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나라의 첨단 과학기술, 한반도史에는 절체절명의 위기로 작용
위기 의식 갖고 세계 흐름 주시해야 국가 보존 가능

중국이 지난 3일 새벽 우주 도킹에 성공했다. 세계 3번째. 이로써 중국은 명실공히 우주 강국으로 등극했다, 그것도 자력으로!

100m 밖에서 바늘귀에 실을 꿴다고 할 정도의 고난도 기술이다. 이웃으로 축하할 일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긴장과 공존을 되풀이해 온 한국으로서는 긴장해야할 요소가 더 많다.

한국의 역사를 보았을 때 이웃 나라의 새로운 과학기술 발전은 얼마지나지 않아 반드시 '국난'(國難)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 첫번째 사실(史實)은 임진왜란(1592년)이다. 임진왜란에서 가장 큰 전력의 차이를 가져온 것은 조총이었다.

조총이 일본 역사에 등장한 것은 1543년이고, 전쟁에 본격 적용된 것은 오다 노부나가의 1575년 나가시노 전투이다. 당시 무적을 자랑하던 다케다군의 기마병 2만여 명을 노부나가의 소총수 3천여 명이 격파했다. 이를 계기로 전쟁의 양상이 기마병에서 소총병으로 바뀌었고, 노부나가는 소총병을 중심으로 천하를 제패한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다. 조총이 전쟁에 도입된지 20년도 안돼서다. 임란 전에 일본측은 조선에 조총을 보내나 우리는 이를 창고에 묵혀두었고, 그 결과 7년의 전란속에 조선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임란은 이후 병자호란, 식민지 등으로 이어지면서 한민족의 운명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이웃의 과학기술 발전이 우리에게는 재앙이 된 두번째 사실은 병자호란때의 홍이포이다. 홍이포는 네덜란드가 사용하던 대포를 명나라가 수입하고 국산화한 것이다. 이 대포를 청나라가 1631년 자체제작하는데 성공한다. 청은 이 대포를 갖고 병자호란(1636년)에서 조선을 우롱했다.

"병자호란 때 조선은 홍이포(紅夷砲)에 의해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군은 홍이포를 앞세워 인조가 있는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조선의 마지막 보루인 강화도마저 함락시켰다. 홍이포의 위력은 실로 엄청났다. 청나라는 남한산성 밖에 진을 치고 행궁을 향해 홍이포를 쏘아댔다.

'속잡록'(1637년 1월 24일)은 홍이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적이 홍이포를 터뜨리니 탄환이 큰 것은 사발만 하고, 작은 것은 계란만 하다. 빠르기는 회오리 바람과 같고, 소리는 벼락과 같아 그 탄환에 맞아 죽은 자가 많았다'. 강화도 수비군에게도 홍이포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동계집' 1637년 1월 27일 기록을 보면, 포성이 산과 바다를 흔들고, 포탄을 맞은 물건은 곧바로 꺾이거나 무너졌다고 돼 있다."(경인일보 2011년 5월 3일, 세계의 전장 인천 기획 특집)

세번째 사실은 1875년의 운요오호 사건이다. 일본이 서양문명의 힘을 깨닫고 닫아걸었던 문호를 열고 1868년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게 된다. 그 이후 1871년 이와쿠라 사절단을 미국과 유럽에 파견하고 서양문물을 대량 수입한다.

그 가운데는 철도와 군함, 근대적 공장 등이 있었다. 서양문물을 통해 쌓여진 체력을 바탕으로 일본은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조선을 무력으로 위협하고, 결국 개항을 이끌어낸다. 이후의 과정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이어지며 결국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강화도 조약으로 이어지는 세 번의 비극에서 공통적인 것은 외부의 급변에 전혀 신경쓰지 못하고 내부는 오로지 분열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임란때는 서인과 동인이, 병자호란때는 척화파와 주화파가, 운요오호 사건때는 대원군과 민비가 세상의 흐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집안내부의 주도권 다툼에만 열중했다.

◆ 미래 전쟁은 우주 전쟁…차원 다른 전쟁 개념 대비해야

중국의 우주 도킹 성공이 우리에게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앞으로 예상되는 파급효과 때문이다.

우선 정밀 기술이다. 도킹 기술은 정말 어려운 우주 기술이다. 비용도 많이 들고 까다로와 미국과 러시아 정도만 성공한 기술이다. 다른 나라는 아직 시도조차 하지못했다. 고도의 과학기술은 반드시 무기와 산업으로 연결된다. 이는 해당국에는 낭보이지만 이해당사국에는 비보가 돼왔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앞으로의 전쟁은 우주 전쟁이 될 것이라는 것이 미래학자들의 일반적 전망이다. 세계 최고 전략 컨설팅 회사의 하나인 스트랫포의 설립자인 조지 프리드먼은 '100년후'라는 책에서 "21세기 전쟁의 핵심은 정밀성이고, 전장은 우주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정찰 위성을 발전시켜 우주 정거장에 지휘 플랫폼을 두고 지상 및 해상에서의 적의 공격을 피하고 작전을 수행한다고 강조한다.

우주에서 지상으로 직접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고, 우주에서 상대 우주 기반 시스템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우주에서의 전쟁 수행 능력을 가진 국가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차이는 원시시대의 활과 현대의 핵무기 이상의 차이를 가져올 수가 있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숱한 피바람을 기억할 때 중국의 우주 도킹은 그냥 간과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의 과학자와 정치인, 언론인 등은 그 역사적 의미를 간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일부 과학자들은 제기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여전히 정권 다툼에만 골몰하고 있고, 국민은 복지와 개인들의 안위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 중국, 큰 흐름에서 한국 추월…국가 생존 차원서 대비 긴요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로 미국 사회는 엄청난 충격과 혼란에 빠진다. 소련에 지배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사회를 짓누르며 개혁을 강제했다. 스푸트니크 다음 해인 1958년 미 의회는 과학 교육을 강화하는 ‘국가방위교육법’을 통과시킨다. 각급 학교에 각종 기자재와 설비가 대폭 지원됐고 대학생과 대학원생에게는 학비 혜택이 주어졌다.

이와함께 우주를 총괄하는 NASA를 설립한다. 미국인들은 스푸트니크 충격을 국가 일신의 전기(轉機)로 활용해 이후 소련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해나가고, 결국에는 레이건 대통령기인 1980년대에 베를린 장벽 붕괴와 소련 해체라는 성과를 얻는다.

위기를 어떻게 인지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 위기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위협이 될 수도 있고, 미래로 나아가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21세기 초, 한국의 운명은 어떠할까? 현재로서는 암담하다.

의미를 확대해석하고 불안을 조성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큰 흐름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과는 다른 쪽으로 틀어지고 있다. 우리만 눈멀어 제대로 파악을 못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2008년 연구개발비와 특허수에서 중국은 한국을 추월했다. 이번 우주 도킹 성공은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켜주고 있다. 이러한 동향을 우리는 생존의 차원에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내부 문제에 골몰하고 세계의 흐름으로부터 멀어졌을 때 한반도에는 반드시 피바람이 불었다. 역사는 죽어있지 않고 살아있다.

역사에서 보면 파급 시기는 짧으면 5년, 길어도 한 세대가 지나기 전이었다. 중국의 우주 도킹 성공에 대해 특히 과학자와 정책 결정자들은 그 의미를 파고들며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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