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병권 전 공공기술연구회 이사장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기술계 출연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1966년 발족됐다. 그 후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에 기여한 바는 외국 여러 나라들에서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으나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개편이 논의되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은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이윤을 많이 낼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에 맞게 운영조직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 과학기술 수준은 외국의 과학기술에 의존하고 있었으므로 과학기술 분야의 목적이나 목표를 외국 기술의 모방에 두었고 여러 기관들이 산발적으로 설립되기는 했지만 국가에 필요한 과학기술분야 연구를 조직적으로 수행할 연구 기반이 구축되지는 못하였다.

1990년도에 들어와 정권 교체 시 제안된, 독일의 연구회와 유사한 형태의 3개 연구회가 채택되어 이후 10년간 운영되면서 국내 이공계 연구기관들이 안정적인 연구체제를 형성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현 정부는 정부출연연구기관 설립목적 중 오늘날 가장 중요한 공공기술연구회를 없애고 애매한 기준으로 구분된 2개의 연구회에 편입 축소 운영하는 과오를 범하였다. 이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운영 철학과 설립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데 기인한 결과였다.

3년의 시행착오 끝에 현 정부는 2011년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개편에 관한 연구를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새로운 개편안도 출연연구기관의 전 현직 기관장들이 참석했다고는 하지만 산업계에서 오랜 경험을 하신 분이 위원장으로 개편작업을 주도해서인지 출연연의 설립 목적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 같다.

오랜 진통 끝에 최근에 새로 탄생한 국가과학위원회에서 관련 정부부처간 협의 끝에 발표된 최종안은, 몇 개 연구기관은 관련 부처에 남겨두고 나머지 연구기관들은 가칭 '국립연구개발원'으로 통합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국회입법조사처의 정책보고서에서 지적된 대로 정부부처의 이기주의 때문에 부처 간에 나누어 먹기 식이 되어 버렸다. 더욱이 이 안은 국회에서 통과될 지도 미지수라고 일부 언론은 지적하고 있거니와, 정부출연연구기관에 근무 중인 과학자들이나 관련단체에서도 여러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면 어떻게 정부출연연구기관을 개편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설립 목적에 충실하는 것이다. 일본과 독일의 정부출연연구기관 운영 시스템이 좋은 본보기이다. 첫째로 중소기업에 필요한 기술개발에 치중해야 하는 연구기관의 운영 시스템은 독일의 프라운호퍼연구회와 라이프니츠 연구회 그리고 일본의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둘째로 대형 기업에 필요한 세계적 첨단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창의적 연구를 담당하는 연구기관을 육성해야 한다. 우리나라 기초과학연구원의 설립은 이런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외국의 사례로서는 독일의 막스프랑크(Marx Planck)연구회 산하의 연구소들이 좋은 예이다.

셋째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제일 중요한 목적인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우주, 환경, 해양, 자원 등에 관련된 연구를 하는 연구기관들은 연구 인프라에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들처럼 독립 연구기관으로 운영하거나, 이들 대형 연구기관들을 별개로 관리하는 연구회를 만들어 관리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기업이 필요한 기술개발을 도와줄 수 있는 기술계통의 연구기관은 일본의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와 같은 운영 시스템, 즉 현재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추진중인 강소형 연구조직과 같이 성과관리가 강조된 운영 체제를 가지고 운영 관리하고, 기업의 기술개발과 관계가 적은 연구기관들, 예를 들면 한국원자력연구소,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해양연구원 등과 같이 거대과학에 치중할 필요가 있는 연구기관들은 독립된 기관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그 외에 연구보다는 지원을 우선해야하는 연구기관들, 예를 들면 한국기초지원연구원, 핵융합연구소, 수리과학연구소 등은 별개의 조직으로 묶어서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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