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가전제품 수리·장수사진 촬영·미용 등 민·관합동 봉사

"자 여길 보시고, 고개를 조금 왼쪽으로 돌리시고요. 살짝 웃어보세요 어르신 네,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지난 5월18일 전라남도 보건한방과가 운영하는 병원선이 재원도 주민들을 찾아갔다.

동신대한방병원, 광주 Y미용학원, 한국전력공사, LG전자․삼성전자, 한국가스안전공사, 광주 오종원 사진스튜디오에서 이날 병원선 봉사에 참여해 의료봉사부터 이․미용, 전기시설보수, 가전제품 수리, 장수사진 촬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했다.

◆ 병원선, 내과·한방과 등 의료시설 갖춰… 187개 섬 순회 봉사

병원선은 말 그대로 내부에 의료시설을 갖춘 배다. 인천광역시, 충청남도, 전라남도, 경상남도에 총 5척이 운행 중이다. 이 가운데 전라남도에만 2척의 병원선이 도 보건한방과의 책임과 관리 하에 운영되고 있는데 511호가 남해안에 위치한 87개 도서(島嶼)를, 512호가 서해안의 100개의 섬을 전담한다.

보건진료소가 있는 섬에는 1년에 1차례, 진료소가 없는 경우는 5차례 병원선이 찾아간다. 170톤의 512호는 지하에 숙소, 1층에 진료실 및 대기실, 2층에 조타실이 위치한 총 3층 구조이다. 의료시설로는 내과, 치과, 한방과, 약국 등을 갖추고 있다.

전남도 병원선의 시초는 지난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창기에는 가전제품수리, 전기 점검 위주로 섬 주민에게 생활편의를 제공했다. 이후 도는 95년부터 한방진료를 추가했고 미용(이발, 파마 등), 양방진료, 장수(영정)사진 촬영, 가스점검 서비스를 차례로 도입했다.

2011년 현재까지 모두 472개 도서 6만8394명의 주민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올해 도는 지난 12일부터 시작해 7월 15일까지 6개 시․군 12개 도서 1140가구 2357명을 대상으로 모두 6차례, 각각 1박2일의 여정으로 12일간 봉사를 펼칠 계획이다.

의료봉사는 의과, 한방과, 치과, X-선 촬영, 임상병리검사, 투약 등을 내용으로 하는데 이 가운데 한방진료가 많게는 진료의 80% 가까이 차지한다. 6차례의 봉사활동과는 별개로 병원선은 일년 내내 도 소속 행정팀과 의료팀이 각각 8명씩 배정돼 도서지역을 짜여진 일정표에 따라 순회 봉사한다.

이때는 오직 양방․한방․치과의 의료봉사만을 수행한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전라도의 섬들은 육지에서 매우 멀리 떨어진 곳이 많아 병원선이 한번 출항하면 봉사단원들은 보통 3박4일에서 일주일의 여정을 바다위에서 소화한다.

섬 주변 해안은 수심이 얕기 때문에 병원선을 인근 바다에 닻을 내리고 봉사단이 직접 섬 환자를 보트로 태워와 배안에서 진료를 본다. 섬에 의료시설이 갖춰져 있을 경우에는 의료진이 직접 섬으로 이동해 진료하기도 한다.

섬에는 숙박시설이 없기 때문에 직원들은 봉사기간 내내 바다 위 병원선에서 생활해야 한다. 생필품이나 식량 등은 병원선의 행정담당 직원들이 출항 전 일정에 맞춰 한꺼번에 장을 봐온다.
 

▲병원선에 모인 봉사단원들에게 유장성 선장이 구명조끼 착용법과 응급상황 시
대처요령을 설명하고 있다.
ⓒ2011 HelloDD.com

재원도를 향해 달리는 배 안에는 지난 주 1차 봉사활동에 이어 다시 모인 봉사단들로 북적거린다. 유장호 병원선 선장이 조타실에서 내려와 인사를 나누고 응급대처요령을 봉사단원들에게 안내한다. 병원선에서 양방을 맡고 있는 김기방 공중보건의는 차트를 꺼내 병원선을 소개하고 앞으로의 일정을 들려준다.

