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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공계 역사 세운 '두 거목' 대덕서 만난다

[공업화 반세기 과학화 100년 ⑥]김창규 장군, 오원철 수석
25일 ADD 등 연구현장 방문, 과학자와 대화 시간도

1962년 5월. 한국 정부가 최초의 과학기술 종합계획을 수립한지 꼭 50년 됐다. 대한민국 공업화 50주년을 조명하는 다양한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의 공업화의 기적을 가능케 한 두 역사적 인물이 25일 대덕을 찾는다. 화제의 주인공은 한국 테크노크라트의 효시 오원철(84) 전 대통령 경제 제2수석비서와 이공계의 쉰들러라 불리는 김창규(92) 전 공군참모총장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참모로 18년간을 한국 경제 개발을 위해 전력 질주한 오원철 전 수석. 그는 한국 번영의 기초를 닦은 중화학 공업 계획을 입안하고 방위 산업 국산화를 계획한 주인공으로 '한국 경제의 설계사'이자 우리나라 ‘테크노크라트의 효시’로 불린다. 박정희 대통령도 그를 '오 국보(國寶)'라 부르며 그의 능력을 인정했다. 오 전 수석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신인 경성공전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후, 고 박 전 대통령 집권 당시 산업화의 시작인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입안하는 실무 책임을 맡았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를 설립했으며, 방위산업은 물론 창원 기계, 구미 전자, 울산 중화학을 비롯해 현재의 대덕연구개발특구의 밑그림을 그린 일등 공신이다. 국가의 전략적 집중 산업지역의 초석을 마련한 오 전 수석은 현재의 과학기술인들에게 그야말로 신화와 같은 존재다. 오 전 수석이 펼쳤던 경제 관련 정책들은 과학기술인들과 공직자들에게 교과서로 통한다. 김창규 전 공군참모총장(現 사단법인 평화연구원 이사장)은 6.25 당시 공군 기술장교 제도를 통해 한국 공업 부흥의 씨앗을 마련, 우리나라 이공계의 쉰들러로 불린다.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누구나 군인으로 참전해야했다. 당시 공군본부 행정참모부장이었던 김창규 총장은 전후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이공계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공군 기술장교 제도를 만들었다. 그는 이공계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학위를 가진 사람은 무조건 공군 기술장교로 받아들였다. 이 제도로 공군 기술 장교가 된 사람들은 수백 명에 이르렀다. 당시 혜택을 받은 대표적 인물이 최형섭 전 과기처 장관과 오원철 전 수석이다. 공군 기술장교들은 후일 공업화 기치를 내건 박정희 정부의 테크노크라트로, 또 산업 역군으로 활약 하게 된다. 선견지명을 갖고 이공계 인력들을 온전하게 보전, 육성시킨 김창규 전 총장은 경기도 시흥군 출신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대위)로 해방을 맞았다. 해방후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직후인 1948년 해방된 조국에서 군인으로 봉사할 것을 강력히 권유 받고 국군에 들어갔다.1952년 공군사관학교 교장을 맡았고, 한국 전쟁 휴전회담에 군사정전위원회 대표로 참여하기도 했다. 공군참모차장을 거쳐 제5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뒤 대한민국 공군 중장으로 예편했다. 예편 후에는 대한중석주식회사, 영남화학주식회사, 호남에틸렌 사장과 주식회사 대림산업의 석유화학 담당 부회장을 지내는 등 산업계에서도 활약했다.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 회장과 한국화학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대림전문대학 학장으로서 교육인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한국 공업화의 씨앗을 마련한 김창규 전 총장, 그리고 한국 공업화를 설계한 오원철 전 수석. 두 원로는 25일 대덕을 방문해 대한민국 과학의 오늘과 내일을 살펴볼 계획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ADD, LG화학연구소와 기초과학연구원 등 연구현장을 방문할 예정이며, ADD에서는 과학자와의 대화의 시간을 마련했다. 공업화 기틀을 마련한 두 원로와의 만남을 희망하는 독자들은 희망 사유와 연락처 등을 명기해 대덕넷(happymate@hellodd.com)으로 메일 접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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