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과학기술 속에서 윤리읽기]

유전자 선택을 통해 인간을 탄생시키는  
미래 사회를 그린 영화 '
가타카'.
2011 HelloDD.com
'아이의 유전형질을 부모가 결정한다!' 현재는 착상전 유전자 진단법(PGD) 정도이지만, 앞으로 선별적 유전자 교체나 제거 등으로 유전적 향상(genetic enhancement) 기술이 등장하면 장차 태어날 아이의 유전적 특성을 부모의 고려에 의해 선택되는 날이 올지 모른다.

부모가 장차 태어날 자신의 아이의 유전형질을 선택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매우 생소하고 부자연스럽다.

아이의 유전형질을 부모가 결정할 수 있다고 할 때 대중들은 어떤 반응을 할까. 장차 태어날 아이가 정상적인 아이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생식세포에 대한 공학적 조치를 통해 아이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옳지 않다는 답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조금만 사례를 구체화하면 대중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수정란 검사에서 미래 아이의 유전적 질환 내지는 장애가 확인되었으며, 이를 제거하기 위한 유전공학적 조처를 취할 수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 경우에 부모의 의지에 따라 아이의 유전적 특성을 변화시키는 것이 윤리적으로 잘못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할까?

아마 장차 태어날 아이의 질병 혹은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도 그렇게 조처하지 않은 행위가 오히려 도덕적으로 비난받지 않을까?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전자는 치료가 아니라 능력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과 후자는 치료목적이라는 이유를 댈지 모르겠다.

그런데 치료와 능력향상 사이의 경계는 생각만큼 뚜렷하지 않다. 무엇을 치료 대상 목록에 포함시킬지는 임의적이다. 치료 목적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는 소극적 선택(negative selection)이고 능력향상 목적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는 적극적 선택(positive selection)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치료 목적의 행위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능력향상 목적의 행위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소극적·적극적의 구분은 우리의 일반적 경험을 반성해보면 그것이 대중의 상반된 반응을 정당화해줄 근거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아이를 가진 임신부는 태아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흡연이나 음주를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찬가지로 좀더 건강하고 바른 아이가 태어날 수 있도록 태교에 신경쓰는 것 또한 바람직하다. 태아에게 아무런 위험을 주는 음식이 아니지만 좀더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음식이 있어 그것으로 교체하는 것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능력향상을 위한 적극적 조치로서 아이의 유전적 특성을 부모의 의지대로 바꿔 놓는 행위가 미래 아이를 목적으로 대우하지 않고 단지 수단으로 취급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견해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되는데, 한 인간(미래 아이)의 자율성을 무시한 처사라는 것도 이런 견해에 속한다.

생식세포에 대한 공학적 처치가 아이의 자발적 동의 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것은 인간을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이고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발적 동의가 문제라면 치료 목적의 조치 또한 마찬가지이며, 따라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의 유전형질에 대한 적극적 선택이 인간을 물건처럼 생각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목적이 아닌 단지 수단으로 취급한다는 견해가 있다. 아이가 목적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합리적 수단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만드는 유전적 능력향상이 가능하다면, 이런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부모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아이를 단지 수단으로 삼은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래의 아이를 물건처럼 여긴다는 논변은 실제로 아이가 물건인지 아닌지에 관한 것이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관련된 것이다.

부모가 마치 자신의 부속품처럼 대하는 태도가 이와 유사한 것인데, 이런 종류의 태도는 아이 유전형질에 대한 적극적 선택 기술이 없다고 해도 위력을 발휘할 것이며, 적극적 선택과 무관하다.또한 이러한 태도를 갖지 않고 적극적 선택을 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암묵적 선택과 노골적 선택

임신부의 음주는 태아에게 신체적 장애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으며 장차 태어날 아이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나 정신지체 확률을 높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대부분의 임신부는 음주를 삼간다.

또한 사람들은 보통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데, 누구와 결혼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유전적 특성이 달리 결정될 개연성이 크다. 그러므로 미래의 부모로서의 선택은 미래에 아이의 유전적 특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유전공학 기술이 없는 시대에도 우리는 미래 아이의 유전적 특성을 선택해왔다. 이런 종류의 선택과 유전공학적 기술에 의존한 선택 사이에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전자는 암묵적 선택(implicit selection)이고 후자는 노골적 선택(explicit selection)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암묵적 선택과 노골적 선택도 도덕적 허용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적합하지 않다. 예컨대, 교묘한 수단을 동원해 누군가를 통제하고 조종해 자유를 제한하는 경우가 있고 명백한 힘과 강제 수단으로 누군가를 억압하고 관리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자. 후자는 명백히 도덕적으로 허용되지 않지만 전자는 허용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실제적으로는 전자가 후자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수학적 재능이 뛰어난 아이를 원해서 자신보다 수학적 재능이 뛰어난 배우자를 선택한다고 상상해 보자. 미래의 아이가 자신보다 우수한 수학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길 기대하고 한 행동이지만 반드시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자연적 생식에서의 유전자 혼합은 우연이다. 이 점을 알고 있고 자신이 선택한 배우자와의 결합이 미래의 아이의 우수한 수학적 재능을 위한 우연의 확률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래 아이의 우수한 수학적 재능을 상상하며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이런 선택이 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지금까지 자연적 생식을 통한 유전적 결합은 상당히 우연적이었지만 기술적 진보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등장했다고 가정하자.

