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한 수리연 소장 직위해제…숨겨진 이야기는?
잇단 투서가 고강도 조사로 이어지며 연구 분위기 '출렁'

과학계가 투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아니 몸살을 넘어 만신창이가 됐다. 세계적 수학자로 인정받는 수리과학연구소의 김정한 소장은 지난 17일 업무상 배임과 횡령 혐의로 직위해제됐다. 횡령이라지만 그 과정에서 그의 주머니에 들어온 돈은 한 푼도 없다. 청년취업이란 국가시책에 맞춰 움직인 일이 나중에 올가미로 작용했다.

기계연구원의 이상천 원장은 임기만료 한달을 앞두고 사표를 썼다. 관료를 접대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거취를 요구받았던 것이다. 최근 연임에 성공한 K연구원의 모 원장은 올초부터 투서로 고초를 겪었다. 결국에는 사실무근임이 밝혀져 이번에 연임하게 됐지만 그 과정에서 회한과 불면의 나날을 지새야했다.

연임 결과 발표가 한 달도 안 남았던 모 연구원의 A원장은 두어달전 사정기관으로부터 비정규직 채용과 관련해 취조 아닌 취조를 받았다. 본인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일 때문이었다. 이런 사태의 대부분은 내부 투서에서 비롯되기 일쑤다.

왜 이런 일이 자꾸만 벌어지는 것일까. 대덕넷에서는 최근의 투서와 관련된 과학계의 움직임을 짚어보고, 과학계가 스스로 자긍심을 갖고 자치 과학의 실현을 이루는 대안 등을 4회 시리즈로 살펴본다. 시리즈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사례-김정한 소장 해임의 이면 2 투서, 왜 이어지나? 3 과학계 어떻게 할 것인가? 4 '외부 의존 투서 넘어 자치 과학을 위해' 주제의 현장의견 종합 [편집자 주]

먼저 이슈가 되고 있는 김정한 소장 ‘사건’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기로 하자. 투서의 전형적인 사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한 소장이 취임한 것은 지난 2008년 10월. 수학자로 평생을 살아온 그가 기관장이 되자마자 겪은 일은 다소 황당한 일이었다.

총 7명의 행정직원 가운데 3명이 사무실에서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 이 게임은 해본 사람은 알지만 함께 해보면 더욱 재미있다. 정규직 3명과 비정규직 1명 등 4명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게임을 하는 것을 지켜본뒤 깊은 고민이 시작됐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7명 중 3명이면, 게다가 비정규직까지 4명이면 사무실에서 비중이 작지 않은 일이었다. 잘못 조치를 취하면 전체 분위기가 나빠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두고 보자니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무엇보다 다음에 소장으로 올 사람한테 큰 골칫덩어리를 남겨주는 셈. 고뇌 끝에 4명 가운데 주동자격인 2사람을 해고했다.

컴퓨터에 게임을 깔은 사람과 직무에서 팀장에 해당하는 사람이 대상자였다. 그것이 2009년 3월. 하지만 주인이 없는 기관인 연구소에서 해고라는 초강수를 쓰는 것은 적잖은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이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노동위원회에 부당 해고라고 제소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져 3개월 뒤에 복직했다.

문제는 이때부터 더 불거졌다. 연구원의 속성상 내 일에는 관심있지만 다른 사람의 일에는 관심이 없어 조직내 소통이 가뜩이나 잘 안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 판에 이번 일로 소통 채널은 거의 닫히다시피 했다.

