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연 '전통의학 글로벌 Top 3 연구기관' 도약 꿈 꿔
내부 결속다져 한의원천기술 개발에 집중…한의계 실질 협력의 매개체 돼야

“동의보감이 만들어진지 벌써 400년입니다. 이젠 그간의 성과를 반영한 21세기 동의보감을 제작할 때가 왔습니다. 국내 한의계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기획하고 각 분과학회에 작업을 분담시키고 한의학연은 기획·진행 등 총괄 관리를 맡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 일은 동의보감 발간이후 400년 동안 진화해온 한의학 관련 연구와 임상 성과를 집대성하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될 것입니다.”
 

▲한의학연 제 7대 원장에 취임한 최승훈 원장. ⓒ2011 HelloDD.com
최승훈 한국한의학연구원 신임 원장은 첫 취임 포부를 묻는 질문에 가장 먼저 新동의보감 편찬을 강조하였다.

한의계 발전과 한의학연 위상 재정립을 위한 아이디어들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중에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동의보감을 엮어내겠다는 그의 포부는 한의계가 과거의 유산과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이제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스스로 혁신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한번 입을 열기 시작한 최 원장으로부터는 국내 한의학계와 의료 산업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안들이 실타래처럼 풀려나온다.

“한의학 임상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WHO(국제보건기구)에서 2004년에 제안한 27개 중점 질환에 대한 임상진료지침을 만들겠습니다. 이와 동시에 국내 한의대와의 협력을 확대해 임상연구 기반도 넓히겠습니다.”

한의학분야의 임상진료지침은 한·중·일 세 나라 중 아직 우리나라에만 없다. 한의학연은 이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인식하고 우선 임상진료지침의 의의와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하고 국제적인 기준에 맞는 지침의 기본틀을 제공하는 등 전 과정을 총괄해 나갈 방침이다.

“임상진료 지침은 국내 한의학의 임상수준을 상향 표준화시킬 것이며, 국민들로부터도 신뢰를 얻는 기반이 되고,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서협진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협진에 대해서 최 원장은 “중국· 일본·대만 등은 한 의사가 양·한방을 동시에 진료하는데 우리나라만 두 의사가 한 환자를 본다”고 설명하면서 “두 의사가 한 자리에 앉기가 어렵지만 일단 자리를 같이 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의료를 제공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도 임상진료지침은 바람직한 동서협진의 첫 단추”라고 설명했다.

최 원장은 “작년 한의학연에 대해 행해진 국제진단평가에서 임상연구센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을 보고 받았다”며 “임상센터는 단기적으로 원내에 구축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 현재 대전대한방병원 내에서 운영중인 임상연구센터 외에 서울 경기권, 부산대 등 동남권과 호남권으로 협력 대학병원을 늘려 임상연구기반을 확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의계 전체를 아우르는 연구중심축 돼야”

원장 취임 후 연구원에 대한 첫 느낌을 물어봤다. 최 원장은 우선 한의학연이 밖에서 보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는 답이 돌아왔다. 생각보다 높은 수준의 다학제간 융합 연구를 하고 있으며, 연구시설이나 인력 등에서 우리나라 한의학 R&D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아쉬운 점도 밝혔다. 내부적으로 한의학연의 정체성에 대한 공감대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그는 “한의학의 과학화·표준화·세계화라는 연구원의 비전에 대한 구성원간 공감대가 좀 부족한 것 같다”면서 “끊임없는 자기혁신과 개방적인 사고, 그리고 외부와의 능동적인 협력 노력, 이를 통한 융합 등이 필요한 시기”라고 앞으로의 개선 방향을 내비쳤다.

그렇다면 최 신임원장이 이런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고 한의학연 발전을 위해 무엇을 구상하고 있을까? “3년 후 개원 20주년에 우리 연구원이 세계 전통의학 관련 연구기관 중 톱3가 되겠다는 목표를 일단 세웠습니다.”

2010년 국제진단평가에서 한의학연이 톱 5를 기록했으니 두 단계 상승을 목표로 하는 셈이다. 현재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보완대체의학센터(NCCAM)와 중국 중의과학원이 이 분야에서는 리딩 클럽이다.

최 원장은 “중의과학원은 4000여 명의 대규모 인력과 예산으로 자체적인 연구를 위주로 수행하고 있는 반면, NCCAM의 경우 60여 명의 직원이 연간 1400억여 원의 예산으로 외부 연구기관의 연구를 주로 지원 관리하고 있다”고 현황을 전했다.

최 원장은 두 기관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벤치마킹하면서 한의학연만의 정체성과 전략을 찾아나가는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복안이다. 두 기관의 성격을 적절히 절충한 형태로서 작지만 예산 대비 최고의 연구 성과를 내는 한의학연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이를 위해 안으로는 품질경영·성과경영·윤리경영 등 3대 선진경영을 추진한다. 내부 체질개선과 강점을 가진 분야로의 연구방향 집중을 통해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내놓겠다는 전략이다.

즉, 연구 기획에서부터 완료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해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닌 가치 있는 성과창출이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한의학 고유의 개념과 이론을 임상과 접목한 한의원천기술 개발은 한의학연의 정체성을 확립시킬 가장 확실한 무기로 꼽힌다.

