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매주 목요일 선목카페 프로그램 운영

"처음엔 반도체가 뭔지 잘 몰랐어요. 전자회로, 전자기이론, 통신이론 등. 너무 이론적인 지식들이이서 흥미를 느끼기 보다 그저 외웠을 뿐입니다. 결국 회사에서 실제로 하나하나 만들다보니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어요. 공학이라는 분야는 실제로 물건을 만들면서 생기는 감각과 경험으로 완성되는 학문이란 걸 느꼈습니다. 후배 여러분에게도 다양한 경험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었어요."(임형규 KAIST동문회장)

KAIST 도서관에서 삼삼오오 모여 있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설렘이 담겨 있다. 임형규 동문회장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어서다. KAIST(총장 서남표)가 매주 목요일 선배와 후배가 함께하는 '선목카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삼성종합기술원장을 지낸 임형규 KAIST 동문회장이 '대기업에서의 성장'이란 주제로 지난 7일 오후 4시 교내 중앙도서관에서 첫 대화의 테이프를 끊었다. '선목카페'는 10여명의 학생과 동문선배가 매주 만나 대화의 시간을 갖는 '선배들과 함께하는 목요일 카페'를 말한다.

동문 선배들이 참여하는 멘토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동문 선배들이 다양한 사회경험을 후배들에게 전해준다. 학생들은 이 자리에서 애교심과 글로벌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인성 및 리더십을 배울 수 있다.

◆ 대기업에서 성공하는 비결?…'실무처리능력+인간성=리더십'

임형규 회장과 십여 명의 후배들은 도서관 1층 세미나실에 둘러앉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듯 했으나, 임 회장이 "내 소개를 해야겠죠?"라며 웃어보이자 이내 분위기가 편안해졌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 후배들에게 그동안 학창시절과 직장생활을 거치며 겪었던 경험과 느낀 바를 전했다.

그는 KAIST석사과정 재학 시절 산학장학생으로 한국반도체에 첫 입사했을 때부터 미국 유학 시절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던 이야기, 한국으로 돌아와 혁신적인 메모리를 개발하고 상용화해 세계적인 관심을 받던 시절까지 설명을 이어나갔다.

임형규 회장의 첫 회사, 한국반도체는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반도체공장이었다. 직원 100명 가량의 조그만 회사였으나, 그 덕분에 학생인 그에게도 연구에 참여할 기회가 많았다. 그는 3년 동안 그곳에서 일하며 반도체 개발 공정에 익숙해졌다고 한다.

학교에서 배운 탄탄한 이론 지식과 현업에서 다진 경험으로 반도체 분야에서의 종횡무진 활약을 위한 토대 닦여진 것이다. "다양한 대학을 나온 동료들과 일하면서 사람에게는 공부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형태의 능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공부 잘 하는 건 능력의 일부분일 뿐이죠. 말 잘 하는 능력, 관계 형성을 잘 하는 능력 등 주위 동료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죠."

산학장학생으로 뽑혀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공부밖에 몰랐던 그가 직장생활을 통해 배운 것은 실무경험뿐만이 아니었다. 조직의 일원으로서 사람들의 관계와 협업의 과정을 배울 수 있었다. 이후 그는 보다 선진화된 기술을 배우기 위해 3년간 미국 플로리다대학교대학원에서 전자공학 박사과정을 보낸다.

다시 회사에 복귀한 그는 10년 만에 일본의 반도체 기술을 따라 잡고, 세계가 주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고속성장을 이끌어 내는 동안 그가 항상 잊지 않고 실천하고자 노력했던 것이 바로 진취적인 태도와 도덕성이었다.

"실무자 시절에는 윗사람에게 확실하게 유능한 사람이란 인식을 심어줘야 해요. 직무를 잘 처리할 수 있고 인간성과 도덕성을 갖춘 사람이 신뢰를 받을 수 있죠. 계속 회사에 이득이 될만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아이템을 개발했어요. 일본산업을 따라잡는 10년 동안 일터는 마치 총성 없는 전쟁터와 같았습니다. 그래도 세계 모두가 우릴 주목했고, 정말 즐겁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계속 스스로를 발전시켜야만 회사내의 작은 역할로 부터 큰 역할까지 맡을 수 있다는 것. 그는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며 자신을 발전시켰다.
 

