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에너지연 박수억 박사 "과학과 예술의 조화를 꿈꿉니다"

"한국화는 여백의 예술, 비움의 미학입니다. 그 빈공간에 '나' 아니면 '여러분' 또는 그 무언가가 감춰져 있습니다. 여백을 어떻게 담아내느냐에 따라 작품의 메시지와 의미가 살아납니다. '불감위선(不敢爲先)'. 제가 그림으로 여러분께 전하고픈 말입니다. 감히 나를 앞세우지 않음으로 해서 겸손과 사랑을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원장 황주호) 미래전략정책실 박수억 박사가 지난 15일부터 행정동 1층 로비에 '쁘띠 갤러리'를 열고 있다. 그가 내건 한국화 작품은 4점이 전부지만 입구를 들어서는 방문객들에게 은은한 감동을 선물한다.

작품 주제는 '낙, 춘하추동((樂, 春夏秋冬).' 시골의 한적한 고택을 소재로 한 사계절의 변화를 화폭에 담았다. "연구원들 대부분이 연구와 실험 위주의 생활을 하다보니 정서가 메말라 있습니다. 정신적 여유와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들에게 잠시나마 '마음의 고향'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4년전부터 개인 전시회를 열어온 그는 지난해 전시된 작품들 중 한 점을 에너지연에 기증함으로써 그의 예술 세계를 연구원 내부에 알리게 됐다.

이후 주변의 좋은 반응과 함께 적극적인 권유, 무엇보다 연구원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번 갤러리를 열었다. 유년시절부터 자신의 그림에 대한 감각과 소질을 알고 있었고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 동안의 연구 생활에서 옆길로 눈을 돌리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3년 후면 연구원을 은퇴하게 되는 그가 그림을 그리면서 점차 자신을 돌아보게 됐고 한국화의 여백에 혼과 철학, 정서적 고향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매주 화요일 목원대에서 박석신 교수의 지도하에 동양화를 배우고 있다.

10년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한참후에야 대학에서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일주일에 단 하루지만 그로서는 연구원에서의 바쁜 생활을 잠시 접고 그림의 세계에 매진할 수 있는 시간이 즐겁다.

그는 역동적인 산수화를 즐겨 그리며 겸제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금강산도, 이정의 풍적,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등을 좋아한다. "직접 현장에서 스케치를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보통 사진으로 담아 그림으로 옮깁니다.

길을 가다가도 맘에 드는 풍광이 있으면 그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사진기를 꺼내듭니다." 박수억 박사는 81년 에너지연에 입사해 현재까지 30년째 에너지기술정책 연구에 몸담고 있다. 그 동안의 세월이 한국에너지기술 변천사라 할 만큼 '에너토피아'에 대한 열의로 살아온 삶이다.

요즘 그는 에너지기술정책 연구활동과 칼럼니스트로서 에너지경제신문, 디지털 타임즈 등에 글을 싣고 있다. "지금의 녹색사회는 두 번 다시 만나기 어려운 에너지소사이어티의 활화산 시대"라면서 에너지기술혁신과 에너지기술시장에 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은퇴하기 전에 에너지를 소재로 수묵화를 그려 연구원에 기증하고 싶습니다. '향곡 박수억이란 사람의 그림은 어떻더라'라는 분명한 아이덴티티를 만들고 싶습니다. '사상연마(事上鍊磨)'라는 좌우명에 따라 매 순간 무슨 일이든 나를 연마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임하겠습니다."

박 박사의 '쁘띠 갤러리'는 개인을 떠나 에너지연구원의 달라진 분위기를 상징하기도 한다. 최근 연구원은 황주호 원장의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경영철학이 뿌리를 내리면서 연구원 전체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과학자들로 하여금 과학 이외의 영역인 문학, 예술 등을 접할 수 있도록 각종 이벤트가 활성화하고 있다. 여러 인문학 강사를 섭외해 전 직원에게 다양한 주제로 특강을 열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다. 비타민 전도사 이왕재 서울대 교수, 국악인 김준호도 연구원을 찾아 연구원에 활력소를 전했다.

기존 에너지 관련 세미나와는 달리 연구원들 모두가 적극 참여해 재미있고 신선하다며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황훈숙 홍보실장은 "그동안 과학과 문화예술의 융합을 이론적으로 억지로 묶어 해석하고 전달하려는 경향이 강했지만 박수억 박사의 그림은 실제로 과학과 예술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황 실장은 올 연말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점의 작품을 대여해 에너지연 각 연구동 입구와 로비에 전시하고 있다면서 '배우면서 창조한다'는 연구원의 모토(Motto)를 전했다.
 

▲박수억 박사가 자신의 작품 '樂, 春夏秋冬'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며 웃고 있다. ⓒ2011 HelloDD.com

▲樂, 春夏秋冬'. 산중의 고옥을 소재로 사계절을 담았다. '樂'은 자연과 어우러져 기쁨을 발견한다는 의미다. ⓒ2011 HelloDD.com

▲에너지연 연구동 곳곳에 마련된 현대미술작품들. 올 연말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여 점의 작품들을 대여해 전시하고 있다. ⓒ2011 HelloDD.com

▲황훈숙 에너지연 홍보실장이 연구원에게 그림을 안내하고 있다. ⓒ2011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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