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주 부천금형사업협동조합 상임고문 "이미 중국에게 따라잡혀"
"중앙부처·지자체·금형인 혼연일체하면 극복 가능"

"한국은 세계 상위권 들 정도로 금형을 잘 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이 기술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었는데 지자체와 중앙 정부, 금형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때는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혼연일체로 노력해 나가야합니다.

" 부천이 '금형'을 특화사업으로 지정한 지난 2000년부터 세계적으로 한국의 금형을 알리기 위해 달려온 김한주 부천금형사업협동조합 상임고문은 인터뷰 내내 목이 메는 듯했다. 대한민국에서 금형을 제일 잘하기로 소문난 부천의 비결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찾아갔지만 그는 오히려 "부천이 금형을 잘 하긴 하지만 세계적으로 부천 금형을 알릴 수 있었던 몰드 밸리 건축은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부천 지역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금형업체(약 25%)가 분포돼 있다. 특히 삼성 휴대폰인 애니콜에 들어가는 금형제품의 97%가 부천에서 제작되고 있다. 이렇게 지역산업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한주 상임고문은 몰드 밸리에 집착한다. 부천의 금형을 부흥시키기 위해 10년간 직접 발로 뛰어다닌 김 상임고문을 만나 몰드 밸리 실패 이유를 직접 들어봤다.

◆서울 금형기업들, 부천으로 대이동 '그 이유'? 

왜 금형사업이 중요한가? 왜 부천에 금형기업이 모여들었는가? 금형은 목적에 맞는 형상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성형용의 치구다. 성형해야 할 소재를 주입해 가열이나 가압을 통해 소정의 물품을 만드는 원본의 형으로 미세한 흔들림도 있어서는 안된다.

세계 260여개 국가 중 20여 국가만이 소화할 수 있으며, 그중 한국은 중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금형은 IMF 때도 호황기를 누렸던 산업으로 현재까지도 무역부분 흑자를 담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금형은 인간이 의식주를 하는 동안 계속 필요한 기술로 수요가 점점 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이 급격하게 보급되면서 IT 금형기술의 필요성 또한 급격히 증가되고 있는 추세다. 김 상임고문에 따르면 2000~2010년 10년동안 생산된 금형과 1970~2000년까지 30년간 생산된 총 금형 수는 같다. 인간의 삶이 풍족해지고 개인의 취향과 성향이 강해지면서 소품종 다량생산에서 다품종다량생산으로 바뀌고 이에 금형의 수요 또한 점점 커졌다.

2000년 전만해도 금형기업들은 서울의 신당동과 독산동, 문례동, 영등포 일대에 분포돼 있었다. 그러나 서울이 지역개발을 하기 시작해 공장이 서울에 머물 수 없게 되면서 하나 둘 금형 공장들이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금형이라는 기술자체가 쉽지 않아서 배워 바로 현장투입이 되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공장주들은 직원들과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곳을 모색하기 시작해 자연스럽게 서울과 가까운 부천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 그렇게 부천지역에 금형공장이 많이 들어서자 2000년 중앙정부는 금형을 부천 특화사업으로 지정하고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한국 금형알리기 위해 필요한 것 '몰드 밸리'

부천이 금형사업을 크게 지원하고 확대하기 위해 세운 정책이 바로 '몰드 밸리'다. 몰드 밸리는 부천 특화사업이 금형인데도 불구하고 첨단 시설이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영세한 기업이 많아 이를 현대화 하자는 것에서 시작됐다.

몰드 밸리는 4만여평 규모 부지에 아파트형 공장을 7~9층으로 세워 150~300여개의 금형 기업을 밀집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단순히 기업을 모으는 것이 무슨 득이 있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금형은 ▲프레스금형 ▲프라스틱금형 ▲다이케스팅금형 ▲주조금형 ▲단조금형 ▲고무금형 ▲분말야금금형 ▲유리금형 ▲요업금형 등 다양하게 나뉘어있다.

때문에 아무리 큰 금형기업이라도 모든 금형기술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서로 오더하고 발주하는 부분이 필요하다. 또 한 예로 정밀금형을 하려면 머시닝센터나 고속가공기 같은 3~5억원짜리 금형가공기계가 필수설비인데 영세 기업들은 구입하기 쉽지 않다.

이에 한 곳에 기업을 집적시키고 업종간 집적화가 이뤄지면 금형집들끼리 설비의 공동활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업적 부문 뿐만 아니라 몰드 밸리에서는 우수한 인재도 키울 계획을 갖고 있었다. 금형 기술은 디자인과 전자, 기계 등 다양한 기술이 융합해야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학습이 필요하다고 판단, 해외의 금형 전문가를 초빙해 단지 안에서 교육하고 지도할 수 있도록 캠퍼스 부지까지 생각했다.

