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기관장 인터뷰]김재현 "화학인 똘똘 뭉쳐야 산다"
2014년까지 글로벌 탑 그룹 5개, 세계1등 화학기술 16개 창출 목표

"기회있을 때마다 연구원들에게 말하곤 합니다. 편하게 열심히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으니 결과는 책임지라고요. 어쨌거나 제가 일하면서 늘 최우선 순위에 놓는 부분은 '어떻게 하면 연구원들이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을까'이니까요.

" 기관장으로 취임한 지 4개월. 김재현 한국화학연구원장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먼저 연구원들의 연구연가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행태를 보고는 단 번에 장애물들을 걷어내 버렸다. 대학 총장까지 지낸 그에겐 참 이상한 일 투성이였다.

김 원장은 "밖에서 많은 것을 보고와야 연구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연구가 좋아서 여기에 계신 분들인데 자질구레한 일들로 연구연가를 막아놔서는 안 된다"며 "이제는 연구자들이 신경쓰지 않고 나갈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김 원장의 말처럼 실제로 연구과제의 연속성 문제와 평가 때문에 연구연가를 신청하지 못하는 연구원들이 대다수였다.

비단 화학연 문제만이 아니다. 연가를 나가면 손해본다는 인식이 대다수 연구원들에게 퍼져있었다. 김 원장은 "제도적으로 보장을 해서 우수한 분들에 한해 신청을 하면 적기에 나갈 수 있도록 조치했다"며 "성과가 없는 분들이 도피처로 가는 게 아니라 성과를 많이 내시는 분들이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이다.

벌써 2∼3명 나갔다"고 설명했다. 겨울철 연구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난방 문제에도 손을 썼다. 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있는 만큼 정부의 정책에 따라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사실상 밤 시간에 연구를 해야 하는 연구원들은 추위에 떨면서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김 원장은 기준을 만들었다. 연구원들이 가능하면 출근해서 손이 안 시리게끔 하고 싶었다.

비록 작은 요소지만 연구자들이 신경쓰지 않고 늦게까지 주말에도 연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기관장의 몫으로 김 원장은 여겼다. 최근에는 연구원을 이끌고 있는 리더들과 워크숍을 갖고 경영 목표를 도출해 냈다.

2014년까지 글로벌 탑 그룹 5개 육성과 더불어 세계 1등 화학기술을 16개 창출하겠다는 야심찬목표다. 세계 1등 기술에 대한 기준은 내부에서만 인정받으면 선정되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이어야 한다. 김 원장은 "정량적 수준을 갖췄다고 해서 1등 기술 타이틀을 주지 않는다"며 "외부 사람들이 보기에 1등 기술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 정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 작은 고추가 맵다?…"정밀화학에 미래 있다"

김 원장이 바라보는 출연연의 기능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산업 원천 기술을 개발해 미래 국익을 창출하는 경우와 산업 기술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기능이다. 특히 강소형 중소기업을 육성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산업이 바로 정밀 화학이다.

김 원장은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세계적으로 경쟁력있는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일본이나 독일이 기본적인 경제력을 유지하는 것은 국가 내 자리하고 있는 많은 강소 기업들 때문"이라며 "수십 년 동안 한 기술만 파니 전 세계가 그 기업의 제품만을 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취약한 부분 중 하나다"고 현 화학 산업의 한계를 지적했다.

화학산업 수출 규모 전 세계 3위라는 타이틀에는 다소 안쓰러운 내면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석유화학이 200억 달러 가까이 흑자를 기록하는 반면, 정밀화학 분야에서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약 쪽이 25%를 차지하는데, 나머지는 정밀화학 제품이 대부분이다. 소품종 고부가가치 제품들은 거의 100%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다.

도저히 수입에 대한 감당이 안되는 수준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원장은 "일본과 독일이 세계적으로 꽉 쥐고 있다. 오랫동안 기술을 축적해 소량으로 만들어 판매하기 때문에 가격도 상당하다"며 "정부가 대규모 R&D 투자를 많이 해왔지만 아이템 당 시장 규모가 100억 달러 이하인 것은 손을 안댔다. 이제는 바뀌어야 할 시점이다.