김 공보의는 "의대 졸업 후 의사면허를 취득하여 병역대체복무의 일환으로 병원선에 올랐다. 병원선에 오른 지는 한 달이 좀 넘었으며 처음에는 멀미 때문에 무척 고생했다"면서도 "봉사활동 자체는 결코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또 "현재 개선이 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의료인력 충원, 치료시설 보완․개선, 충분한 진료를 위한 일정 배분 등이 아쉽다"며 보다 더 나은 병원선 운영을 위한 제안을 아끼지 않는다.
 

▲병원선에서 바라본 재원도 전경. ⓒ2011 HelloDD.com

오전 9시 목포 여객선터미널 관공선 부두를 떠난 병원선은 2시간여를 달려 마침내 재원도에 도착한다.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면에 위치한 재원도는 43가구 172명이 거주하는 비교적 작은 섬이다. 주민들은 주로 어업을 생계수단으로 삼고 소규모 밭농사도 짓는다. 재원도 바로 정면에는 임자도가 위치하고 멀리 수평선 곳곳에는 이웃 도서의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 11일 재원도 보건진료소 개소, 주민 의료 서비스 제공․운영비는 지원 안돼
 

▲재원도 보건진료소 전경. ⓒ2011 HelloDD.com

봉사단 일행은 주민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한 뒤, 섬 중심부에 위치한 보건진료소에서 본격적인 의료 활동을 시작한다. 재원도 보건진료소는 지난 11일 처음 문을 열었다. 기존 학교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으로서 보건복지부의 예산을 지원받아 완공됐다.

김혜월 보건소장은 진료소 내부에 위치한 소규모 찜질방부터, 찜질용 돌침대, 발마사지기, 물리치료기기, 샤워실 등 주민들에게 의료 편의를 제공할 시설들을 차례로 소개한다.

이어 "섬주민들은 어류를 염장해 만든 짠 음식을 주로 섭취해 다수가 혈압문제를 갖고 있지만 활동량이 많아 당뇨는 없다"고 그간의 진료 결과를 전한다.

섬에 진료소가 없었던 과거, 주민들은 하루 두 번 왕래하는 배를 타고 나가 임자도의 보건진료소를 이용하거나 위중한 환자는 목포의 대형병원에까지 가야하는 불편을 겪었다.

보건복지부에서 보건진료소에 대한 운영비를 따로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운영자금은 섬 주민들로 구성된 운영자치위원회가 맡고 있다.

주민들은 진료소를 한 번 이용하는데 최고 900원의 비용을 지불한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을 경우 진료소 운영에 차질이 예상된다"고 김 진료소장은 걱정한다.
 

▲김현욱 한방 공중보건의가 주민에게 침 시술을 봉사하고 있다. ⓒ2011 HelloDD.com

동신대 한방병원에서 자원봉사를 나온 김동훈 한의사와 병원선의 김현욱 한방 공중보건의는 찜질대를 이용해 진료 접수를 마친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료를 시작한다.

주로 침술 위주로 의료 서비스를 진행하고 시술을 받은 주민들은 한방파스 등의 의약품을 얻어 돌아간다. 이와 함께 혈압체크, 당뇨 검사 등 임상병리검사, 치과 상담, 물리 치료 등이 좁은 진료소를 가득 메운 주민들에게 진행된다.

◆ 의료서비스, 가전제품수리, 장수사진 촬영, 이미용 봉사에 주민들 깊은 감사

무릎과 발목 통증으로 진료소를 찾은 주민 A씨는 찜질대에 누워 김동훈 한의사로부터 침시술을 받는다. 그는 만성신부전증도 앓고 있어 현재 조업을 그만둔 상태다. 섬에 노인들뿐이냐고 묻자, 섬의 아이들은 모두 학교를 다니기 위해 목포로 유학을 떠났으며 대개 아이의 어머니가 목포에서 함께 하숙을 하며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을 맡고 있다고 설명한다.

A씨는 "보건진료소가 들어선 것에 매우 깊이 감사하고 있다. 이곳은 가전제품 A/S도 불가능해 주민들은 소소한 고장에도 영구 불능의 제품으로 간주하고 방치하는 실정"이라며 "병원선 봉사 행사가 좀 더 자주 편성돼 섬 주민들에게 혜택을 준다면 더없이 고마울 것"이라고 말한다.