이후 김 소장은 나름대로 성공적인 기관 운영을 위해 국내 수학자는 물론 세계적 수학자도 모셔왔다. 그 과정에서 투서가 들어갔다. 그가 첫 수사를 받은 것은 올 5월. 경찰측 소식을 인용한 매스컴 기사에는 연구과제 부당 계약과 연구비 리베이트 등을 둘러싼 금품 수수 등의 혐의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 부분은 경찰이 수사결과를 검찰로 넘기면서 빠졌다. 경찰이 마지막으로 문제삼은 것은 연구비 과다 지급. 이에 대해 김 소장측은 "세계적 수학자의 초빙을 둘러싸고 당시 교과부가 시작한 WCU(세계 수준의 연구중심 대학) 프로젝트와 경합하면서 당초 예상보다 초청비가 많이 들게 됐다"며 "하지만 기관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재량권을 갖고 움직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우수한 과학자를 연구소에 초빙하기 위한, 그의 의사결정 논리는 간단하다. "100원짜리 가치가 있으면 이를 120원에 사서 150원의 가치로 만들려는 생각 때문이었다"며 "일부에서는 80원에 사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러면 50원의 가치도 얻지 못하는 것이 창의적 인재의 특징"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경찰이 문제 삼은 인턴 채용 및 이들의 벤처기업 파견과 관련해서는 "정부 역점 추진사항"이었다고 반론을 편다.

이 사업은 2009년 교과부가 경기악화로 인한 청년층의 취업난 가중을 해소하기 위해 시행한 것. 원래 취지가 출연연에서 학생을 인턴으로 채용해 인력난을 겪고 있는 벤처기업에 보내 근무토록 한 제도였다. 김 소장은 사업시행에 앞서 상급기관인 기초기술이사회에 사업의 타당성 여부를 문의해 설명을 듣고 학생들을 채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해임통보를 받기 며칠 전 대덕넷과 만난 김 소장은 "이렇게 고통받을줄 알았다면 결코 행적직원들의 사표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며 힘든 표정을 지었다. 그는 '논개 작전'이란 말로 자신의 심정을 설명했다. 전체 분위기를 해치는 직원이 있는데 이를 보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진퇴를 결정짓고, 자신도 단임으로 기관장을 그만두면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해 해고라는 강수를 썼다는 것.

그런데 그 일이 연관이 있는지 모르지만 투서가 벌어졌고, 그것이 경찰의 수사로 이어지며, 언론에 보도되고 마치 파렴치범으로 여겨지는 현실에 후회가 막심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경찰수사에서도 나왔지만 내 주머니에 돈이 들어간 것은 한 푼도 없다"며 "기관을 운영함에 있어 기관장에게 자율권을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밝혔다.

그는 "한국에 살면서 힘들었다, 사람들의 창의성을 살려주기 보다는 주어진 틀에서 생각하고 움직이게 했다"며 "상상력과 창의성은 지금은 소용없을지 모르나 '플랜B'를 만들면서 나오는데 다른 점을 인정하지 않고 정답만을 요구하는 풍토가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 수사를 받으면서 한때 심리적 공황상태를 겪기도 했다"며 "지금은 차라리 편하다. 마음이 힘들었던 것이 '명예'때문이 아니었나 여겨지는데, 이제는 그 명예도 하나의 욕심이 아닌가 여겨지며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고 심정을 피력했다.

수리연 운영을 둘러싸고는 수학계에 두 가지 의견이 있다. 김정한 소장에 동정론을 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비난하는 측도 있다. 동정론은 수리연이 2014년 세계 수학자대회를 유치하는데 한 몫을 했고, 예산확보와 연구환경 조성에 성과를 보였다는데 모아진다.

비난하는 쪽은 순수수학보다는 응용수학에 비중을 많이 두었고, 학계 및 연구소 내부의 소통이 막혔다는 지적이다. 이번 일로 수리연 내부는 뒤숭숭하다. 연구소의 특성상 드러내놓고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소장의 직위해임까지 사태가 발전하자 아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사태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연구원은 "모든 기관이 100점짜리로 운영되는 경우은 없을 것"이라며 "연구소 경영에 있어 소소한 문제점은 발생할 수 있는데 그런 부분들까지 일일이 정부나 수사기관이 개입하는 것은 연구소의 자율성을 해치는 행위가 아니겠느냐"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김정한 소장 사건은 어찌보면 이제 시작이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과 연결된 부분도 없지 않다. 투서가 경찰 특수수사과의 강도 높은 조사로 연결되고, 많은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율성과 명예가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기관장 해임으로 연결됐다.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과학계에서는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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