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설문조사]전체 응답자 345명 중 80%가 '관치과학' 비판
책임연구원 218명 참여…"기재부, 제도 개선 가장 큰 장애"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비수주방식인 PBS 제도가 시행된지 15년이 지난 가운데, 현장의 과학기술인들 10명중 7명은 이 제도 시행이 오히려 연구 자율성을 저하시키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PBS 제도가 연구계 전반에 미친 영향도 '유익했다'(9%) 보다는 '피해를 끼쳤다'(72.6%)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 PBS가 당초 취지에 맞게 운영됐느냐를 묻는 질문에는 80%가량의 연구자들이 그렇지 않다고 답하는 등 총체적인 제도 보완 노력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덕넷이 정두언 국회의원실과 공동으로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4일간 PBS 15주년 특별점검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이번 설문조사의 참여자는 345명이었으며, 설문참가자 응답자 연령은 50대(40.29%), 40대(33.33%), 30대(18.84%), 60대(4.93%), 20대(1.74%) 순으로 집계됐다. 설문 응답자 직급은 '책임연구원/책임기술원/책임행정원(63.19%)', '선임연구원/선임기술원/선임행정원(26.09%)', '연구원/기술원/행정원(6.09%)', '과학기술계 공무원(1.74%)' 순으로 나타났다. 기초기술연구회 소속 출연연(42.7%)과 산업기술연구회 소속 출연연(38.4%) 구성원들이 설문에 주로 응했으며 나머지는 대학(10%), 정부(2%), 기업(2%) 순이었다.

◆ 연구과제 수주하기 위한 최고의 덕목은 '연구능력' 아닌 '인간관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구과제를 수주하기 위한 최고의 덕목으로는 '연구능력'(22.6%)이 아닌 '인간관계'(43.2%)가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혔다. 인간관계를 연구비 수주의 제일 첫째 덕목으로 꼽은 응답자들은 아이디어 등이 가장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 인간관계가 중요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대정부 접촉능력'과 '고위 권력자 연줄' '인간관계와 대외인지도' 순으로 꼽았으며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선 그에 부합한 '대외 로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많았다. 'PBS 제도 개선에 있어 가장 큰 장애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기획재정부'(42.61%) '교육과학기술부'(22.67%) '대통령'(6.96%) 순으로 집계됐다.

기타로는 '각 부처간의 이권 다툼이 출연연을 멍들게 한다'는 의견과 '과학을 모르는 고위 공무원들의 경우 결과와 예산 배분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PBS 제도 개선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그렇다면 정부 부처의 PBS 제도 개선 노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설문자들은 '그저 그렇다'(41.16%) '노력하고 있지 않다'(40.87%) 등의 순으로 답변했으며, 대부분의 과학기술자들이 '정부의 적극적인 제도 개선 노력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연구의 특성을 외면한 채 경쟁과 능률위주의 선정과 평가, 행정 편의적인 사업운영, 전문성이 부족한 행정관료들이 연구비와 평가권 등을 행사하려는 욕심 때문에 빚어진 결과로 분석된다.

◆ 연구비보다 중요한 것은 과학자로서의 '자존감'과 '자율'

과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비가 아니었다. '과학자로서의 자존감과 자율'이 연구비보다 더 중요하다는 질문에 응답자 중 75% 가량이 '공감한다'고 답했다. 이미 자존심 버려진지 오래됐다는 한 과학자의 주관식 답변에서는 씁쓸함이 묻어나기까지 했다.

정부는 당장 연구현장에 활기를 불어넣음과 동시에 연구자율성을 보장하도록 할 수 있는 묘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정책입안자들의 현장과의 소통과 유연한 제도운영이 아쉽다는 의견도 포함됐다.

특히 PBS 제도로 '자율과학'이 실종되고 '관치과학'이 힘을 얻게 됐다는 의견에는 80.0%가 동의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으로는 '일정 수준의 연구 자율성을 부여하고 이를 제도로 정착해야 한다', '블럭펀딩으로 자율성과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연구비 수주에 쏟는 시간을 줄여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연구가 수단이 아닌 목적 중심의 연구 수행 풍토를 조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등에 의견이 모아졌다.

정부조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 과학자는 "기재부에서 모든 예산권을 갖고 연구원의 정원에서부터 임금까지를 모두 통제하는 상황에서는 어떤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관치과학을 피할 수가 없다"며 "연구원 내부를 수시로 감사하면 연구원에서는 모든 잣대를 감사에 맞춰 대비할 수 밖에 없다. 당연히 관치과학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탄식했다.

◆ 출연연 기관 고유사업은 '타당'…출연연 정확한 미션 세워야

PBS 제도 개선 방향으로 연구기관의 기본사업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기본 사업에서 성과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연구환경 현황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다는 현장의 의견을 반영, 출연연 기관 고유사업에 대한 설문도 함께 진행됐다.

설문 결과 기관고유사업의 체계적인 기획 현황에서는 42.5%가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보통' 32.5%, '부정적' 응답이 24.1%로 비교적 기관 고유사업의 기획은 타당하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교과부 등 관리감독기관의 미션 부여에 있어서는 35.4%는 '적절', 29.9%는 '보통', 33.9%는 '적절치 못하다'는 의견으로 나눠졌다. 출연연 미션 설정에 있어 좀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는 대목이다.

또한 응당 수행해야할 체계적 연구기획수행 여부는 40% 가량이 아직도 적극적으로 특허지도, 논문서지정보, 동향 정보 및 선행연구 등을 확인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연구기획에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나타났다.

기관고유사업이 새로운 목표와 내용으로 수행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49% 가량이 '긍정적'으로 답했으나 31%는 '보통', 20%는 '부정적'을 꼽은 것으로 조사됐다. 기관고유사업의 수행에 있어 전문적인 연구지원을 받고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29.6%가 '긍정'했고, '보통' 35.9%, '부정' 33.6%로 전문적인 연구지원 시스템이 출연연에 부족함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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