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산업화②]재미과학자 자발적 모임 활성화…KASBP, BAKAS 등
"미국서도 인맥 중요…정보 주고받으며 한인과학자 자생력 키워"

"최근 몇 년 사이 저희 회사에서 연구 인력을 600명에서 200명으로 줄였습니다. 글로벌 경제 위기를 겪으며 CEO들은 회사 경영의 효율을 높이라는 강한 요구를 받게 됐고, 그들이 단기간에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역시 R&D 비용을 줄이는 것이었죠. 현재 미국 내의 바이오 분야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칼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미국 제약기업에 재직하고 있는 한 과학자가 전한 현지 분위기다. 그는 "어느 날 특정 장소에 모이라는 회사의 이메일이 와 있어 가보니 연구원들을 두 부류로 나누어 대기를 시켰다"며 "그 중 한 그룹이 모두 정리해고를 당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같은 방식으로 두 번에 걸쳐 연구원들을 해고했는데 첫 번째는 함께 분류된 연구원들을 보고 살아남았다는 것을 확신했지만 두 번째는 반대편에도 실력 있는 연구원들이 많아 굉장히 헷갈렸다"며 "나중에 생각해보니 반드시 연구를 잘해야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는 철저히 몸값 대비 연구력이라는 효율을 따져 연구원들을 해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일들이 현재 미국 산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는 대학·연구소에서도 마찬가지. 최근 미국 유수의 한 대학은 연구 인력을 20% 감축했다. 바이오 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재미 BT과학자들은 이러한 미국의 상황에서 누구보다 불안한 상태에 놓여있다.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체 한인 과학기술인들의 수는 1만여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에 등록된 회원수만 7200여 명(2010년 기준). 이 중 바이오 분야에 종사하는 과학기술자의 숫자는 따로 정확히 파악된 것이 없지만,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화학과 생명과학 분야를 합쳐 전체의 30%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바이오 분야 재미 과학기술인들의 대부분은 선진 연구 환경을 경험하고 싶어 유학을 택했다. 특히 1980년대 이전에는 국내 바이오 연구나 교육 부분이 외국에 비해 상당히 뒤쳐져 있었고 때마침 국비 유학제도 도입과 유학규제 완화로 인해 유학 붐이 일고 있었다.

당시 우리보다 먼저 바이오 분야에 대한 연구와 산업화가 이뤄지고 있던 미국으로의 유학 비중이 80%를 상회했다. 1990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는 국내 교수·연구원으로 임용되기 위해선 외국 연수 경력이 필수가 되는 분위기도 조성돼 국내 바이오 분야 대학졸업자의 상당수가 학위과정이나 박사후과정(Postdoctoral)을 해외에서 밟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국내에 돌아와 연구를 진행하고 싶어도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바이오 분야 기초연구력 향상을 위해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대학교를 중심으로 바이오 분야 연구원과 교수들을 해외에서 대거 초빙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귀국의 기회가 없었다. 이들은 국내에서 자신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취업 기회가 적고, 보수와 지원 수준도 낮아 대부분 현지에서 정착했다.

문제는 최근 상황이 바뀌며 미국에서마저 일자리가 줄고 있다는 것. 미국 바이오계가 연구개발에 엄청난 자원을 쏟으며, 고급 과학기술 연구 인력의 30% 이상을 타국의 유학생들로 채울 때는 취업의 기회가 많았지만 현재는 바이오 분야 신규 채용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형편이다. 게다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시작하면서 기존 연구원들의 직업 안정성도 현저히 낮아졌다.

또 상황이 어려워지자 재미과학자들이 프로젝트를 이끌 수 있는 위치로의 진급은 더욱 요원해졌다. 아무리 미국이 다민족국가라지만 그들에게 재미과학자들은 이방인. 대학에 소속된 이들 중 상당수는 교수(faculty member)까지 가지 못하고 박사후연구원으로 전전하고 있으며, 기업에 진출한 이들도 프로젝트 책임자까지의 승진이 쉽지 않다.

한 재미과학자는 "미국에서도 인맥은 매우 크게 작용한다"며 "우리나라에서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지역의 이공계 유학생들을 리더로 양성하지 않는 것처럼 미국에서 보는 우리의 지위도 비슷하다"고 토로했다.