또 캠퍼스 내에는 금형과를 세워 근로자들이 학사, 석사, 박사까지 취득할 수 있는 시스템도 함께 가져가고자 금형과가 있는 유한전문대와 서울과학기술대학교와 협약을 체결했다. 몰드 밸리를 위해 김 고문은 해외 대기업 관계자들과 미팅을 갖고 홍보를 하기도 했다.

그런 노력 끝에 한국의 기술력과 청사진은 해외에서도 반응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지맥스의 부사장은 직접 부천에 방문해 몰드밸리에 R&D센터를 갖추겠다고 했고, 도시바와 소니 역시 부천에 오겠다고 한 것이다. 그는 "부천은 공항에서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만약 외국에서 손님이 방한할 경우 몰드 밸리의 300여개 기업 중에서도 고객이 필요로 하는 금형 기업을 3~5개 매칭시켜 복수 견적을 뽑아 그 자리에서 기술과 가격을 선택할 수 있도록 우리 조합이 서포트를 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 지어진 몰드 밸리에는 해외 R&D 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규모도 축소돼 2만7000여평 부지에 4층형 공장형 건물이 들어서 있을 뿐이다. 입주 기업도 제조기업 총 50곳, 그중 금형 관련된 곳은 10곳 뿐 캠퍼스도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몰드 밸리가 실패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김 고문은 ▲지자체의 무관심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마찰 ▲금형인의 나태함을 꼽았다. 그는 "2000년 부천의 특화사업으로 금형이 결정되고 우리 조합도 만들어졌다. 금형업계를 한번 일으켜보자는 일념으로 조합에 왔지만 막상 시는 관심이 없었다"면서 "공무원들은 잘되면 본전이고 안되면 옷벗어야하니 추진을 꺼려했다.

또 설득시키고 동기부여 시켜도 타부서로 옮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보니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물론 금형의 중요성을 인식한 공무원들과 2003년 하반기 전국 시가 제출하는 사업계획서를 만들기도 했다. 내용은 부천만이 금형을 하는 것이 아닌 광주·구미·부천이 삼각축이 돼 부천은 정밀 부품금형을, 광주는 중대형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금형을, 구미는 모바일 기기에 들어가는 금형을 만듬으로써 코리아 몰드 밸리를 탄생시키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또 다른 중앙부처 사무관들에게 인식 시키는데 2년이 걸렸다. 또 금형산업에 대한 인지도와 관심도를 높여 놓으면 지자체 고위 관계자는 자리를 옮기는 등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렇게 시간은 지연됐고 이에 따른 부지 매입비가 상승했다.

5,304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던 금액이 지가상승과 건축기 상승으로 7971억원이 되자 부천시는 재정적 부담을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또 단지를 조성하더라도 조성원가가 평당 500만원 이상 소요되는 현실에서 평당 700~800만원 가까운 분양가를 감당할 금형업체도 많지 않았다.

물론 지자체와 중앙정부 협동이 잘 안된 부분도 있지만 그는 금형을 다루는 기업인들에게도 반성해야할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금형이 10년 전 가격과 지금 가격이 똑같다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술이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금형인들은 기술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쟁이'다.

한 우물을 파고 기술개발을 해야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지 않았나 우리는 반성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마이크로 금형기술은 눈대중이 아니라 공식을 대입해 계산해야하는 등 기술과 지식이 필요한 분야다. 그 때문인지 마이크로 금형을 하고 있는 금형인은 2~3%정도로 고급기술에 속한다.

고급기술을 구매하고자 하는 소비자들(대기업)은 마이크로 금형인들이 제시하는 금액으로 물건을 살 수 밖에 없다. 그는 "금형사람들이 대기업을 욕하지만 우리가 쟁이의 마음으로 역할을 생각하고 기술을 개발한다면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도 어려운 것이 아니다"라며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강조했다. 김 상임고문은 "진주가, 또 대전에서 금형을 부흥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금형기업 부흥시키겠다고 그냥 기업만 모아놓아선 안된다. 공무원과 금형인 모두가 위기의식을 가지고 기술개발도 해야한다"며 "대전이 금형을 한다면 지리적으로 좋고 또 두뇌들이 모인 곳이기에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10년동안 이러는 사이 금형사업은 중국에게 이미 뒤쳐졌다. 지금이라도 혼연일체해 나가야한다"면서 "한국 금형을 알리기 위해서는 몰드 밸리를 제대로 건축해나가야 한다. 부천이 아니라 타 지역이 몰드 밸리 조성을 할 계획이 있다면 나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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