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서재④]이융남 지질연 박사 "고생물학, 자연속 보물 찾기"
"청소년기 인문학으로 가치관 확립, 이후 전공 연구에 주력"

짐작대로 갖가지 형상의 고생물 화석들이 시선을 끌어들인다. 최근 몽골에서 발굴해낸 공룡화석들이 가장 많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인디애나존스, 혹은 공룡박사로 알려진 이융남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의 서재 겸 연구실이다.

요즘 이 박사는 발굴한 화석을 분석, 연구하는 한편 논문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래도 관심을 표명하는 문외한들에게 공룡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는 모습은 변함이 없다. 물론 공룡박사이니 공룡에 대해 잘 아는 것은 당연한 일.

아무리 그래도 중생대, 신생대를 넘나드는 그의 공룡 이야기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만큼 재미와 마력이 있다. 이야기 속에 정열도 담겨 있다. 수억년전의 지구 모습을 나만 알고 있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라는 식이다.

이야기를 듣는 짬짬이 주변을 둘러봐도 그의 연구실 책장에 꽂힌 책들은 대부분 공룡 관련 서적들이다. 국내에는 없는 오래된 외국 서적부터 논문까지 이 박사가 외국 학회를 직접 찾아다면서 하나 둘 모은 손때 묻은 책들이다.

이 박사가 가지고 있는 책이 사실상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공룡분야 책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서 나온 전문서적은 거의 없다. 있어도 쥬라기공원과 인디애나존스 등 공상 과학 영화의 세례를 받고 자라나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고생물학 분야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나오는 청소년 서적들이 전부다.

그마저도 이융남 박사의 감수를 거쳐야만 가능하다. 이 박사는 바쁜 일정 중에도 어린이 책에 대한 감수에는 꼭 참여한다. 어린이들에게 잘못된 정보가 담긴 책이 전해지면 안된다는 생각에서다. 이 박사의 서재에는 그가 직접 감수한 어린이용 공룡 책이 100여권은 족히 넘어 보인다.
 

▲이융남 박사가 최근 몽골에서 발굴한 공룡화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1 HelloDD.com

고교 시절 읽은 단편·세계문학, 인생의 가치관을 세웠다

지난해 미국의 유명 과학잡지가 과학분야 미래 유망직종으로 고고학자를 선정했다. 덕분에 국내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서 이융남 박사에 대한 인기도 부쩍 높아졌다. 그를 모델로 해 관련 책까지 나오면서 지질연 박물관을 찾는 학부모의 질문 공세에 시달리기(?)도 한단다. 그럼 한국판 인디애나 존스로서의 그가 고생물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이 박사는 "많은 사람들이 어릴적부터 공룡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했을거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서 "역설적으로 고교시절 읽은 한국단편문학과 세계 문학 등 인문학 책들의 영향을 받았다.

자연은 복잡한 인간관계와 다르다. 자연은 관찰하는 자에게 고스란히 자신을 노출시킨다. 자연과학으로 진로를 결정하게 된 것은 이처럼 인문학의 끝모를 깊이와 복잡함에 대한 반발 심리도 작용했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고교시절 친구들과 같이 이과를 선택했지만 이과 공부보다는 이청준 작가 등이 쓴 한국단편문학과 세계문학 등 닥치는대로 책을 읽었다. 이 때 읽은 인문학 책들이 인생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다양한 분야를 볼수 있게 했다. 어릴적 봤던 인문학 책들이 인생의 든든한 자양분이 된 것만은 틀림없다."

그가 막연하게 처음 선택한 분야는 기계공학이었다. 그는 6개월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나서 그가 다시 선택한 분야가 '고생물학'이었다. 그는 고생물학을 선택하고부터는 전공책만 봤다고 말했다. 아쉬웠지만 다른 분야 책은 볼 시간이 없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고생물학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것은 대학교 3학년때였다. 탐사를 떠났는데 발굴한 화석을 처리해 추출하니 무척 아름다웠고 공부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졸업 후 유학까지 가게 됐다."

그러나 그가 유학을 떠나던 1990년도만 해도 국내에 고생물학이 많이 알려지지도 않았고 관련 일자리도 많지 않았다. 주위에서는 그의 유학을 말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고 결혼 후 곧바로 아내와 함께 유학을 떠났다.

▲이 박사가 자신이 쓴 공룡 입문서 '공룡대탐험'을 펼쳐 보이고 있다. ⓒ2011 HelloDD.com

부족했던 전공서적 구입 위해 빌딩 청소도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집안이 넉넉해서가 아니고 운이 좋아 전액 장학금 혜택을 받게된 덕분이다. 전액장학금을 받아 유학생활이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아이가 생기니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생기니 생활비의 대부분이 육아비로 들어가면서 책을 사는 일이 쉽지 않아진 것이다. 이 박사는 보고 싶은 책을 구입하기 위해 학업이 끝난 야간에 빌딩청소를 시작했다. 이 시기가 육체적으로는 가장 힘들었지만 그래도 인생에서 가장 황금기였고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고 그는 말했다.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었고, 갖고 싶은 책들을 손에 넣을 때마다 느끼는 희열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국내에서 공부하는 내내 부족한 책에 대한 갈증이 너무 컸던 그는 유학 시절 학회마다 찾아다니며 관련 책을 끌어 모았다.