◆재미과학자 ‘네트워킹’으로 현실 타개…한국 제약기업들과도 교류 활발

사정이 이렇자 바이오분야 재미과학자들은 자체적인 네트워킹 모임을 강화해 현실을 타개하려 하고 있다. 현지 적응을 위한 도움이나 채용 정보를 주고받는 것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경력에 도움이 될 만한 학술활동을 강화하고, 결속력을 다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조직 체계를 정비할 수 있도록 단체를 법인화했고, 국내 바이오 관련 기관들과 협약과 후원도 진행하며 교류를 활발히 하고 있다. 대표적인 네트워킹 거점은 미국 동부의 엔이비에스(NEBS:New England Bio-science Society)와 카스비피(KASBP:Korean American Society in Biotech and Pharmaceuticals), 서부의 베이커스(BAKAS:Bay Area Korea Association Scientists)와 콜리스(KOLIS:Korean Life Scientist in the Bay Area) 등이다.
 

▲미국에 형성된 한인 바이오과학자 네트워크 모임 분포 현황. ⓒ2011 HelloDD.com

NEBS는 1984년 설립된 생명과학협회로서 브라운대학(Brown University), 보스톤대학(Boston University), 하버드대학(Harvard University), 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매사추세츠 공과대학), 펜실베니아대학(University of Pennsylvania), 예일대학(Yale University) 등 16개 대학과 뉴잉글랜드지역의 23개 연구소에서 생명과학과 생명의학을 연구하는 박사후 연구과정 또는 석사 학위 이상의 한국인 과학자들로 구성된 비영리단체다.

올해는 약 500여명이 회원으로 등록해 매월 학술세미나 모임을 열고, 매해 5월 연례학술대회를 개최한다. KASBP는 신약개발과 생명과학에 대한 학술정보 교류와 회원간의 유대 강화를 목표로 2001년에 조직된 비영리 단체다.

현재 뉴잉글랜드 지역 제약기업 종사자들로 구성된 400여명의 회원들이 주축이 돼 미국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BAKAS는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의 다국적 바이오·제약기업에 종사하는 재미과학자들의 모임으로 현재 약 100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주요 설립 목적 중의 하나가 국내 바이오 기업의 미국 진출 자문과 정보교환인 만큼 국내 바이오 단체들과 교류를 활발히 하고 있다. 2009년에는 대전시와 대전테크노파크, 대덕이노폴리스벤처협회와도 우호협정을 체결했다.

KOLIS는 샌프란시스코의 스탠포드대학(Stanford University), UCSF(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UC Berkeley, UC Davis 소속의 박사후연구원, 박사과정 학생들의 모임. 매달 해당 학교 내에서 학술모임을 갖고, 일년에 3회 정도 4개 학교가 모두 모이는 행사를 진행한다.
 

▲스탠포드대학에서 진행된 '2011 KOLIS Annual Meeting'의 단체사진. ⓒ2011 HelloDD.com

여기에 최근 2~3년 사이 노스캐롤라이나의 RTP(Research Triangle Park) 지역을 중심으로 미국 동남부지역의 한인과학자들의 모임 'RTP B&B(Bioscience and Biotechnology Meeting)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볼티모어 지역의 생명 과학자들의 모임인 BLSA(Baltimore Life Scientists Association), 뉴욕과 뉴저지지역 한인생명과학자들의 모임인 NYKB(New York Korean Biologists)도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다.

2009년부터 바이오분야 재미과학자들의 네트워킹 모임을 지원한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센터장 현병환)에 따르면, 시카고와 텍사스, 샌디에이고 등에도 한인 생명과학자들이 다수 활동하고 있어 새로운 네트워크 거점이 더 구축될 전망이다.

현병환 센터장은 "재미과학자들의 네트워킹 거점이 생기면 미국 내에서의 결속이 강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국내 바이오 관련 기관들과의 교류도 활성화될 수 있다"며 "낱낱으로 활동할 때와는 달리 시너지가 생기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 센터장은 이어 "현재 국내 바이오산업화를 위한 인력수급에 재미과학자 네트워킹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는 향후 국내외 바이오 연구인력들의 네트워킹을 더욱 활성화시키기 위해 한인과학자 단체들 간 연간 교류회 개최를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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