세계적인 지배력을 가질 수 있는 R&D 투자를 선행해 나가야 한다"고 피력했다. 화학연부터 이같은 움직임을 선도해 나갈 예정이다. 오는 4월달에 개원하는 울산센터에 정밀화학을 전면 배치해 집중적으로 육성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김 원장은 "이제는 부분적으로나마 우리나라의 경제력을 여기에 맞춰 육성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동안 빠진 부분을 채워넣는 식의 R&D를 진행해 나가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첨병 역할을 했던 것도 바로 화학산업이었다. 우리나라의 공업화 시작은 비료 공장이 시작이었다. 김 원장은 "50년 역사 중 화학이 차지하는 부분은 분명 많다. 지금은 일종의 전환기다. 터닝포인트 시기다"라며 "그런 면에서 기반산업인 정밀 화학이 다시 재평가돼야 할 이유는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 "산·학·연·관 구별 말고 화학인들 똘똘 뭉쳐보자"

 

▲그는 화학인들이 똘똘 뭉쳐 범국가적으로
연구를 진행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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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그가 중점적으로 하려는 일은 바로 역량 결집이다. 화학인들이 똘똘 뭉쳐보자는 것이다. 김 원장은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화학계가 규모는 큰데 주무부서는 '철강화학'으로 구분돼 있다. 화학인들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며 "많은 기여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인식이 낮고 우리에게도 잘못이 있다.

각자 자기 목소리만 내지 화학산업 전반에 대해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않았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화학 역량을 결집하는데 화학연이 앞장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화학연은 국책연구기관이고 중간적인 입장에 있기에 명분도 있다. 김 원장은 "계속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수개월 내 화학산업계가 큰 아젠다를 만들어 정부에 정책을 제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 산·학·연·관 역할을 재정립하고, 화학산업을 고도화시키는 동시에 대한민국의 향후 경쟁력을 체계적으로 키워나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다. 거대 자본이 투입돼야 하는 신약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김 원장은 "신약 분야에서 큰 대박을 터뜨리진 못했지만 지금까지 어느 곳 못지 않게 연구기반을 닦아 왔다.

앞으로 조금만 하면 제대로 된 글로벌 신약을 터뜨릴 수 있다"며 "대규모 R&D 프로젝트를 만들어 범 국가적으로 신약개발에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중요한 시기다. 우리가 아젠다를 만들어 정부에 제안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런 가운데 출연연의 역할도 이 과정에서 재정립될 수 있으리라는 복안이다. 김 원장은 "출연연의 본질적인 임무는 선도기능이며 적어도 화학연의 경우 대한민국 화학산업에 대해 책임지고 끌고나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정부 정책을 따라가고 순응해야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본질적인 것을 살리는 방향으로 셋업이 되야 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방향은 조직화로 모아진다. 범국가적으로 해야 할 연구 아젠다가 마련되면, 세부 과제들을 통해 산·학·연 전문가들을 불러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화학연이 아젠다를 기반으로 한 기본 연구를 한다면, 그에 따른 세부 과제를 공모해 외부 연구 인력까지 결집한다는 것.

김 원장은 "화학연 연구원들 200명이 화학산업을 이끌어 갈 순 없다. 모든 연구 관계자들이 함께 해야 국제 경쟁력이 생길 수 있다"며 "올해부터 화학연이 설정한 큰 연구과제 속 세부과제 공모를 내서 국가적 연구인력을 모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잘만 진행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범국가 차원 연구 그룹이 생성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이 때문이다. 범국가 차원의 국가 아젠다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연구 그룹들이 만들어지고, 그 연구 그룹들이 만들어낸 기술은 자연히 경쟁력이 배가 될 수 있다.

김 원장은 현재 출연연 개편 이슈에 대해 "기본적으로 봤을 때 화학연은 국가 공공기관 입장이기 때문에 정부 정책에 따라가는 게 원칙"이라며 "그러나 융합 연구 활성화보다 궁극적으로 출연연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디테일한 요소가 명확해야 한다"고 신중한 의견을 밝혔다.

◆ "생각에 매몰되지 말라, 할 일이 주어지면 최선을 다하라"

김 원장은 자신의 소신 이야기로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 자기 생각에 매몰되어선 안된다는 소신이다. 김 원장은 "무엇이든간에 자신한테 해야 할 일이 주어지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면서 삶이 이어져 왔다"라며 "일을 하면서 개인적인 미래나 연봉 등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일이 맡겨졌으면 그것에 만족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의 삶이 바로 그런 삶이었다.

욕심내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공주대학교 총장도 전혀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좋은 사람들이 응원해 주었고, 맡은 바 일을 하다보니 총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화학연 원장 자리 역시 마찬가지다.

김 원장은 "전임 원장이 너무 잘 시스템을 다져놓고 가셔서 일하기가 수월한 것 같다. 좀 더 집중해서 좋은 결과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역할인 것 같다"며 "연구할 때 덜 신경쓰도록 지원하고 응원하겠다. 그대신 연구에 대한 결과는 책임져야 한다. 모든 이들이 제 자리에서 열심히 한다면 화학연도 제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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