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과학과 예술이라는 두 분야에서 모두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은 천재로 유명하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더 이상 다빈치와 같이 두 분야에서 모두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기는 사람을 만나긴 어렵다. 이는 과학이 너무 전문화되어 있어 자기 분야를 제외하면 다른 과학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예술도 고유한 분야가 있어 서로 다른 예술 분야에 대해서는 재능을 발휘하는 것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고도로 세분화 된 과학과 예술은 전혀 다른 길을 걸으며 융합될 수는 없는 것일까 ?

◆ 예술은 과학이다

미켈란젤로의 벽화 '천지창조'를 보며 감동을 느끼거나 쇼팽의 '야상곡'을 들으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데는 특별한 지식이 없이도 가능하다. 물론 미술이나 음악에 대한 식견이 있다면 더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도 않다.

하지만 수학이나 물리학의 기초가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이 주는 이론적 체계의 아름다움을 설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사람들은 예술은 일반인들도 감상할 수 있지만 과학은 준비된 소수를 위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겼다.

또한 이러한 고정관념은 뇌과학의 발달로 인해 예술영역과 과학영역에 재능 있는 뇌가 따로 있다는 생각으로 더욱 굳어져 버렸다. 물론 이러한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과학과 예술은 별개의 영역이 결코 아니다. 과학과 예술이 완전히 다른 영역이 아니라는 것은 이 말이 생겨난 어원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오늘날 예술을 뜻하는 'art'는 원래 예술과 기술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었다.

art는 라틴어 ars에서 온 말인데, 이 말은 고대 그리스어 '테크네(techne)'를 번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기술과 예술이 같은 어원에서 나왔듯이 오늘날에도 역시 과학과 예술의 만남이 가장 두드러진 곳도 바로 공학이다. 건축은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예술이 항상 함께 공존해온 대표적인 공학 분야이다.

특히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감성공학은 바로 과학과 예술이 융합되었을 때 나타나는 시너지 효과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분야이다. 음악은 처음부터 수학적 탐구 영역에 속해 있었다. 이는 피타고라스 음계(Pythagorean scale)를 만들어 서양 음계의 기초를 마련한 피타고라스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음악과 과학의 관련성은 우리나라에서도 찾을 수 있다.

1425년 세종대왕은 박연으로 하여금 국악에서 음을 조율할 때 사용하는 관악기인 황종율관 만들어 조선의 음악을 정비하게 했다. 그런데 이 황종율관은 단지 음악을 조율하는 데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도량형을 정하는 데에도 사용했다. 즉 황종율관을 이용해 길이나 무게, 부피 등을 측정하는데 기준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조상들은 자연과 음악을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국악의 기준이 되는 황종율관으로 과학의 기초가 되는 도량형을 정비하는 데 사용했다.

◆ 과학은 예술이다

공학자에 의해 발명된 원근법이나 화학자에 의해 유화의 발명은 미술 기법이나 표현 방법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또한 광학의 발달로 빛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시공간의 개념이 달라지자 그림에도 그러한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졌다.

음악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 평균율의 개념이 중국에서 먼저 나왔음에도 이를 서양 음악에서 더 잘 발달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를 이론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수학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음악에서 빠질 수 없는 전자음과 사운드 시스템은 공학의 발달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항상 과학이 일방적으로 예술에 영향만 주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의 탄생은 알타미라 동굴 벽에 움직이는 동물 그림을 그렸던 원시 미술가의 눈에서 시작되었다. 사진과 영화가 단지 과학자들의 재미있는 발명품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재탄생된 것도 예술가들의 뛰어난 안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모든 공학 제품에 예술가들의 감성이 빠진다면 단지 편리한 기계일 뿐이다.

하지만 예술가들의 안목이 더해진 감성공학 제품들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사람들이 사용하기 더욱 편리한 기계로 변모한다. 즉 ‘아름다운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말은 예술에서와 마찬가지로 공학에서 있어서도 진리인 것이다. 화가들은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화폭에 담으려고 오랜 세월 노력해 왔다. 이러한 노력은 과학자들이 생체모방을 통해 자연의 모습을 기술적으로 모방하는데 사용되었다. 예술이나 과학 모두 자연을 닮아가고, 그곳에서 새로운 것을 찾으려 하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다빈치는 자연을 관찰하는 뛰어난 눈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예리한 눈을 그림 그리는데 사용해 '모나리자'와 같은 명작을 그려냈다.

또한 그는 예술가의 창조성을 활용해 헬리콥터와 같은 놀라운 발명품을 생각해 냈다. 이와 같이 과학과 예술은 별개의 것이 아니었기에 융합되었을 때 더욱 큰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