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공방전에 KAIST 부총장진 27일 기자회견 자청
이용훈 교학부총장 "정치 이슈 끼어들면 안돼, 교육·연구가 주 임무"

KAIST(한국과학기술원·총장 서남표)의 내홍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서남표 총장과 교수협의회(회장 경종민)는 최근 2주동안 비상혁신위 의결안 중 아직까지 수용되지 않은 안건 등을 놓고 4차례에 걸친 이메일 공방을 벌여왔다.

서 총장이 KAIST 교수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에 교수협이 조목 조목 반박하는 이메일을 다시 발송하자 학교 측은 27일 기자회견을 요청,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항들에 대해 해명했다.

교수협은 반박 이메일을 통해 혁신위 활동과 관련해 부적절한 표현의 정정, 신규건물 관련 마스터플랜 존중, 500억원에 대한 오버헤드(인건비) 위원회 구성, 펀드투자 손실 규명, 대학평의회의 조속한 구성, 부채상환계획을 비롯한 총 13개 항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특히 서 총장의 대표적 성과인 전기자동차와 모바일 하버 사업(이동식 항구)의 특허 소유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용훈 KAIST 교학부총장은 "혁신위가 제시한 의결안 26개 사안 중 23개는 절차에 따라 성실히 추진 중에 있다. 나머지 3개는 이사회에서 논의키로 결정한 사항이기 때문에 이사회의 결정에 반해 안건을 논의할 수 없는 입장"이라며 "학교의 주된 임무에서 벗어나 자꾸 무언가를 이슈화 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고 일침했다.

◆ 대학평의회 설치를 두고 대립하는 이유는 '의결권' 때문?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사항은 대학평의회 구성 부분이다. 교수협은 26일 '교수협의회에서 총장님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통해 "총장의 독단적인 경영을 해결하기 위해 대학평의회를 구성하자는 것인데 총장은 결정권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이사회에 미루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용훈 부총장은 "모든 사립대학들이 대학평의회를 설치토록 법제화돼 있다. 그러나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홍익대 등 주요 사립대학들은 평의회 관련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영상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아직까지 평의회를 설치하지 않고 있다"며 "조전혁 국회의원은 지난 2011년 2월에 대학평의회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사립학교법 전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해 놓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KAIST 직제규정 제22조에 따르면 평의회는 KAIST의 제반정책 및 방향 등에 대해 총장에게 건의·자문하기 위한 기구로, 목적은 구성원간 소통 등을 통한 대학발전이다. 대학평의회의 설치 여부를 놓고 양측이 대립하는 사실상의 이유는 '의결권' 때문이다.

쟁점은 평의회 이행요구 사항을 총장이 반대할 경우, 총장이 평의회에게 의결사항을 다시 검토해달라는 '재의'를 요청해야 한다. 총장이 반대를 해도 전체인원 3분의 2이상이 출석해 출석인원 3분의 2이상이 재의 사항을 찬성하면 총장은 이를 이행해야 한다.

그는 "대학평의회가 직제규정에는 건의·자문기구로 돼 있으나, 하위규정인 대학평의회 규정에는 의결기구와 같이 의결사항에 대한 이행을 총장에게 강제하고 있다"며 "총장이 거부한 의결사항을 대학평의회가 재의결할 경우 총장은 무조건 이를 실행해야만 한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KAIST 이사회와 평의회 간의 갈등 소지 역시 향후 불거질 수 있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평의회 의결사항을 KAIST 최고 의결기구인 이사회가 승인·의결하지 않을 경우, 학교와 이사회간의 갈등으로 발전하게 돼 학교 운영이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 학교의 모든 위원회는 심의·자문 기능만이 부여돼 있으며, KAIST의 의결기구는 한국과학기술원법 및 정관에 따라 이사회가 유일하다. 현행 규정에 따라 평의회를 구성할 경우 하나의 조직에 두 개의 의결기구가 상존하는 이중 지배구조가 형성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의원 구성도 대학평의회 설립 취지에 부합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 부총장은 "대학평의회 구성의 모법이 되는 사립학교법에는 교수, 학생, 직원 등이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KAIST 현행 규정은 교수들로만 평의회를 구성토록 하고 있다"며 "이는 교수님들로만 구성된 대학평의회가 전체 구성원에 대한 대표성 및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해 구성원들 간의 반목과 내부갈등을 가져올 우려를 안고 갈 수 있다"고 말했다.