그는 "이 분야는 클래식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래된 문헌들이 필요한데 국내에는 전무했다"면서 "학회마다 참석한 것은 세미나 보다 정작 잿밥인 관련책 구입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학회에서 책을 경매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같은 욕심을 갖고 있는 전공 학생들이 많았다. 꼭 필요한 책을 구입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눈치작전을 펴기도 했다." 이심전심, 그의 마음이 누군가에게 전해졌음일까. 뉴욕 카네기 박물관 학회에 찾아갔을 때였다.

우연히 영화 인디애나존스의 모델이기도 했던 유명한 고생물학자 로이체프만 앤드류스를 만나게됐다. 당시 로이체프만 앤드류스는 카네기 명예박물관장이었고 이 박사가 문헌 구입에 어려움이 크다며 고충을 털어놓자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

"로이체프만의 방에 들어 갔는데 오래된 문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그가 갖고 싶은 문헌을 다 가지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에 나온 문헌을 하나 챙겼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박사는 잠시 당시를 회상하더니 책장으로 발걸음을 옮겨 이제는 종이색마처 누렇게 변한 1943년대 책자를 보물처럼 소중하게 다루며 보여준다. 그 때 고른 책이라고 한다. 로이체프만이 인생의 롤모델이라고 말하며 책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어린아이처럼 해맑다.

"이 분야 책은 수요가 많지 않아 잠깐 나오고 절판되기가 일쑤다. 오래된 문헌을 구입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최근 몽골탐사를 다녀왔는데 1923년에 발행된 책이 이번 탐사에 많은 도움이 됐다."

내친걸음에 보여줄 게 있다면서 이 박사가 연구실 한쪽에 있던 4단 서랍장을 열어보인다. 2개의 4단서랍장의 서랍마다 논문 복사물들이 가득차 있다.

"6년만에 학위를 마치고 국내 귀국을 결정했는데 관련 문헌이나 책이 없는건 예전이나 마찬가지인 당시 국내 상황이 염려돼 학교에 있던 논문들을 몽땅 복사해 왔다. 지금은 PDF로 어디에서든 논문을 볼 수 있는데 말이다."(웃음)

▲그가 귀국당시 복사해온 논문들이 서랍마다 가득하다.  ⓒ2011 HelloDD.com

▲이 박사가 자신의 롤모델이기도 한 로이체프만 사진을 컴퓨터를 켜고 보여준다. 사진 왼쪽이 로이체프만 박사, 오른쪽은 인디애나존스의 주인공이었던 해리슨 포드. ⓒ2011 HelloDD.com
척박한 국내 환경 다시 외국 나갈 생각했지만

현재 그의 연구실에 있는 책 1000여권은 대부분이 공룡관련 책이다. 물론 외국 서적이 전부다. 그중 2/3가 절판돼 어디에서도 구입할 수 없는 소중한 책들이다. 국내 공룡 관련책은 그가 2000년도에 쓴 책'공룡대탐험'이 처음이다.

"영화의 영향으로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공룡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아졌다. 그래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입문서를 내게 됐다. 그러나보니 지금도 어린이 책에 대한 감수 의뢰가 끊이지 않는다."

지금은 박물관 관장으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지만 그가 학위를 마치고 1996년에 국내에 들어왔을 때는 어디에서도 그를 오라는 곳이 없었다. 그만큼 국내에서는 고생물학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포닥1년과 서울대 연구에 참여한 것을 제외하고는 별볼일(?)없이 지내야 했다.

국내에서 나름의 역할을 기대했지만 연구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외국에 나갈 결심을 했는데 때마침 지질연에서 박물관을 건립하고 그에게 맡아 줄것을 요청해왔다.

"학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한게 40살이 넘어서다. 이 분야는 응용연구가 아니고 순수자연과학이라는 이유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분야에서 한국은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가 최근 국내에서도 공룡 화석이 나오고 코리아테라톱스라는 이름을 달았다. 이 공룡학명이 전세계에 통용 될 것이다. 나름 보람이 크다."

주변의 몰이해와 척박한 연구환경 등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직업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 분야 일자리가 많지 않음은 그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후배들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들을 받아 줄 자리가 많지 않아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박물관에 대한 사회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게 그의 조언이다. "고생물학은 자연을 상대로 인간이 지구에 나오기전 지구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다. 자연이 숨겨놓은 보물을 찾아가는 보물찾기 같은거다.

다행히 국내에서 관련 박물관이 하나둘 생기고 있다. 박물관이 단순히 전시만 하는 공간에 머물지 않고 상주 연구원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연구하는 기관으로 변화되길 기대한다."

▲이융남 박사가 미래유망직종 중 고생물학자로 소개된 책. ⓒ2011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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