적어도 수학적 재능과 관련해 유전적 특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며, 수학적 재능의 유전적 능력향상을 꾀할 방법도 개발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제 우연에 의지하지 않고 상당한 확신을 가지고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미래의 아이의 수학적 재능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되었다.

자신 스스로 아이의 수학적 재능을 향상시키는 유전적 시술에 동의하였고, 그 시술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자신의 선택이 배우자의 선택 이상으로 도덕적 문제가 있을까? 이 두 선택의 차이는 하나는 우연적 선택이고 다른 하나는 결정론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전자는 기껏해야 확률적 기대치에 의존한 것이고, 후자는 인과적 예측에 기초한 것이다.

행위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과의 예측이 확률적이나 인과론적이냐에 따라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정당할까? 그리고 인과적 선택이라는 개념은 잘못된 가정에 기초한다.

아이의 특성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인이 유전자라는 생각, 유전형이 배타적으로 표현형을 결정한다는 생각은 정당화하기 어렵다. 표현형을 결정하는데 있어 환경이 유전자 못지 않은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칸트 윤리학의 관점에서

 

▲인간을 도덕적 존재,
자유로운 존재로 이해한 칸트.
ⓒ2011 HelloDD.com
이상에서 부모에 의한 아이의 유전적 선택이 적극적 선택, 노골적 선택, 결정론적 선택이라는 이유 등으로 거부되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그렇지만 부모에 의한 것이라도 모든 유형의 유전자 선택을 무조건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부작용과 해악을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칸트의 도덕철학이 기준 선정 문제의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칸트는 인간을 도덕적 존재로 이해한 철학자이다. 도덕적 존재로서 인간은 자유롭고 목적 자체이다. 칸트는 자신의 이런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언명법 표현하였다.

"너는 네 자신의 인격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 그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단순히 수단으로서만 사용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위하라."

칸트는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라는 점, 단지 수단일 수 없으며 언제나 동시에 목적이라는 점, 인간에게는 반드시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는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점, 도덕적인 것은 보편화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점 등을 강조한다.

칸트는 도덕적 존재로서 인간은 자신의 완전성을 추구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으며, 동시에 타인의 행복을 증진시킬 의무를 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타인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인 이유는 타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인간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성은 무조건적 가치를 지니며 나의 인격 속에 있든 타인의 인격 속에 있든 똑같이 그 자체로 가치 있다.

다만, 타인의 행복에 기여할 의무는 완전하지 않고 불완전하다. 한 의무의 준칙이 다른 의무의 준칙에 의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웃에 대한 일반적인 사랑이 자신의 부모나 자식에 대한 사랑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

완전한 의무는 달리 행동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지만 불완전한 의무는 달리 행동할 여지를 남겨둔다. 이런 맥락에서 부모에 의한 미래 아이의 유전적 능력향상이 그 아이의 행복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라면 그런 조처는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이제 문제는 행복의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앞에서 다룬 수학 유전자는 아이의 행복의 증진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이 경우 부모는 수학 유전자를 보강함으로써 아이의 수학적 재능을 향상시키고, 그래서 수학 영역에서 아이의 경쟁력을 증진시키는 것을 의도한 듯하다. 하지만 이런 의도는 달성되기 어렵다.

다른 모든 부모들 역시 같은 의도를 행동에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유전적 강화를 생각해 보자.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이유만으로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도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경쟁의 한낱 수단, 경쟁에서의 승리로부터 얻는 쾌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하라는 준칙은 보편적 법칙으로 모순 없이 바랄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인간 능력향상 기술을 이용한다면 인간 능력향상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고 가정한 목적을 어느 누구도 이룰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칸트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행복을 위해 일반적으로 중요시되는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선하고 바람직한 것이지만 제한 없이 선하다고 선언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은 그런 것이며, 선의지를 전제로 하는 경우에 조건적으로 선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이것을 칸트는 조건적으로 선한 것이라고 하였다.

물론 이런 조건적으로 선한 특성들이 곧바로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대체로 행복을 위해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것의 결여는 자신의 의무로부터 벗어나려는 유혹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이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듯하다.

부모에 의한 아이의 유전자 선택은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칸트가 말한 조건적 선에 해당하는 것의 경우에는 그런 선택이 윤리적으로 허용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조건적 선의 구체적 목록을 만드는 것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일이다.

반대로 사회적으로 합의된 조건적 선의 목록에 포함되지 않는 유전적 선택에 대해서는 엄격한 규제가 필요할 것이다.

참고문헌

강영안, '도덕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소나무, 2000. 오트프리트 회페, '임마누엘 칸트'(이상헌 옮김), 문예출판사. 1997. Dan W. Brock, 'Is Selection of Children Wrong?', Enhancing Human Capacities, (de.) Julian Saulescu et. al., Blackwell Publishing, 2011. Martin Gunderson, 'Seeking Perfection: A Kantian Look at Human Genetic Engineering', Theoretical Medicine and Bioethics, vol. 27, 2007, pp.87-102.

▲이상헌 교수 ⓒ2011 HelloDD.com
이상헌 교수는 서양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의전담교수로 재임 중입니다. 연구분야는 신생과학기술에 대한 윤리적 논의, 비판적 사고와 글쓰기입니다.주요 저서로는 '기술의 대융합(공저)' '대학생을 위한 과학글쓰기(공저)' 등이 있습니다.

이 교수는 '이상헌의 과학기술 속에서 윤리읽기'를 타이틀로 신생과학기술들을 윤리적 관점에서 되새겨 보며 인간의 행복 증진을 위해 최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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