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삼용 표준연 박사팀, 'PLB(파워 라인 브로드캐스팅)' 개발

당신의 시간은 정확한가요?

지난 ○○일 새벽 1시 23분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그림이 사라졌다. 인적이 드문 새벽, 주도면밀하게 박물관에 침입한 범인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유일한 희망은 박물관 내에 설치된 CCTV. 사건이 발생한 시점과 일치하는 화면을 찾으면 범인을 찾을 수 있다. 아뿔싸! 이게 먼일이람. 실상 사건현장을 녹화한 CCTV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CCTV에 정확한 시간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 정전으로 전원이 나간 적이 있었던 CCTV는 전력이 복구된 후 다시 작동했지만, 이때 초기화된 시간을 다시 설정하지 않아 정전 후에 기록된 시간은 모두 오류 상태로 남게 된 것이다. 전력이 나가면 시간이 초기화된다는 점을 간과한 작은 실수가 사건 해결에 대한 희망을 산산조각내고 말았다.

다행히도 앞서 말한 '모나리자 도난 사건'은 가상이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사건이 실제로 벌어졌다면 전 세계에 큰 혼란이 빚어졌을 것이다. 우리 집안에서도 시계의 건전지가 다 닳거나 전원이 나갔던 줄 모르고 잘못된 시간을 보며 지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설령 전력이 일시 끊어지더라도 다시 전류가 흐르면 바로 정확한 시간을 알 수는 없을까?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원장 김명수) 기반표준본부의 우삼용 박사는 바로 이런 문제에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 전기선 활용 다각화…"전기선에 신호 담을 수 있다"
 

▲우삼용 박사(기반표준본부장). ⓒ2011 HelloDD.com
집집마다 흔해빠진 것이 전력선이다. 이같이 넘쳐나는 전력선이 단지 전력을 공급하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한 우 박사는 전력선에 시간 정보를 실어 전력선의 쓰임새를 다각화했다.

그가 개발한 기술은 'PLB(파워 라인 브로드캐스팅)'. 전력선에 시간주파수를 보내는 기술로 전자제품에 자동으로 시간동기화를 해주는 기술이다. 이전에도 전력선의 변신을 꾀한 시도는 있었다. 전력선을 인터넷망을 대신할 통신선으로 쓰려고 한 것이다.

전력선만으로 통신을 할 수 있으면 인터넷 전용선을 굳이 깔 필요가 없는 것. 하지만 실상 산업용 기기들이 동시에 전력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통신이 자꾸 끊기는 경향이 있어 전력선을 통신선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이제 한물 간 처지다. 우 박사팀이 개발한 PLB는 전력선을 이용한 '시각방송'이다. 방송은 쌍방이 주고받는 통신과 달리 일방적으로 보내는 방식이다. 그만큼 기능이 단순해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전력선에 시간 정보를 넣어 보내기만 하면 된다. 그는 "시간방송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이후에는 온도, 알림 등 다양한 정보를 전력선에 실어 많은 사람에게 동시에 전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력선을 이용한 방송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방향 방송에서 쌍방향 통신으로 가는 시대 흐름에 역행한 것이 오히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 시간동기화…"시간방송 통해 시간을 수신하다"

시간정보를 받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5메가헤르츠 단파안테나로 표준시계의 시간정보를 받는 방법과 GPS에 내장된 원자시계정보를 받는 방법이다. 전력선을 이용한 시간방송의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GPS수신기나 표준시계 안테나를 이용해 시간정보를 받고, 전력선에 시간정보를 입력한다. 전력선에 입력된 시간정보는 디스플레이(시계)를 통해 볼 수 있다. 어느 누군가가 GPS, 표준시계 등의 시간정보를 전력선에 입력하게 되면 '시간 방송국'이 되고, 저마다 갖고 있는 수신기가 '시계'이고 방송 콘텐츠는 순간순간의 '시간'이 된다.