KAIST의 모든 사항이 대학평의회의 안건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평의원 3분의 1이상이 심의를 요구하는 사항은 모두 평의회 안건으로 상정돼야 하는데, 이는 신속한 의사결정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학교의 의사결정이 각 구성원의 이해관계 및 명분에 따라 결정될 우려가 있어 학교 정책방향에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학내 소통을 위해 이미 주요 위원회에 학생을 포함시키도록 하는 내용의 혁신위 안이 통과됐는데 교수들로만 구성된 대학평의회가 왜 필요하느냐"면서 "교수협의 계속된 문제제기는 대학평의회 구성을 안해주기 때문이라고 단연코 말할 수 있다. 지극히 정치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 "특허 수입, KAIST 내 관련 위원회의 결정에 따르게 돼 있다"

'전기자동차와 모바일 하버와 관련, 총장이 발명자로 출원한 특허가 47건, 단독 발명자로 출원 및 등록한 것도 4건'이라는 교수협의 주장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이에앞서 교수협은 이메일을 통해 "총장 부임 후에 추진했던 온라인전기자동차와 모바일하버 등 두 사업과 관련해 총장님께서 발명자로 출원한 특허가 47건에 달하고 이중 4건은 단독 발명자로 출원 및 등록됐다"면서 "원내 규정에 특허가 사업화될 경우 발명자가 특허기술 수입의 50%를 받게 돼 있기에 총장께서도 사업화에 따른 수혜자가 되는데, 이는 기관장의 이권금지 개입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동호 ICC 부총장은 그러나 "두 사업이 총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것은 모든 교수들이 동의하는 사항이다. '기관장 이권 개입 금지' 조항에 어긋난다는 교수협의 주장 또한 임직원 직위를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할 경우에 해당되는 것인데 특허 출원 자체가 부당 이익이 아니기 때문에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그는 "특허 기술 수입의 50%를 받는 등 개인의 이익을 위해 양 사업을 추진했다는 주장 역시 사실과 다르다. 기술료 수입은 민간기업에 팔려야 발생하는 것인데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수입이 발생할 경우 관련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며 "이러한 직무발명에 대한 보상제도는 발명진흥법 등 관련 법령과 KAIST 직무발명규정에 의해서 관련 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시행·적용되고 있는 합리적 제도"라고 설명했다.

이용훈 부총장은 "현재 KAIST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이다. 해외에서 석학들을 모셔오려고 준비 중이다. 석학이 필요한 이유는 아이디어를 받아 큰 일을 하기 위해서다. 서 총장이 그런 격"이라며 "지금과 같은 논리로 일을 한다면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해외 석학의 아이디어로 연구를 진행했는데, 나중에 가서 특허 문제를 걸고 넘어진다면 누가 한국에 와서 연구를 하려고 하겠는가"라고 반박했다.

계속되는 날선 공방전으로 KAIST를 바라보는 눈길도 곱지는 않은 상황이다.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진지하게 소통은 안 하고 계속 지적만 하는 상황이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 왜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지 모르겠다"며 "본질보다는 그 외적인 것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내실없는 혁신이 진행될지도 모르겠다"고 쓴소리를 했다.

한편 교수협은 29일 낮 12시 창의학습관 터만홀에서 전체 교수를 대상으로 총장이 잇따른 자살사태 이후 취한 각종 조치 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발표한 뒤 비상총회를 열어 관련 성명서를 채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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