21일 건강상의 문제를 이유로 돌연 사표를 제출했다. 연구회 창립기념식에서 뇌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진 이후 사의를 밝혔다는 게 공식적인 이유다. 그러나 일각에선 권 이사장이 성과주의를 강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출연연들과 마찰을 빚은 게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권 전 이사장은 한양대 무기재료공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도쿄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산업공학계의 '스타 교수'라는 평가를 받고 방위산업학회장과 삼성전자 회장 기술고문 등을 맡기도 했다. 문제가 된 권 전 이사장의 성과주의는 취임 초기부터 강하게 나타났다.

그는 "이제 산업기술을 연구하는 출연연은 연구성과를 세계시장에서 기술료로 벌어와 국민이 10년간 먹고살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세계 1등 기술 창출이라는 가치 아래 R&D 전략포럼 등을 개최하는 등 국가 먹거리 창출을 위해 열정적으로 움직였다.

이같은 권 전 이사장의 다소 저돌적인 추진력은 정부 부처와 산하 출연연들 사이에서 연구성과에 대한 실효성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권 전 이사장이 추진하고 있는 전략들이 실효성에 문제가 많았다"며 "기관의 볼륨이 작은데도 불구하고, 영향이 큰 일을 추진하려다 보니 정부와의 충돌이 잦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출연연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이었지만 그의 활동에 대한 출연연의 평가는 냉정했다. 산하 출연연 기관 관계자는 "세계 1등 기술이나 10년간 먹고 살 수 있는 기술에 대한 부분은 권 전 이사장이 오기 전부터 하고 있었던 부분이었다"며 "R&D 매니지먼트에 대한 부분을 확립시킨 것 뿐, 실질적인 성과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권 전 이사장이 개인적인 문제를 이유로 윗선에서 사퇴 종용을 받았다는 확인되지 않는 소문도 연구현장에서 끊이지 않았지만 산업기술연구회 관계자들은 이와 관련해 어떤 코멘트도 하지 않고 있어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산하 출연연 "이래저래 어수선한 계절"

출연연은 올해 유난히 어수선한 여름을 보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년간 논의된 출연연 구조개편 작업이 다시 논의될 가능성이 커진데다 우수연구자 정년 연장 논란부터 부설연구소 정체성 혼란, 각개 기관 내부의 소소한 문제 등 정권 말기 마다 반복됐던 '출연연 흔들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말 치러질 대선 레이스를 시작한 각 당의 대선 주자들의 셈법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가운데, 출연연의 고민과 현안이 뒷전으로 내몰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여기에 지식경제부 산하 14개 출연연을 총괄하는 산업기술연구회 수장의 오랜 부재는 출연연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산업기술연구회 이사장의 공석으로 출연연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없다. 하지만 출연연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산하 기관장의 의견을 총괄하고, 힘을 실어 정부에 전달해야 할 이사장의 부재는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일선 연구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특히 출연연 거버넌스 개편이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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