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서 사망한 IAEA 사찰관…내달 3일 영결식 앞두고 재조명 움직임
과학기술계 인사들 장례위 구성 "국제사회 피스메이커로 기억될 것"

지난 8일 이란에서 한국인 IAEA사찰관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짧은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장례절차는 어떻게 진행될것인지 등은 언급되지 않았다. 설상가상 사망 후에도 가족의 품으로 쉽게 돌아오지 못했다.

부검이 필요하다는 이란 정부와 IAEA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 정부는 부검한 시신은 자국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입장으로 팽팽히 맞서면서 유족들은 장례식마저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안타까워해야만 했다.

이를 보다 못한 과학기술계 관계자들이 그를 위해 나섰다. IAEA 사찰관으로 15년간 해외에서 활동하며 한국의 원자력 기술의 위상과 국격을 높이는데 숨은 역할을 해온 인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면서. 이런 노력덕분인지 다행히 이란정부가 부검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고 발표했다.

고 서옥석 사찰관을 기억하는 선배와 후배, 동료, 지인들이 뜻을 모아 장례위원회를 구성했다. 또 권오갑 전 차관, 박영일 전 차관, 조청원 이사장, 김진경 전 감사, 김창우 단장, 최만섭 부회장 등 6명이 고문단으로 참여해 장례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지인들은 한결같이 서옥석 사찰관에 대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어려운 길도 마다하지 않던 성실하고 실력있는 인재였다. 그리고 한국의 원자력 발전과 위상을 높이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설정도로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면서 "평화적 이용이라는 사명감으로 사찰업무를 수행하던 그를 국제사회에서는 '피이스메이커'라고 부르기도 했다"며 그를 추억했다.

◆서옥석 사찰관은 누구?

서옥석 사찰관은 과학기술처 원자력국에 근무한 원자력계 전문가다. 90년대 초 남북 상호사찰을 대비해 과기처에 원자력통제과를 신설할 당시 창립멤머로 사찰과 검증을 담당했다. 1998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국제사회에서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IAEA 사찰관으로 파견을 자처했다.

5년간 그의 활동을 지켜본 IAEA측이 그에게 사찰업무를 전적으로 맡아 줄것을 요청했고 그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사명감에 한국의 공무원 자리를 포기하고 사찰관의 길을 선택했다. 사찰관 업무는 말 그대로 세계 각국에 분포돼 있는 원자력발전소의 핵 사찰업무를 담당한다.

국내는 그나마 접근 여건이 좋은 편이지만 브라질, 인도, 파키스탄 등 대부분의 나라들은 접근조차 어려운 험한 오지에 발전소가 위치해 있다. 당연히 근무 여건은 열악했고 방사능 측정 장비 등 사찰 장비가 많아 이동때마다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솔선수범하며 업무를 성실히 수행했고 사찰국과의 매끄러운 관계로 그에 대한 지명도가 높았다. 그동안 남미지역을 담당했으나 15년간 성실히 근무한 점을 높이 평가해 최근 가장 어렵고 힘든 지역인 중동부서를 맡게 됐다.

특히 이란은 2007년도말 UN안보리의 경제 제재 결정을 받을 정도로 복잡하고 심각했다. 또 이라크와의 7년간의 전쟁, 2002년 핵 문제로 국제 사회의 견제가 심해 경제사회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빠져 다들 가기를 꺼리는 지역이었다. IAEA 안전조치부에서는 민감한 외교 현안을 가장 원만하고 공정하게 수행할 수 있는 사찰관으로 서옥석 사찰관을 지목했다.

그는 5월초 이란에 입국, 8일 오전 수도 테헤란에서 남서쪽으로 250㎞ 떨어진 혼다브 지역에서 중수로를 사찰하러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같이 간 동료는 부상만 입었지만 그는 마지막길도 업무 수행중 맞이했다.

한국의 원자력 전문가들 중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그는 IAEA 총회와 각종 전문가 회의 때마다 한국 대표단에게 차량 편의를 제공하는 등 뒷바라지에도 적극적이었다.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동향 등 자문으로 후배들에게 든든한 형님과 같은 존재였다.

장상구 KINAC 원장은 "서 사찰관의 역할로 한국의 원자력 위상이 높아졌고 아랍의 원전 수출도 그런 영향이 알게 모르게 작용했다"며 그의 사고 소식에 슬픔을 표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근무 당시 과기처 공무원이었던 서 사찰관을 처음 만나 인연을 이어왔다는 신창수 KINAC 본부장은 "그는 조용한 성품에 무척 점잖은 성격이었다. 빈틈없는 일처리로 IAEA에서도 손꼽히는 인재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무거운 장비로 어려움도 많았을텐데 한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면서 그의 빈자리를 아쉬워했다.
 

▲사찰중인 사찰관들. ⓒ2012 HelloDD.com

◆한국인 출신 IAEA 사찰관들

IAEA검사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라, 비핵국이 그것을 준수하겠다는 보증을 하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협정을 체결하고, '모든 평화적 원자력 활동에 관련된 모든 핵물질'에 붙는 안전조치를 적용한다는 의무를 부과함에 따라 실시된다. IAEA 검사는 핵물질의 무분별한 사용 및 핵무기로의 전용을 방지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해 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IAEA에서 근무하는 한국인은 21명정도다. 이중 17명이 검사원으로 근무 중이다. 이들은 대부분 국내에서 핵물질 안전조치 업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서, IAEA 검사원으로 근무하면서, 전 세계 원자력발전소, 핵연료 생산시설, 연구시설 등에 대해 안전조치 검사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

각국의 원자력 시설은 안전 문제로 오지에 위치해 있다. 안전조치 검사원으로 일하게 되면, 잦은 출장과 오지의 위험시설 출입으로 안전에 취약한게 사실이다. 또 이동 중 위험에도 그대로 노출 돼 있다. 우리나라 출신 IAEA 검사원들은 우수한 검사수행과 의사소통 능력으로 높은 업무 능력을 평가받고 있어 국위선양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이렇게 국제사회에서 전문가로서 역할을 하며 국위를 선양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그들의 존재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국내 과학기술계에 적을 두지 못하면서 그들은 국내에서도 설 자리가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과학계 관계자들은 "원자력 국제 상황과 정보 등 그들의 역할이 크다. 뭔가 그들을 인정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그의 영결식은 오는 3일 서울강남성모병원에서 과학기술인장으로 거행된다. 일반인 조문은 1일 오후 2시부터 가능하다. 장지는 경기도 용인 천주교공원묘지이다.
 

장례위원회 구성·운영

구성 : 외교통상부, 교육과학기술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원자력안전위원회, 한국연구재단,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한국수력원자력, 한수원 중앙연구원, 한전원자력연료 등 고인의 옛 선배·동료 및 지인으로 구성.

고문단 권오갑 전 차관, 박영일 전 차관, 조청원 이사장, 김진경 전 감사, 김창우 단장, 최만섭 부회장 등 6명.

장례위원장 : 이승구 과우회 회장 장례위원(22인) : 문병룡 공사, 임상범 과장, 박필환 국장, 이근재 국장, 최도영 과장, 홍승호 과장, 사상덕 국장, 오규진 과장, 최원호 과장, 정원영 과장, 박정택 감사, 이상대 팀장, 박윤원 원장, 이성규 부원장, 장상구 원장, 최원식 실장, 차상호 전문위원, 박원필 본부장, 최근식 부장, 조병옥 원장, 김태완 실장, 조석주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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