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원 표준연 박사 "건전한 상거래 환경 만드는 것이 소망"

'이른 아침이나 밤에 주유하면, 소비자가 유리하고 낮에 넣으면 불리하다?' '춘천이나 서울 사람과 제주도에 사는 사람은 연중 온도의 영향으로 주유시 서로 다른 값을 지불한다?' 이와 같은 사실들에 모두가 미심쩍은 의심을 가지면서도 명확한 기준제시에 어려움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각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스를 측정한다거나, 물을 측정하는 일, 주유 시 기름의 양을 측정하는 일 등 생활 속에 유량(流量)을 측정해야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들의 정확한 표준을 만들고 산업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보급하는 것. 바로 임기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유동음향센터 박사 연구실에서 담당하는 일이다.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표준장치를 만들고 불확도를 평가하는 일이 지금까지 그가 해온 일이고 그의 연구실이 수행해온 미션이다. 최근 그가 주도하고 있는 연구는 '주유량 온도보정기술'이다. 밀도·온도·압력 등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 유량측정에는 미세한 변화를 가져오는데 이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자는 게 주요 골자다.

그중 특히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바로 온도. 물도 따뜻하면 양이 늘어나고 추우면 줄어들 듯 우리가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을 때도 온도에 따라 미세한 주유량의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추운 날 넣으면 밀도가 높은 기름을 넣게 되는 셈이므로, 실제 들어오는 기름의 양은 많고 돈은 적게 내는 것이 된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 와서 기름값이 자꾸 오르니까 더 문제가 됩니다. 유량측정이라는 것은 물·기름·가스 등 에너지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데 유량측정이 적극 응용됩니다.

주유량의 정확한 온도보정기술을 통해 대중의 공감을 형성하고 건전한 상거래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 연구의 목적이죠." 주유량을 정확하게 측정하지 못하면 주유업자나 소비자 둘 중 한사람은 손해를 보거나 이익을 보기 마련이다.

시장에서 주고받는 거래의 기본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누구는 '여름에 손해보고 겨울에 각각 이익을 보니 보정할 필요가 없다'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거래의 정확성, 공정성, 경제성 등에 더욱 주안점을 둬야한다는 것이 임 박사의 주장이다.

◆ 끊임없는 실험의 반복…객관적 근거 데이터로 

"실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립니다. 이와 같은 논란의 정확한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전국의 주유기에 일정한 기준을 적용하여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을 보정할 수 있는 장치를 달아주어야죠. 각각 개인에게는 적은 양이 될 수 있으나 많은 양을 다루게 될 경우 이는 엄청나죠.

일반 운전자들은 5만원을 주유하면 500원정도 차액으로 다가오지만 만약 석유회사차원에서 보면 굉장히 큰 수치가 됩니다." 임 박사는 이를 분석하기 위해 실제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지난 2년간 기상청에서 측정한 과거 50년 온도변화를 분석하여 남북의 지역차, 여름과 겨울의 계절에 따른 온도차이를 확인하고 이에 따라 실제 주유량에도 차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환경조건에 영향을 많이 받는 작업이므로 추운 날은 추운 날이라서, 더운 날은 더운 날이라 무조건 측정을 해봐야 했다. 툭하면 튀어나가 실험을 했다. 객관적 데이터를 얻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이어졌다. "원하는 결론을 얻기 위해 원하는 날씨에만 가서 하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극한 조건에 가서 실험을 해봐야 객관적 데이터를 얻을 수 있죠. 특히 봄·가을의 경우 하루 편차가 크고 주유소 위치에 따라서도 결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막상 실험을 해보니 일반적인 결과를 얻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직접 실험을 해야하는데 주유소 자체적으로 측정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영업 중 온도센서를 부착하고 측정해야하므로 영업방해가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섭외에 어려움이 있기도 했다. 지역별 연판매량 등을 따져 보정기술의 경제성이 평가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익단체들이 많이 얽혀 있어 말을 꺼내기도 사실 조심스러웠다. 기름을 넣는 짧은 시간 안에도온도의 차는 발생하며 기름이 올라오는 파이프에 가해지는 태양등 외부의 환경요인에 의한 열로 인해서도 유량에는 차이가 난다. 보정기술 자체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으므로 기존의 장치에 온도보정장치를 붙이면 간단히 해결되지만 보정해야하는 타당성을 찾아내는 과정이 핵심이라는 임 박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

어떤 방법으로라도 보정이 필요하다. 물론 보정장치를 설치하려면 추가예산이 소요되니 이에 대한 경제성도 검토할 필요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확한 기준이 제시되어야 할 일이다. 온도 1도가 올라가면 주유량 0.1%의 차이가, 10도면 1%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는 유량측정에서 굉장히 큰 수치다. 정확한 양을 거래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 주유기의 기름 거래에 대해 기준을 확실히 해놓을 필요가 있다. 주유소협회, 정유소협회, 소비자 단체, 국회 등에서 다양한 논란이 있다.

우리나라는 각자의 이권으로 인해 아직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이미 일부 국가는 이의 기준을 법률로 정해 관리하고 있다. 캐나다, 네덜란드, 스위스, 체코, 프랑스 등이 그렇다. 미국의 경우 소비자 단체와 정유소 간 소송이 붙은 사례도 있다.

사정은 나라마다 모두 다르지만 국민 개개인의 힘으로 마련할 수 없는 기준인 만큼 국가적 차원에서 정확한 기준을 정하고 법률로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 "국민들에 공정한 기반시설 제공하는 것, 보람된 일"

지금은 사회적으로도 유량보정의 논란이 임팩트있게 다가오고 있는 만큼 거래기준을 확실히 정해서 가는 것이 필요하다. 변화요소 또한 매우 많지만 유량계나 주유계를 통과할 때 온도에 따라 보정한다면 이와 같은 논란은 불필요하다.

"주유소도 소비자도 손해보지 말아야합니다. 석유에 대한 공정한 거래가 이뤄지도록 앞으로도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확보해 객관적으로 이를 분석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론을 환기시키고 이를 알려 제도를 만들어야죠. 사실 각자의 이권이 개입되어 있어 민감한 문제이긴 하지만 앞으로 정부나 국회 쪽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풀어나갈 생각입니다.

"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유량측정에 대해 정확히 측정을 못해 이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만 표준연의 지속적 연구개발로 관련분야 경험이 쌓이게 됐으며 이를 바탕으로 유량보정기술 개발도 논의를 시작하게 된 것. 임 박사는 지구온난화와 에너지·환경 문제로 인하여 앞으로 이 문제는 더욱 부각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날씨가 더워지는 6~8월경 반드시 신문에 관련기사가 오르내리곤 한다. 지금까지는 이와 같은 논란을 뒷받침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었지만 이제 현장에서 측정한 데이터를 제시할 수 있게 됐다. 임 박사는 30여년 전 처음 유량실에 몸담기 시작해, 국내에 없던 유량 표준을 만들고 장치를 개발해왔다. 그는 "유량 표준장치도 만들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처럼 일반 대중들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다"라며 "실험실에서 좋은 논문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제도와 기반시설을 제공하는 것 또한 매우 보람된 일"이라고 평했다.

또한 그는 "지금까지 마련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과 비전을 제시해야 할 세대가 왔다"며 "표준연의 업무가 외부에서 보기엔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일반 대중들 일상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기반기술을 만들어나가는 일이고 앞으로도 더 다양하며 새로운 주제에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해나가야 할 것"이라는 다짐과 당부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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