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과학기술 속에서 윤리 읽기]

21세기를 지배할 것으로 예상되는 신생기술들 가운데 나노기술은 특히 위력적이다. 우주 엘리베이터를 생각해볼 수 있을 정도로 인장력이 강한 탄소 나노튜브, 몸속에 주입되어 암세포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내서 파괴하는 의료용 나노로봇, 청소가 따로 필요 없는 스마트 나노물질로 표면 처리된 마루바닥 등 나노기술은 실생활, 의료 분야, 군사 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놀라온 세상을 예고하고 있다.

사람의 몸 속에서 병원체 혹은 암세포를 찾아 퇴치하는 나노로봇을  상상한 그림. ⓒ2012 HelloDD.com
사람의 몸 속에서 병원체 혹은 암세포를 찾아 퇴치하는 나노로봇을  상상한 그림. ⓒ2012 HelloDD.com
하지만 나노기술을 반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나노기술에 내재된 위험성 때문이다. 가장 무서운 시나리오는 가장 위대한 성공과 같이 한다. 나노기술의 최후의 성과는 아마 자기 조립하는 어셈블러일 것이다. 생명체처럼 스스로를 복제해내는 나노로봇이다. 하지만 자기복제하는 어셈블러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 큰 재앙이 닥쳐올 수 있다.

암세포 퇴치를 위해 몸속에 주입한 나노로봇이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경우에, 그래서 무차별적 증식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치료용 나노로봇이 오히려 생명을 앗아가는 살인 무기로 작용할 수 있다. 환경오염 물질을 제거하기 위해서 자연에 살포한 나노로봇들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무한증식할 경우에 지구는 나노로봇의 세상이 될 지도 모른다.

생물자원을 먹이로 삼는 나노로봇이 무한 증식하는 상황, 그래서 지구의 모든 생물자원이 단기간 내에 모두 사리지고 지구가 잿빛 덩어리로 변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이른바 그레이 구(gray goo) 시나리오이다. 물론 자기조립하는 나노로봇은 허구적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혹은 이런 것을 만드는 것이 충분히 어려워서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지구가 잿빛 덩어리가 되는 날을 상상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의 시사점마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나노기술의 위험성의 범위와 깊이에 대한 것이다.

◆나노물질의 위험성과 잠재적 위험에 대한 평가

나노기술의 위험성은 굳이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확인할 수 있다. 나노물질의 유해성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나노물질인 탄소 나노튜브는 지금까지 알려진 어떤 물질보다도 월등한 물리·화학적 특성 때문에 자동차 연료통, 전투기나 탱크, 연료전지, 평면 디스플레이, 스포츠 용품 등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될 전망이지만 2003년 미국화학회에서 나노튜브의 독성에 대해 공식 보고했다.
탄소나노튜브가 주입된 쥐의 폐 조직에서 심각한 조직 손상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탄소 나노튜브. 탄소 6개로 이루어진 육각형 모양이 서로 연결되어 관을 형성하고 있는 신소재 나노물질. ⓒ2012 HelloDD.com
탄소 나노튜브. 탄소 6개로 이루어진 육각형 모양이 서로 연결되어 관을 형성하고 있는 신소재 나노물질. ⓒ2012 HelloDD.com
나노입자는 기존의 물질에 첨가해 사용하면 물질 특성을 다양화하고 강화할 수 있기 때문에 효용성이 무궁무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산업 분야는 물론 생활용품의 기능성 강화, 예컨대 항균 및 살균 기능, 자동 정화, 방수, 자외선 차단 등 다양한 기능을 제품에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노입자를 흡입한 쥐가 질식사하였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규폐증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같은 물질이라도 큰 덩어리는 위험하지 않더라도 미세한 단위의 입자는 치명적일 수 있다. 나노입자는 흔히 말하는 미세한 입자의 수준보다 훨씬 더 작은 단위이므로 위험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혁신적이고 위력적인 기술일수록 커다란 이득을 가져오지만 그에 비례해서 큰 위험을 안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상식적이다.

나노 수준은 인간이 아직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는 미시 세계이므로 이 영역에 대한 조작적 처치가 어떤 위험을 불러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특히 나노기술은 현재 진행형의 기술이다. 사실 도입 단계의 기술이다. 이런 신생 과학기술에 대한 윤리적 고찰은 현재까지 발견된 위험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 잠재적 위험 가능성에 대해서까지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까지 실현된 것으로 윤리적 논의의 범위가 제한될 경우에 나노기술과 같은 신생 기술에 관한 윤리적 검토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노기술에 대한 윤리적 고찰은 커다란 위험인 경우에는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면 다소 허구적으로 보이는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나노기술과 같은 신생 기술에 대한 윤리적 검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나노기술에 대한 사전예방 원칙의 적용 필요성

나노기술의 위험은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어떤 기술의 위험과도 비교되지 않는다. 가장 근사한 것이 방사능 물질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방사능 물질의 위험은 국지적이다. 수 백 개 핵폭탄이 동시에 터지다면 아마 지구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 반면에 생물 자원을 먹이로 하는 변형된 나노로봇은 극소수만으로 지구 전체의 생명체를 몰살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이유로 나노기술에 대해서는 좀더 적극적인 윤리적 원칙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고, 사전예방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의 적용을 제안한다. 사전예방 원칙은 환경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미 1992년 리우 환경회의에서 환경에 대한 손상이 심각하거나 회복 불가능 할 것으로 예상되는 위협에 대해 사전예방의 원칙에 따라 효율적 대책을 실행할 것을 권고하는 조항(15조)을 리우선언 안에 포함시켰다. 유럽연합 역시 사전예방 원칙을 환경문제를 다루는 주요 원칙으로 삼고 있다.

