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에 묶여 과제 노예된 과학자들, 연구 재미 잊고 샐러리맨 됐나
'먹고 살기위한 연구비 경쟁' 아닌 '즐기는 과학자'가 주류 이뤄야

'PBS(Project Based System)'는 정부출연연구소의 연구비 지원에 경쟁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연구 효율을 높인다는 취지로 출범한 연구비수주방식 제도다. 이 시스템이 시행된 지 올해로 15년을 맞이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지금 PBS제도를 둘러싸고 비용 개념이 도입되면서 효율성이 높아졌다는 의견과, 지나친 경쟁으로 협력이 저해되면서 오히려 부작용이 많다는 의견 등 찬반 양론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대덕넷에서는 PBS 15년을 맞아 그 공과를 재점검하고 부작용에 대한 개선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보도 순서는 ①PBS는 실패했다 ②PBS, 무엇이 문제인가? ③PBS 시행 전과 후에 대한 비교 ④출연연과 민간연 ⑤일본 사례는? ⑥출연연을 떠난 사람들 ⑦국가우수과학자들의 증언 ⑧블록펀딩 등의 대안책으로 해결될 수 있나? ⑨과학기술계 구성원 직격인터뷰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편집자주]

결론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다. PBS 제도는 실패했다. 경쟁을 유발하기 위해 도입된 PBS 제도는 애초의 취지를 잊어버린 채 과학자들을 옥죄는 가장 관료적인 도구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지난 시간 동안 정부, 연구회, 과학기술계 등의 관련 인사들이 PBS를 손질하기 위해 수없이 머리를 맞대왔지만, 결국 모든 노력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이해관계의 톱니바퀴에 깔린 일선의 과학자들만 상처를 입었다.

연구원 개개인의 과학을 향한 열정은 점차 자취를 감춰갔다. 그런 속에서도 PBS 제도만 화석처럼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장기적인 방향성 추구보다는 현재에 안주하고자 하는 변명과 책임전가만이 굳은 상처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PBS는 연구과제에 대한 외부 수주를 통해 인건비 등 비용의 상당 부분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연구원 간의 경쟁을 통해 효율과 성과를 높인다는 것이 본래의 취지다. 하지만 나타난 현실은 정반대였다. 출연연의 총 인건비 가운데 30% 정도만 출연금에서 확보되고 나머지는 외부 수탁으로 메워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연구 활성화가 아니라 직원 월급 주기위한 외부 수혈에 바빴고 애초의 의도는 공중분해하고 말았다.

제도의 함정에 빠진 과학자들은 어느새 연구에서 오는 재미를 잊은 채 외부의 자잘한 요구에 휘둘리면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지 오래다. 과도한 과제 수탁 경쟁으로 연구의 질이 저하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물론 제도 자체에 모든 것을 떠넘길 수는 없다. 같은 환경에서도 우수한 성과를 내는 이가 있고, 환경만을 타박하며 연구를 못하겠다고 불평하는 이도 있다. 문제는 표본의 극과 극을 제외한 중간 부분이다. 대부분의 연구원들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학자들을 달래겠다고 만든 정책 지원들도 정작 연구현장에서는 체감이 안 되고 있어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정부가 출연연의 안정적 연구환경 확보를 위해 출연금을 포함한 안정연구예산을 대폭 확대해 나가기 위한 계획을 수립해 진행 중이지만, 출연금 지원이 적합한 사업과 PBS 지원이 적합한 사업에 대한 명확한 구분없이 사업비 이관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 현장에서의 부작용과 불만만 사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는 블록펀딩 역시 PBS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 샐러리맨된 과학자들, 연구에서 오는 즐거움 포기할 수밖에 없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즐기는 사람을 따라갈 수는 없다. 얼마든지 재미있고 즐겁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차단하고 있는 지금 잘못은 누가 저지르고 있는지를 명확히 할 때가 왔다.

