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동 상임위원 "유사·중복 연구 실태 심각, 민간위案 수렴"
연구현장 "과학기술 콘트롤타워 중복문제 심각"

국가과학기술위원회(위원장 김도연)가 정부출연연구기관이 하나의 법인으로 통폐합되어야 한다고 이명박 대통령에 보고한 사실이 알려지자 연구현장에 파문이 일고 있다.

1일 김화동 국과위 상임위원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는 민간위에서 내놓았던 안(법인 통폐합)을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법인을 하나로 묶는 것을 속도있게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은 "그동안 출연연 거버넌스 문제에 대해 필요성을 많이 어필해 왔다"며 "융합이 대세라고 말하고 있는데, 융합을 해야 발전속도가 붙는다. 우리나라 출연연 거버넌스에서는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없다"고 말했다.

국과위 입장은 현재 출연연 구조가 칸막이 형식이기 때문에 사업과 연구 모두 각 기관들이 별도로 수행하고 있어 융합의 효과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과위는 출연연들의 칸막이를 낮출 필요가 있고, 기존 출연연 민간발전위원회에서 제시한 법인 통합을 통해 해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과위는 또, 법인 통합 뿐 아니라 블록펀드와 정년연장 등 민간발전위가 제시한 것을 풀기 위해 노력중이다. 국과위가 이날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출연연을 비롯한 대개의 연구기관들의 유사·중복 연구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NTIS) 시스템을 활용해 시범적으로 6개 분야의 정부연구기관의 유사·중복 연구사례를 조사해본 결과, 적게는 11개에서 많게는 23개의 연구기관에서 같은 분야에 대한 연구를 제각각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과위가 시범 조사해본 6개 분야의 경우 차세대 디스플레이는 약 19개 연구기관에서, 신약용 물질 연구는 약 21개 연구기관, 풍력에너지는 약 11개, 차세대 자동차(지능형, 하이브리드, 연료전지 자동차)는 약 16개, 로봇(인공지능, 지능로봇)은 약 17개, 태양에너지(태양광, 태양열)는 약 23개의 연구기관에서 제각각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에서 대학과 기업 연구는 제외됐다. 국과위는 이같은 문제를 부처 영역 넓히기와 출연연 칸막이 구조, PBS(연구과제중심) 제도의 폐해로 귀결되는 것으로 분석했다. 정부 부처들의 지나친 욕심으로 인한 무조건 적인 연구 영역 확대로 인해 비슷한 연구들이 겹쳐서 추진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나 민간에서 연구 과제를 수탁해 인건비 등을 조달하는 PBS 제도 역시 돈이 되는 연구에만 몰리는 과열 현상으로 인해 여러 부작용이 있어왔다. 이같은 조사 결과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도연 위원장은 국과위 업무 현황 전반을 '중간 보고'하는 과정에서 함께 설명했고, 대통령도 이 자리에서 이같은 문제 인식에 공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은 "국과위가 부처간 유사·중복 사업을 집중적으로 걸러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다수 사업이 이미 시작돼 있는만큼 이를 정리하는데 수 년의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한 해 4조원에 이르는 예산을 사용하는 출연연들이 지금처럼 각 부처에 속한 채 정보나 인력 교류에 나서지 않으면 계속 유사·중복 연구를 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세계적 과학기술 조류인 '융합 연구'도 불가능하다"며 "하나의 이사회를 두고 단일 법인으로 통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현장은 이같은 국과위의 입장에 어리둥절한 반응이다. 출연연 관계자는 "이제 또 법인 통폐합인가. 슬그머니 들어갔나 했더니 다시 또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도대체 과학기술계를 안 잡아먹어서 안달인 사람들인 것 같다. 대학과 출연연 통합에 강소형 연구소, 거기에 법인 통폐합까지 신경쓸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솔직히 이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심정을 밝혔다.

E 연구원에 다니는 K 박사 역시 "연구소에 매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30년간 근무하면서 하도 시달려서 이제는 좋고 나쁘다보다 '과연 될까' 라는 생각부터든다"며 "천천히 하나씩 문제를 바꿔가야하는데 연구원들을 너무 흔든다. 너무 흔들면 부하들이 떨어져 나간다. 연구 외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주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정정훈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장은 물리적인 통폐합은 지양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출연연이 국과위로 가는 것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올해 초 출연연 선진화가 마무리 될 때 조사를 통해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있었다"며 "법인 통합과 관련해서는 연구가 합의로만 합쳐질 수 없으니 개선된 운영제도 등이 함께 따라주면 단일 법인으로 가는 것도 감수하겠다는 것에 67%가 찬성했었다"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그러나 분가해 살던 가족이 화합하기 어렵듯, 26개 기관들이 합쳐진다면 정서와 문화가 다 달라서 지금보다 더 따로 놀 수가 있다. 시스템 제도에 맞추려는 것 보다 출연연을 지배하는 소프트웨어를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출연연의 시너지를 위한 통합에 찬성하는 L 출연연 책임연구원은 "연구기관들 보고 중복이 심하다고 하는데 과학기술 콘트롤타워도 중복이 심하다"라며 "한쪽에서는 강소형, 교과부는 대학-출연연 통합, 국과위는 출연연 통합을 이야기 하면 도대체 현장에서는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것이냐"고 꼬집어 말했다.

출연연 P 선임연구원은 "출연연간 중복이 많으니까 통합하라는 방식은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하는 꼴이 될 것"이라며 "중복이라서 연구자간 경쟁을 통해 성과가 극대화되는 유형은 또 어떻게 할 것인지의 논의가 실종된 지금, 결과적으로 통합만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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