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수, 과학정책을 논하다]

지난달 1일, 이장규 전 서울대 교수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로 갔다. 아다마국립대 총장(임기 5년)으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아프리카에 소재한 대학에 한국인이 총장으로 부임하기는 이 교수가 처음이다. 아다마시는 에티오피아 제2의 도시이며, 아다마국립대의 학생 수는 2만여 명, 교수 수는 1천여 명이라고 한다.

이 교수는 출국 직전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인재 개발과 교육 모델, 서울대의 성장 과정 및 경험을 전파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정책 한류'라는 용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정책적 경험을 배우려는 개발도상국들이 부쩍 늘고 있다.

사실상 우리나라는 2010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회원국으로 등록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OECD가 출범한 이후에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지위가 바뀐 첫 번째 사례라고 한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 DAC 가입국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에 다양한 정책적 경험을 전수해 왔다. 농업 시스템, 개발금융, 증권거래, 전자정부 등은 그 대표적인 예다. 과학기술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을 배우고 싶다는 문의가 심심찮게 들어오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과학기술정책은 개발도상국의 형편에 적합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정책이 피부에 와 닿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과학기술정책을 수출할 정도로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예를 들어 개발도상국의 과학기술정책 담당자가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이 가진 독특한 특징이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할 경우, 이에 대하여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마도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면, 대부분은 "글쎄요"하면서 머뭇거리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 아닐까? 물론 우리나라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추구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과학기술자, 정책담당자, 정책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최선의 발전방향과 정책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다만 매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해답을 찾는 데 골몰한 나머지 그 기저에 흐르는 중심적 내용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일에 힘을 쏟을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가 원조 공여국의 위치에 선 이상 과학기술정책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평가하는 작업에 본격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이러한 작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도 <과학기술행정 20년사>(1987년), <과학기술 30년사>(1997년), <과학기술 40년사>(2008년) 등을 발간해 왔고, 과학기술과 관련된 주요 주체들도 해당 기관의 역사를 편찬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자료들은 대부분 급하게 준비되는 바람에 그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의 역사에 대해 논의하다보면 또 다른 문제점도 드러난다. 정부부처, 공공기관, 주요 사업의 명칭이 빈번히 변해 왔기 때문에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어떤 공공기관의 임무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그 명칭이 정부부처의 변경에 따라 계속 바뀌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정책이 과연 정상 상태에 진입한 상태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의 역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추진하고 이를 통해 한국적 과학기술정책의 특성을 규명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것이야말로 과학기술정책을 제대로 수출하기 위한 필요조건임에 틀림없다.

동시에 그러한 작업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정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송성수 교수  ⓒ2011 HelloDD.com
송성수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산업기술평가원(ITEP) 연구원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부연구위원을 지냈습니다.

또 2006년부터 부산대 기초교육원 교수로 재임 중입니다. 주요 연구실적은 '한국 과학기술정책의 특성에 관한 시론적 고찰' '대중과 과학기술' 등 다수이며, 저서로는 <과학기술의 개척자들>, <과학기술과 문화가 만날 때>, <사람의 역사, 기술의 역사> 등 저술 활동도 활발합니다. 이외에도 '과학기술기본계획' '과학기술문화창달 5개년 계획' 등 정책연구에도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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