과학 외적인 규정과 제도에 억지로 꿰어진채 연구 활동을 하면서, 성과는 세계적 수준을 요구한다면 결과적으로는 그런 사회와 제도 자체가 과학자들을 병들게 할 뿐이다. 출연연에 근무하는 P 박사는 요즘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의 꿈은 과학자였다. 과학자가 아닌 자신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위를 받는 과정에서도 연구원으로 살아가겠다는 꿈은 계속됐다. 그렇게 원하던 출연연에 들어왔을 때 그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꿈을 산산조각냈다.

연구원에서 근무한지 10년이 다돼 간다는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창의의 샘이 말라버릴 것 같다고 토로한다. 모든 것은 PBS에서 비롯됐다. 과도한 PBS 시행으로 상급자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연구실 구조와 그로인해 발생되는 연구 자율성 및 독창성 침해는 과학자들을 지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연구 성과의 상납구조 형성 등 역기능 또한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연구를 위한 연구가 성행하고 이를 위해 연구비를 확보해야 하는 소위 '앵벌이' 과학자들이 속출했다.

이런 과정에 툭하면 과제를 따내기위해 인맥이 동원되면서 연구라기보다는 로비에 가까운 모습들이 자행되고 있었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연구비 따내기가 앞서면서 자연히 연구의 질도 떨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 명의 과제 책임자가 많게는 20개의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 많은 과제를 혼자 수행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어느 과제에 집중을 해야 하는가. 과제 연구의 부실화는 예정된 결말이다. 성과주의 PBS가 과제 수행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밖에도 PBS로 인한 문제점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이미 15년이나 과학기술계 내부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는 PBS 제도. 이 제도로 연구원들은 자체적인 기획을 할 필요가 없게 됐다. 정부와 과제관리 기관에 기획 기능이 집중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개별 사업 기획 위주로 차출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큰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역량은 전무하다는 평가다. 자체적 전략과 기획 수립 뿐은 그림 속 떡일 뿐이다. 국가기술지도 등 국가적 전략 수립 역할에서도 출연연의 역할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국가기술지도 수립 및 관리에 대한 책임성이 전무한 상황에서 과제수주 편의성을 고려한 참여자들의 '내 기술 끼워 넣기' 또는 '아는 사람 봐주기' 관행이 상존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기술개발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또한 연구기관의 특성상 전문역량 확보가 필수임에도, PBS 환경에서는 다음 수행사업에 대한 예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경력 관리조차 무의미해지고 있는 게 현 상황이다.

◆ 단기적인 성과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 PBS에서부터 문제점 파생

단기적 성과에만 매달려 있는 현재의 과학기술계 상황은 논문의 질에서부터 현저하게 드러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이주호)와 KISTEP(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최근 작성한 '2010 국가연구개발사업 성과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 핵심학술지에 실린 우리나라 논문들의 '상대적 순위보정 영향력 지수'는 0.933으로 세계 평균(1.0)을 밑돌았다.

우리나라 지수는 미국(1.088)·영국(1.074)·프랑스(1.049)·캐나다(1.039)·독일(1.038)·이탈리아(1.028)·일본(0.971) 등 이른바 '선진 7개국'은 물론, 중국(0.942)보다도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분석 대상을 국가R&D사업(정부 지원)을 통해 생산된 논문만으로 좁히면 더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우리나라 논문의 질적 수준이 0.897로 더욱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2007년 0.922에서 2008년 0.907으로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이같은 논문의 객관적인 자료가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현실을 얼마나 반영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과학자들이 국가 미래 신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연구에서 벗어나, 단기적인 성과에 머무는 연구에 치우쳐져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선순환적인 구조에서의 '경쟁'이 아닌, PBS로 인한 자기 살 깎아먹기 식의 '과도한 경쟁'으로 과학기술계는 점차 피폐해지고 있다. 대다수의 과학기술인들이 PBS 제도가 연구를 옥죄고 있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PBS를 되돌아보고 해결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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