진료가 한창인 보건소 밖에서는 다른 봉사활동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먼저 경로당 안팎으로 주민들이 집에서 들고 나온 압력밥솥, VTR, 음향기기 등의 가전제품들이 전문가의 손길에 하나 둘 제 기능을 찾아간다.

또 옮기기 힘든 에어컨, 냉장고, 보일러 등은 봉사단이 직접 집을 찾아간다. 전등이 나갔거나 콘센트가 없어 전기를 이용하지 못하는 세대에도 봉사단이 지나가면 환하게 불이 들어온다. 수리가 끝난 단원에게 감사하다며 물 한 잔을 건네는 주민의 표정이 아까와는 사뭇 다르다. 경로당의 노래방 기기가 수리 완료되자, 작은 섬마을에 주민들의 흥겨운 열창이 울려 퍼진다.
 

▲가정을 방문해 전기시설을 손봐주고 있는 봉사단원. ⓒ2011 HelloDD.com

경로당 거실에서는 주민들이 정장과 한복차림을 하고서 장수사진을 찍고 있다. 오종원 사진작가는 굳어진 표정의 주민에게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려 애쓰고 있다. 미용사가 나서서 주민의 옷차림과 얼굴 화장을 손봐주고 있다.

뒤늦게 단장하고 도착한 분홍색 한복의 할머니는 주민과 봉사단 모두의 찬사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사진작가도 장비를 챙기다 말고 할머니를 반겨 다소곳이 의자에 앉힌다. 거실이 분홍색으로 물든다.

사진작가의 신호에 맞춰 할머니의 표정이 밝아진다. 경로당 옆 공터와 작은 창고 건물 안에서는 이미용 봉사가 한창이다. 광주 Y미용학원에서 온 7명의 헤어디자이너는 컷부터 염색, 파마까지 정성들여 꼼꼼히 다듬는다.

변정금 씨는 "병원선의 미용봉사가 '봉사의 꽃'이라며 도움의 손길이 주는 보람과 기쁨을 나누기 위해 이틀 동안 가게 문을 닫고 참여하게 됐다"고 말한다.

특히 "섬주민들 대다수가 60이상의 노인이고 이․미용 혜택을 받지 못해 외관은 물론 위생적으로도 매우 열악한 상황이지만 미용단원들은 이러한 어려움을 감수하고 기꺼이 봉사에 임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노인들이 고맙다며 구겨진 천 원짜리 지폐를 손에 꼭 쥐어주며 웃음으로 답할 때 모든 피로가 사라진다"며 봉사 소감을 전한다.
 

▲경로당 옆 창고 건물에서 이미용 봉사가 진행 중인 모습. ⓒ2011 HelloDD.com

오후 늦게 바람이 거세져 파고가 높아짐에 따라 봉사단은 철수를 서둘렀다. 파도가 높게 일면 보트를 운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병원선이 진료를 나서기 전 해당 섬의 기상을 특별히 체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병원선이 섬에 도착하더라도 보트를 운행할 수 없으면 봉사 일정이 취소되기도 한다. 이날 진료를 받은 주민은 평소보다 적은 편이었다. 기상악화로 진료 일정이 축소된 까닭도 있지만 생계를 위해 바다로 조업을 나선 주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 유 선장, 소외지역 이웃에게 관심 가져야… "젊은층 의식구조 변화 필요"

목포로 회항하는 배는 거세진 파도에 좌우로 흔들거렸다. 2층 조타실에서 유장성 선장과 윤길용 기관장 등이 모여 안전한 항해를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병원선이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다보면 섬 주민들에 폭넓은 봉사를 하기가 어렵다. 다른 지역의 병원선과는 다르게 한번 봉사활동을 나가게 되면 최소 1박 2일로 운영되기 때문에 뭍으로 돌아가는 일이 적다. 오늘처럼 여러 봉사단이 참여하는 이례적인 경우는 하루 일정으로 봉사를 마치고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시간 제약이 더 많다. 많은 인력을 쓰고 싶어도 한정된 예산 때문에 곤란하다."

20년 이상의 항해 경력이 빛나는 베테랑 유 선장은 짧았던 봉사활동의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는 "섬 주민들은 대부분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노인들 뿐"이라면서 "그들에게 더 많은 봉사와 복지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는 또 "요즘 젊은이들이 배낭여행 간다며 해외로만 나갈 게 아니라 소외 지역에서 어렵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웃에게 관심과 도움을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한다.
 