우리가 TV를 통해 다양한 방송프로그램을 수신할 수 있듯이 PLB 수신기를 갖고 있는 수많은 전자제품, 기계, 가전기기들이 동기화된 시간 신호를 수신할 수 있다. 시간방송 기술의 장점은 전력만 공급되면 별다른 설정 없이 바로 정확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정전이 되거나 디스플레이의 전원이 나가면 다시 정확한 시간을 설정해야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전력선을 통해 지속적으로 시간 정보가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전력선이 단지 전력만 공급하는 통로에 불과했기 때문에 전력이 나가면 연결된 시계의 시간도 초기화 됐던 것이다. PLB전용 회로를 이용해 우리가 쓰는 전력선에 시간신호를 넣어주고
디스플레이에 수신해 시계로 작동시키면 따로 설정할 필요 없이 정확한 시계를 사용할 수 있다.
 

▲전력선 통한 시간정보 공급 체계.  ⓒ2011 HelloDD.com

◆ 시간방송 표준화…"산업 및 보완에 적극 활용 가능해"

모든 나라가 단위는 조금씩 달라도 전력을 쓴다는 사실과 정확한 시간 측정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전력선을 이용한 시간방송이 표준화된다면 지구인 모두 정확한 시간을 편리하게 공유할 수 있다. 해외여행을 가더라도 그 나라의 시간이 우리와 얼마 차이가 나는지 확인하고 손목시계를 맞출 필요가 없다. 근처에 있는 전력선에 시간수신기를 넣기만 하면 그 지역의 시간이 저절로 표시되기 때문이다.

CCTV나 공장 자동화 설정 등 정확한 시간제어가 필요한 경우에도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라스베이거스, 서울 등 대도시에서 시간을 이용한 점멸 기능을 이용해 동시에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 수도 있고 거대한 규모의 도시 예술을 구현할 수도 있다. 이처럼 PLB를 통하면 백남준의 미디어아트를 더 크게 구현할 수도 있고, 명품도시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또한 전력선을 이용한 시간방송이 일상화된다면, 교통신호, 예술, 시간스탬프, 재난방송 등 산업과 보완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연구원에 있는 회의실마다 전자시계가 비치돼 있는데, 그 시계들이 가리키는 시간이 모두 달랐죠. 그런데 어느 날 연구소를 찾은 외부인이 '어떻게 시간의 표준을 연구하는 표준연에서 각 방마다 다른 시간을 가리킬 수 있냐'며 의문을 제기했어요. 그래서 연구원 안에 있는 모든 시계를 표준시계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우삼용 박사는 그 때를 계기로 모든 사무실이나 회의실에 있는 시계를 보다 편리하고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2009년 가을부터 우 박사팀이 연구한 시간방송은 현재 특허 출원 및 본격적인 연구개발 돌입 단계에 있다. 국내 특허 등록만 3개, 국내 특허 출원 8개와 해외 출원 1개도 진행 중이다.

아울러 실제로 산업화하기 위한 기술 개발도 병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력선을 이용한 시계는 전무합니다. 아무도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구에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보통 처음 아이디어를 내고 연구를 하려하면 많은 반발들이 있죠. 왜 외국에서 지금까지 안 했겠느냐? 처음 나온 기술은 아니다 등등. 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합니다. 앞설 수 있고 기술 선점이 가능해 우리나라에 큰 이익을 가져올 수도 있죠.“

우 박사는 새로운 차원의 연구 과제에 임하는 연구자들의 의욕에 찬물을 끼얹는 일부 분위기에 대해 어려움도 토로한다. 그러면서도 이것도 선진국으로 가기위한 진통이라고 보고 향후 성숙한 연구문화가 자리 잡혀야 발전적인 과학기술의 행보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일침도 잊지 않는다.
 

▲시각방송단말기. GPS를 통해 시각신호를 받아 PLB전용장치로 구현하고 있다. ⓒ2011 HelloDD.com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