▲선목카페를 통해 첫 만남을 가진 임형규 동문과 학생들의 모습.  ⓒ2011 HelloDD.com

◆ "KAIST후배들 '엘리트' 아닌 '리더'로 키우고 싶다"

임형주 회장의 이야기가 끝나자 학생들은 마음에 품고 있던 고민을 하나 둘 털어놓기 시작했다. 직장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자질을 묻는 질문에 임 회장은 비전과 발전적인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기가 맡고 있는 분야에서의 비전과 경력을 구비한 상태에서 발전적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켜서 하기 보다는 자신이 조직의 생각보다 앞서 나가야 돼요. 먼저 제안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해야 하죠."

임 회장의 대답에 이어 한 학생은 '아이디어가 실패로 끝날 경우의 대안'에 대해 물었다. 이에 임 회장은 "세계적 경향을 남보다 많이 알아야 회사에 제안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충분한 시장조사를 통해 시장중심적 사고와 감각을 길러야 해요. 그건 직장생활을 통해 실전에 들어가면 저절로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충분한 논리와 배경을 가지고 의견을 제시할 때도 불확실성이란 항상 따라다니게 마련이죠. 그렇지만 다양한 시도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라고 답했다.

석사 과정에 있는 한 학생은 "스스로 기업과 연구기관 중 어느 쪽 성향에 가까운지 아직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며 기업의 특성에 대해 질문했다. 임 회장은 "기업은 상황판단이 빨라야 합니다. 사업은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에 사안을 다른 사람보다 빨리 파악할 수 있어야 남보다 빨리 새로운 것을 개척하기도 쉽기 때문이죠."라며 기업의 특성을 알려 주었다.

이 밖에도 훌륭한 상사가 되기 위해서는 실력과 공정성을 갖춰야 한다는 점, 일할 때는 감정을 배제하고 능력을 위주로 생각해야 한다는 점 등을 강조했다. 이날 선목카페에 온 학생들은 임형규 동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두 시간 내내 진지한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동안 혼자서 앓던 고민거리를 선배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으며 인생에 녹아있는 지혜를 배우려 했다. 박종철(기계공학과 박사과정) 학우는 "평소 쉽게 만날 수 없는 분을 만나 일반인들이 모르는 경험 하나하나를 전해들을 수 있어 유익했다"며 "특히 '경영자가 어떻게 관리를 하느냐에 따라 자기가 이끄는 사람들의 향후 방향이 달라진다'는 경영자의 책임이 인상적이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진로에 관심이 많은 학부 학생들도 참여해 선배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시간을 가졌다. 김상윤(경영과학과 학부과정) 학우는 "30년이 넘게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즐길 수 있었던 선배님의 열정적인 삶을 본받고 싶다"며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노력하면 나 또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적은 인원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질문할 기회도 많았고, 집중도 더 잘 됐다"며 다음 선목카페에도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편 "선목카페를 잘 활용하려면 많은 조언을 들을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만으로 뵙기보다는 구체적인 질문을 준비해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과 "비교적 나이나 경력이 격차가 적은 동문과 함께할 기회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임형규 동문은 "카이스트 학생들이 공부만 잘 하는 '엘리트'가 아닌 '리더'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며 "선목카페로 씨앗은 뿌렸고, 앞으로 더 다양한 리더십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선목카페는 매주 목요일 열린다. 오는 14일에는 고정식 전 특허청장이 선목카페에서 후배들을 기다린다. 21일 김재현 전 공주대 총장, 28일 유진녕 LG화학(주) 원장 등 각계각층의 동문선배들이 특정 주제를 선정해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카페에서 두 시간이 넘는 동안 이야기를 나눈 선후배는 저녁 식사 자리로 옮겨 못 다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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