▲조타실에서 배의 항해를 총지휘하는 유장성 선장의 모습. 그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의식의 변화를 역설하면서   갈수록 어려워지는 어농현실을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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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선의 총괄책임과 운영을 맡고 있는 전남도청 보건한방과의 나만석 사무장도 회항하는 배 안에서 그간의 봉사활동을 술회한다.
 

▲경로당 옆 공터에서 변정금 미용사가 봉사를 하고 나만석 사무장(맨 왼쪽)이
주민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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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주민이 대부분 노인이라서 인구가 더 이상 늘 것 같지 않아도 항상 일정 선을 유지한다. 따라서 봉사 업무도 계속 유지하고 질을 높여가야 하는데 식비, 재료비 등 지원 예산이 넉넉지 않다. 섬 주민들도 다 같은 국민이고 의료나 복지 혜택을 똑같이 받아야함에도 낮은 재정자립도와 정책적 어려움이 이를 어렵게 만든다. 주민들의 요청에 비해 자주 못 찾아가니 봉사시간과 양도 많은 부분 부족하다. 특히 보건진료소의 경우 중앙정부의 예산을 받아 어렵게 건립된 것이지만 운영비는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해 서비스 질을 높이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 사무장은 또 "봉사단원들의 고충 역시 만만치 않다"며 "목포가 주거지가 아닌 외부인은 며칠동안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없고 바다에서 생활해야 하는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임상병리사로 봉사에 함께 나섰던 한 동료는 섬 주민들에게 헌옷들을 기증해, 병원선이 주민들에게 도움의 수호천사로 각광받는데 한 몫을 했다"고 말을 잇는다.

◆ "환자와의 의사소통도 치료의 일환… 아픔 나눌 때 보람 느껴"
 

▲김동훈 한의사가 주민과 진료 상담을 하고 있다. ⓒ2011 HelloDD.com

병원선 봉사가 이번이 두 번째라는 동신대한방병원 김동훈 한의사는 "한방은 단순히 주사를 놓고 처방을 하는 것이 아니다. 침술을 하는 내내 환자와 의사의 커뮤니케이션도 치료의 일부이다. 섬 주민들 대부분이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 보다도 동통질환을 호소하며 한방 시술을 찾는 경우가 많다. 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한방이 병원선 의료봉사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다."라며 병원선에서 차지하는 한방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현재까지 침술과 뜸이 대부분인 병원선의 한방 진료 서비스가 앞으로는 한약제 치료와 주사요법, 약침 등으로 다양해졌으면 한다. 이와 더불어 섬의 진료 시설까지 보완되면 '금상첨화'다.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 가장 뿌듯한 것은 시술 전후 주민들의 표정이 확연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환자들의 고통을 치유해주는 것 이상으로 그들의 아픔을 나누는 과정 모두가 좋은 의미와 보람으로 다가온다."며 두 차례 봉사활동에 대한 소감도 들려준다. 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배안은 피곤에 지친 단원들이 여기저기서 단잠에 빠져 있다.

이번 봉사활동에서 장수(영정)사진을 담당했던 오종원 사진작가만이 대기실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30년 이상을 사진과 함께한 그에게 이번 봉사활동 소감을 물었다.

"봉사활동 자체는 힘들지 않다. 일부 주민들이 예약도 없이 사진을 찍어달라며 끼어들더라도 웃으며 찍어주면 그만이다. 영정사진이라고 해서 꼭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것만은 아니다. 일부 그런 시각 때문에 '장수사진'이라는 호칭을 쓴다. 하지만 인간은 언젠가 죽게 마련이다. 죽음을 맞이하고 준비하는 자세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요즘 노인들은 자식들의 도움을 받기 보다는 스스로 돈을 모아 장수사진을 찍으러 오는 경우가 많고 종종 젊은 사람들까지도 '영정사진을 찍으러 왔다'며 스튜디오를 방문해 놀라기도 한다. 유비무환이라고는 하지만 세상이 힘들긴 힘든가 보다."
 

▲병원선 512호가 재원선 봉사 일정을 다하고 목포로 돌아와 정박 중인 모습. ⓒ2011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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