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사와 료 "새원소 코리아늄 찾기, 가속기를 장난감으로 여기는 것"
"국가-민간 연구소 교류, 과학벨트 비지니스 성공의 핵심"

"과학비즈니스벨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출연연구소와 민간연구소의 교류가 중요하다. 쉽지 않겠지만 두 기관의 교류가 한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의 대부 히라사와 료(平澤 泠) 도쿄대 명예교수 겸 일본 미래공학연구소 이사장이 과학벨트의 성공을 위해 귀띔해준 조언이다.

히라사와 이사장은 일본 최고 연구집단인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를 탄생시킨 장본인.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의 총괄정책연구주임을 비롯, 일본 내각부, 문부과학성, 경제산업성 등 심의회, 평가 관계 위원 등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특히 일본 과학관련 학회와 과학정책·연구의 중추를 담당해 왔으며 최근에는 미래공학연구소의 이사장으로 활동하는 과학기술정책연구의 대부다. 그가 올해 7주기가 되는 故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의 묘를 참배하기 위해 3박4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한국 과학계의 거목인 최 전 장관과는 오랜 친분을 쌓아온 지기다. 국내외 과기계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는 만큼 그는 최근 대전 신동·둔곡지구로 거점이 확정된 과학비지니스벨트에 많은 관심을 갖고 대덕넷과의 인터뷰를 통해 애정어린 조언을 남겼다.

◆"과학벨트, 국가연구소와 민간연구소의 교류 필요" 

일본판 과학벨트라 할 수 있는 쓰쿠바 연구소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유에 히라사와 이사장은 '국가-민간연구소의 협력'이 부족했던 점을 꼽았다. 바로 그 약점을 안타까워하며 한국의 과학벨트의 핵심 성공 요소로 민간과 국가 연구기관의 '협력'을 강조했다.

"한국 과학벨트와 처음 모습이 비슷했던 사업이 쓰쿠바 연구소다. 그러나 여기에는 국가 연구소만 들어오고 민간 연구소는 많이 들어오지 않아 교류가 여의치 못했다. 한국의 과학벨트는 기초 연구도 있겠지만 국가 산업발전을 위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두 연구소가 협력하는 것이 한국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이다."

기초과학연구원은 오는 2017년까지 연구단 50개(연구·지원 인력 55명), 총 인원 3000명 규모로 설치될 계획이다. 기간적으로 합리적이냐는 질문에 그는 "빠른 감이 있다. 정말 기초연구에 맞는 사람, 엘리트들을 잘 골라 배치할 필요가 있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재능 있는 우수연구자를 선정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이어 기초과학연구원 원장자격에 대해서는 "한국내 학자 중 노벨상 후보에 올라와 있는 그런 사람이 적격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 연구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모셔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일본의 경우도 외국에서 활약하던 학자들을 모셔와 쓰쿠바 대학의 학장으로, 이화학연구소의 센터장 등으로 임명한 경험이 있다. 그는 그러나 외국인 우수 과학자를 기초과학연구원의 수장으로 임명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이미 한국에는 훌륭한 학자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국내가 아닌 우수한 외국인 연구자를 수장으로 앉히는 것은 하지않는게 좋을 것 같다. 기초과학연구원은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과학자들을 한국으로 불러모으는 역할도 해야한다."

◆중이온 가속기 통한 원소발견…"가속기를 장난감으로 여기는 일"

일본은 2004년 중이온가속기로 113번째 새로운 원소를 발견해 '자포니움(Japonium)'이란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히라사와 이사장은 "원소 발견을 위한 가속기의 쓰임은 가속기를 '장난감'이라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색다른 의견을 밝혔다.

그는 "새로운 원자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를 쏘여야 만들 수 있는 것으로 힘들게 원자를 만들었다고 해서 그 원자가 특별히 가치있는 성질을 갖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며 "중이온 가속기를 이용해 지금 실험되고 있는 암 치료 등 인류 복지를 위한 연구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초과학연구원에 중이온가속기를 세우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며 "가속기를 활용해 해외 우수연구자에게 한국에서 공동 연구를 하자고 권유할 수 있고, 또 가속기를 통한 트레이닝을 통해 한국의 우수연구자를 키워낼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일 과학발전 협력 필요…앞으로 할 일 많아"

지난 3월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로 큰 피해를 입은 일본의 휴유증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인간의 편안한 삶을 위해 건설된 원전의 양면성을 보여준 이 사건은 원전건설에 찬반 논란을 불러오는 등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히라사와 이사장은 원전건설과 과학발전 등에서 한-일이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고 말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원자력과 관련된 일들을 맡아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너무 많은 나라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서로 자국의 이익을 챙기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럴수록 한일(韓日)간의 협력이 더욱 필요하다. 예를 들어 원자력 폐기물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어디에 묻을 것인지 한국은 아직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건 일본도 마찬가지다.

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함께 연구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폐기물 속에 들어있는 플루토늄을 새로운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원전을 일본이 연구 중이다. 2015년 안에 연구가 끝날 것이라고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부분도 공동 연구를 한다면 시너지 효과를 얻지 않겠는가." 그는 내진설계 부분에 있어서 일본이 한국을 적극 도울 수 있을 것을 강조했다. 히라사와 이사장은 "지진이 잦은 일본은 한국에 비해 내진설계가 발달돼 있다.

한국에 일본의 지진설계를 이해시키는 것은 매우 좋은 협력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협력해 풀어가야 할 여러 과제들이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연구자 좀 더 믿는 연구 환경 돼야"

히라사와 이사장은 "한국은 과학투자에 매우 적극적으로 응하고 있지만 정치가 과학자들을 조금 믿어줬으면 좋겠다"는 개인의 견해도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는 연구 푸쉬업을 위해 정치가 필요했다.

또 여러 정책과제 중에서도 정치의 힘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과학자들을 조금 믿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사이언스 커뮤니티에게 예산을 주고 범위를 정해 배분하는 정도는 스스로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처음부터 큰 돈을 주면 그들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조금씩 늘리는 방향이 좋을 것"이라면서 "과학자들이 배분권을 갖고 있다면 다음 세대 과학 발전을 위해서도 좋은 방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본도 아직 과학자들에게 정책을 맡기는 일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최 장관은 인생의 선생…국가발전 이바지하는 모습에 감명"

히라사와 이사장은 1980년 후반 포항 방문을 통해 최형섭 장관과 첫 만남을 가지게 됐고, 그 인연을 시작으로 최 장관이 타계할 때까지 한-일 과학발전과 교류를 확대시키자는 뜻에따라 지속적인 만남을 가졌다.

히라사와 이사장은 2004년 최 장관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단숨에 바다를 건너 그를 만나러 올 정도로 최 장관에 대한 신뢰가 깊었다.

최 장관이 세상을 떠난 후 1년에 한번 씩 그를 찾으러 한국에 방문하려고 노력한다는 그는 "최 장관은 인생의 선생님"이라면서 "특히 그가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자세에 큰 감명을 받았고, 나 또한 그처럼 일본을 생각하려고 한다. 그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국가(일본) 발전에 이바지하겠다"고 다짐했다.

▲27일 故 최형섭 장관의 묘를 찾은 히라사와 이사장이 합장을 하고 있다. 그는 1년에 1번씩 최 장관을 만나기 위해 이맘쯤 늘 한국을 찾는다. ⓒ2011 HelloDD.com

▲최형섭 전 장관 묘비에 새겨진 '연구자의 덕목'. ⓒ2011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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