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기 화학연 박사팀 "차세대 촉매도 지속 개발"
나프타 열분해 화학공정을 뒤집는 대덕의 신기술

중국에 '한국형 화학공장'이 건설된다. 우리나라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대기업 연구소가 독자 개발한 신개념 촉매 화학공장으로 지난 2002년 연구개발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10년만에 거둔 결실이다.

SK이노베이션은 박용기 한국화학연구원 박사팀과 박덕수 SK이노베이션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촉매를 이용, 에틸렌과 프로필렌을 제조하는 나프타 분해 공정기술 ACO(Advanced Catalytic Olefins)를 중국 산시성 옌창 석유화학에 적용하는 상용 공정 엔지니어링 계약을 최근 체결했다.

ACO 기술은 그동안 선진국에 전적으로 의존해오던 나프타 분해설비를 전혀 새로운 공정으로 접근한 기술이다. 기존 고온 열분해 방식 대신 촉매 반응을 이용해 보다 낮은 온도에서 에틸렌·프로필렌 등 기초 석유화학 제품을 조절·생산할 수 있는 석유화학계의 신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 화학산업 강국들 사이에서도 촉매 이용 중질나프타 접촉분해 공정법은 아직 상용화하지 못한 기술이다. 이번 중국의 ACO 기술 수출은 화학연과 SK이노베이션이 세계적인 수준의 화학촉매 개발과 공정 상용화에 성공함으로써 그동안의 열분해 석유화학 공장 역사를 혁신하는 첫 사례가 된 것이다.

옌창 석유화학은 ACO 기술을 활용해 연산 20만톤 규모의 에틸렌과 프로필렌 생산 선비를 건설할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수출을 계기로 마케팅 협력사인 미국 플랜트 엔지니어링 업체 KBR과 함께 중국 사이노팩, 중동 등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해외 기술 수출에 나설 계획이다.

김동섭 SK이노베이션 글로벌테크놀로지 총괄은 "이번 ACO 기술 수출을 통해 세계 석유화학산업계의 명실상부한 선도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 "과학자 성과 낼 수 있는 필수 조건은 국가에 대한 사명의식"
 

▲박용기 화학연 박사. ⓒ2011 HelloDD.com

"이제 본전했습니다. 그동안 반드시 실현된다고 큰소리쳤던 것이 사실로 입증됐네요." ACO의 핵심인 촉매 원천기술 개발자인 박용기 화학연 박사의 소회는 의외로 소박했다. 10년을 꼬박 공들여 개발한 자신의 촉매 기술이 파일롯 플랜트 실증실험 등 온갖 기술개발 상용화 단계를 극복하고 수출까지 이르는 성공을 거뒀음에도 박 박사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이제야 본전을 보게 됐다"였다.

'본전했다'라는 의미에는 그러나 남다른 감회가 담겨 있다. 그동안 자기와 함께 했던 연구자들이 주장했던 신개념의 촉매 화학공장이 첫 수출 성과를 거둠으로써 드디어 시장으로부터 기술을 공식 입증받게 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박 박사는 지난 10년간 장기 연구 프로젝트의 첫 결실을 맛보는 순간조차 남다르다. 기술 로열티나 명예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기술에 대한 세상의 인정 앞에서 만족해 한다. "과학자가 그거면 되는거 아닌가. 나는 돈을 쫓아 부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연구를 열심히 해서 부가 찾아오게 하는 사람이다."

'어떻게 10년 이상 프로젝트를 끌어오면서 성과를 이끌어 낼 수 있었냐'는 질문에 박 박사는 "과학자는 개인 보다 국가와 조직을 위한 사명의식이 있어야 성과를 낼 수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과학자가 사명의식을 갖고 연구에 임하면 실패하더라도 스스로 떳떳할 수 있고, 연구 과정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게 마련"이라며 "의식이 제대로 자리잡은 다음에야 꿈을 이루기 위한 설득력도 필요하고 근성도 필요하며, 리더십이 무르익어 완성되는 것 같다"고 덧붙여 말했다.

평택의 어느 시골 깡촌에서 글도 읽을 줄 몰랐던 농사꾼 아버지 밑에서 자란 박 박사는 본래 아버지의 영향으로 농촌계몽 운동을 하기 위해 농대를 가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공부를 하고 넓은 세상을 체험하면서 보는 눈이 조금씩 바뀌었다.

그는 외국에서 기술을 배우고 외국서 기술을 가져와야 인정받는 사회를 바꾸고 싶었다. 과학의 독립-. 그러기 위해서라도 그는 스스로 과학자의 길을 택해야 했다. 박 박사의 궁극적 꿈은 국가의 촉매 인프라를 구체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이번 ACO 기술에 들어간 신촉매를 1세대라고 한다면, 중국에 상용화될 공장에는 2세대 상용 촉매 개발 적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상용 촉매는 원재료 합성부터 OEM 생산에 이르기까지 100% 자체 기술개발한 촉매를 적용할 계획이다.

더 나아가 박 박사팀은 기존 촉매가격의 3분의 1 수준인 동시에 성능이 우수한 3세대 촉매 개발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박 박사는 "꾸준히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해 온 과학자로서 국가적 의식을 가지고 계획을 하고 하나씩 실행해 나가고 있다"며 "이제 본전을 봤으니 국가에 본격적으로 기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기자에게는 이 말이 '과학에는 국가가 없다고 해도 과학자에게는 국가가 있다'는 말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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