최 원장은 “대세에 편승하고 흉내만 내는 연구로 우리 한의학연 연구의 차별성을 부각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전 세계적으로 천연물 신약 개발이 대세이지만 한의학의 독특한 이론과 오랜 임상경험이 축적된 기 혈 정 진액 침구 한약 체질 등에서 유래된 연구과제들이 우리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혈, 경락이나 봉한체계, 체질 연구 등이 그 좋은 예다. 서구에서는 결코 건드릴 수 없는 우리만의 고유 영역에 집중하자는 얘기다.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 가고 독보적인 원천기술을 발굴․수행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수천 년을 지속 진화해온 전통의료의 지식과 경험을 대상으로 하고, 이에 최첨단 과학기술을 접목시켜야 하는데, 그러한 의미에서 한의학연이 위치한 대덕단지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한다.

다학제 연구가 주를 이루는 연구원 특성상 한의계와 비한의계 출신 연구자간의 미묘한 시각차를 좁히는 것도 최 원장이 해결해야 할 몫이다. 최 원장은 “표준화가 중요하다는 한의계의 주장과 과학화가 우선이라는 비한의계의 목소리를 조화시켜 세계화의 발판으로 삼을 것”이라는 의지를 내비쳤다.

한의약 분야의 유일한 국가출연연구원으로서, 자체 연구도 중요하지만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연구개발의 중심축으로서 역할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빼놓지 않는다. 일반 대학의 경우 교수들이 임상·교육 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으며 연구비와 인프라가 취약한 편이다.

한의학 관련 기업은 대부분 영세해서 연구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편이다. 따라서 한의학연이 국내 한의학 연구개발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으며, 장기적 관점에서 한의학연은 한의기초기반을 구축하는 연구개발을 주로 담당하고, 그와 연계되는 연구는 대학이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최 원장의 생각이다.

최 원장은 “새롭게 전개할 사업에서는 국내외 전문가 풀을 활용하여 평가 자문뿐만 아니라 공동연구의 파트너로도 삼겠다”고 구체적 계획을 밝혔다. 또한 “연구분야별 네트워크를 통해 대학과 한의계와의 실질적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원장이 가진 국내외의 탄탄한 인맥은 이러한 모든 것을 가능케 할 최대 자산이다. WHO 활동으로 쌓은 각국 전문가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한의학연의 국제적 이미지 제고와 국제협력 분야 역량 강화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이다.

경희대 학장과 한국한의과대학협의회장 등을 역임한 경력은 학연 관계 향상에 디딤돌이 될 전망이다. 대한한의사협회와 대한한의학회 부회장을 지낸 이력은 한의계와의 원활한 의사소통에 한 몫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연구원들과의 소통 역시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한의학연이 진행해왔던 연구활동을 갑작스럽게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연스럽게 변화를 꾀한다는 취지다. 기존 인력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천천히 그러나 지속가능한 개혁과 혁신을 추진한다는 복안이다.

“어려운 원장 응모 결심, 확실한 열매로 보답하겠다”

“한의학연과 저의 인연은 정말 깊습니다. 대전에서는 저보고 금의환향했다고 하더군요. 85년부터 3년간 대전대 한의대 교수로 재직했었기 때문에 일단 한의학연이 둥지를 튼 대전이란 지역이 참 익숙하죠.

92년에는 보건사회부에서 한의학연의 전신인 국립한의학연구소 설립에 관한 용역과제를 수행한 적이 있었어요. 연구소 설립 직후인 95~97년에는 ‘한의진단명과 진단요건의 표준화’ 프로젝트를 위탁받아 수행했었죠.”

사실 최 원장은 올 초까지만 해도 한의학연 원장 도전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상황이었다. WHO 서태평양지역 전통의학자문관 임기 종료 후 학교로 복귀해 학장직을 맡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WHO와 ISO/TC249 관련 활동으로도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계획대로나 의지대로만 되는 법이 있나. 지난 연말 WHO와 ISO 관련 업무에 좀 더 집중할 목적으로 학교 측에 경희대 학장직의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던 중 2월초 김기옥 전임 원장과 김정곤 한의사협회장의 초청으로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최 원장에게 차기 한의학연 원장에 대한 권유를 하였고, 그때부터 원장직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고민도 많았다. 여전히 WHO와의 협력과 국제표준화기구(ISO/TC249) 한국위원장으로서의 활동이 부담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대전에 내려오게 되면 가족과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의학 발전을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싶다’는 생각에 원장 도전이란 중대 결심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이번이 아마도 마지막 기회일 것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최 원장은 요즘 매일 연구원 각 부문 담당자들에게 업무 보고를 받으며 연구원이 처한 다양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생각을 다듬는 중이다.

올 후반기의 구상을 거쳐 내년부터는 각종 연구과제들을 본격적으로 실현해 나갈 예정이다. 그는 지난 8월 22일 취임식에서 언급했던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글귀를 다시 한 번 소개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온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 다투지 않고, 남들이 싫어하는 역할을 하고, 어디든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등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저는 앞으로 이런 물과 같은 덕(德)을 마음에 새기면서 그동안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3년 동안 한의학연 발전에 쏟아 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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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 신임원장 약력> 경희대 한의과대학에서 병리학을 전공했다. 85년 대전대 한의학과 교수로 강단에 서기 시작하여 88년부터 경희대 한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89년 90년 두 차례에 걸쳐 대만의 중국의약대학과 국가과학위원회의 객좌교수, 93년 중국 국가중의약관리국 초청교수, 2001년 Stanford 의대 방문교수를 역임했다.

2003년부터 5년간 WHO 서태평양지역 전통의학자문관으로 있으면서 ‘WHO 전통의학 국제표준용어’, ‘WHO 침구경혈위치 국제표준’을 개발하는 성과를 올렸다.

경희대 한의과대학장, 한국한의학표준연구원장,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 대한한의학회 부회장, 동의병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최근까지 ISO/TC249 한국위원회 위원장과 WG5(의료정보)의 의장직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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