플러렌. 탄소원자들이 오각형과 육각 형으로 모여 축구공 모양을 이루고 있 으며 일명 버키볼이라고도 불린다.  ⓒ2012 HelloDD.com
플러렌. 탄소원자들이 오각형과 육각 형으로 모여 축구공 모양을 이루고 있 으며 일명 버키볼이라고도 불린다.  ⓒ2012 HelloDD.com
사전예방 원칙은 나노기술처럼 심각하고 광범위한 위험의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할 때 적용된다. 기존에는 위험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위험에 대한 문제 제기가 무시되곤 하였지만, 사전예방 원칙에서는 과학적 증거보다는 위험의 심각성이 더 중요하게 취급된다. 물론 과학적 증거가 전혀 없는, 허구적 위험까지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위험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없을 뿐이며, 과학적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것뿐이지 당연히 과학적 증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리우선언에서 밝힌 것처럼 심각하고 회복 불가능한 위험이 문제이다. 사전예방 원칙은 책임있는 과학기술 연구를 강조한다. 위험 가능성이 있는 연구에 대한 지식, 위험에 대한 예측의 능력 면에서 볼 때 연구자와 일반 대중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광대한 간격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성 문제를 제기하는 쪽에 과학적 입증의 책임이 전적으로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연구를 진행하는 쪽에서 연구의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입증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사전예방 원칙을 인정하고 있다. 사전예방 원칙은 다양한 방식으로 정식화되지만 여기서는 크게 두 가지 형식만으로 구분해서 논의한다.

사전예방 원칙은 강한 해석과 약한 해석이 있다. 강한 해석에 따르면, 위험을 유발하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 만일 어떤 연구가 위험을 발생시킬 것이라면 그런 연구를 진행하지 않는 것이 선호된다는 것이다. 이 해석에서는 위험만이 고려 대상이며 이득과 위험에 관한 비용 분석은 없다. 약한 해석에 따르면, 위험이 예상될 때 유험을 유발하는 행동을 금지하는 대신에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적 행동을 찾는 것이 옳다.

잠재적 위험이 감지되었을 때는 덜 위험한 대안을 찾아 실행하는 것이 적절한 반응이라는 생각이다. 사전예방 원칙의 강한 해석을 고수할 때, 대부분의 과학 연구가 어려움에 봉착한다. 과학 연구 가운데 위험이 도사리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물론 위험의 정도에 대한 기준을 설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해석은 신생기술(emerging technology)처럼 새로 개척되는 연구 분야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다. 어떤 이는 과학기술은 위험을 감수하는 가운데 발전하였다고 주장할 것이고, 그런 주장이 전혀 불합리하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사전예방 원칙의 약한 해석은 과학기술 연구의 길을 차단하지 않으면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생각된다. 이런 해석은 심각한 위험을 내포하는 연구는 전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어떤 연구에 대해서는 허용 불가는 판정할지도 모르지만 어떤 기술에 대해서는 부분적 허용을 판정할 것이고, 또한 대안적 기술의 개발을 촉진할 것이다. 사전예방 원칙의 약한 해석은 과학기술 발전과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 연구의 목적을 인류의 행복 증진에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류에게 좀더 풍요롭고 자유로운 세상을 제공하는 것도 좋은 것이지만, 잠재적 위험을 최소화하여 안전한 세상을 제공하는 것도 좋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은 과학기술이라고 해도 심각하고 회복 불가능한 잠재적 위험을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런 위험을 제거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를 선행시켜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나노기술에 대한 사전예방 원칙의 적용은 나노기술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기술의 발전을 막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을 오히려 촉진하는 것이라는 인식 아래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참고 문헌 이인식, '한 권으로 읽는 나노기술의 모든 것', 고즈윈, 2009. 이인식 외, '나노기술이 미래를 바꾼다'. 김영사, 2002. Fritz Allhoff&Patrick Lin, 'Nanotechnology and Society', Springer, 2008. Deb Bennett-Woods, 'Nanotechnology: Ethics and Society', CRC Press, 2008. Donal P. O’Mathuna, 'Nanoethics: Big Ethical Issues With Small Technology', continuum, 2009.
 

▲이상헌 교수 ⓒ2011 HelloDD.com
이상헌 교수는 서양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의전담교수로 재임 중입니다. 연구분야는 신생과학기술에 대한 윤리적 논의, 비판적 사고와 글쓰기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기술의 대융합(공저)' '대학생을 위한 과학글쓰기(공저)' 등이 있습니다. 이 교수는 '이상헌의 과학기술 속에서 윤리읽기'를 타이틀로 신생과학기술들을 윤리적 관점에서 되새겨 보며 인간의 행복 증진을 위해 최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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