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명장은 국가의 보물⑥]CG의 마법사 노준용 KAIST 교수
"프로그래머가 대접받는 시대가 와야 전문가 양성된다"

최근 마이클 베이 감독은 영화 '트랜스포머 3'를 3D로 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그가 3D 제작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2D 영화보다 3D로 구현되는 영상의 깊이와 클로즈업의 매력때문이다.

마이클 베이 감독을 설득하는 데 한 몫했다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영화 '아바타' 연출) 역시 "3D가 단순히 오락적 재미 뿐아니라 캐릭터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도 2D보다 효과적인 도구라는 점을 들어 설득했다"고 한다.

한국에도 3D 영상이라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연구개발자가 있다. 노준용 KAIST 문화기술대학원 비쥬얼미디어연구센터 교수는 '나니아 연대기', '슈퍼맨 리턴즈', '80일간 세계일주', '가필드', '황금나침반', '킹덤', '반지의 제왕 3' 등 특수효과로 극찬받은 23개 영화에서의 명장면들을 탄생시킨 세계적인 CG 마법사다.

노 교수도 이들 영화감독과 생각을 같이 한다. 그는 "3D 영화를 보기 위해선 이전의 영화 가격보다 배가 되는 값을 지불해야만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3D 영화를 찾아서 보고 있다. 3D 영화의 대표격이라 불리는 '아바타'의 성공 이후,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입체 영상이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

하드웨어 인프라는 갖춰지고 있다. 극장도 TV도 3D 콘텐츠를 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콘텐츠가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3D 콘텐츠 생산이 절실한 시대로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술상의 이유와 예산 문제가 크다는 게 노 교수의 설명이다. 3D 작품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기술적 요소가 필요하다. 또한 기존 2D 작품을 제작하는 비용보다 배 이상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게 현재 상황이다.

이런 난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해낸 방법이 노 교수의 입체변환 기술 개발이다. 노 교수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고작 3일이면 전 세계 입체 콘텐츠를 다 볼 수 있다고 말했을 만큼 현재 입체 콘텐츠가 빈약하다.

사정이 그러면 만들어내면 될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콘텐츠가 없다면 기존에 있던 2D 콘텐츠를 3D로 변환하면 된다. 우수한 콘텐츠들을 빠르게 입체로 만들 수 있도록 변환을 해줄 수 있다면 모든 고민은 해결된다"고 연구 동기를 털어놓았다.

물론 기술 개발 과정이 쉬운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영화를 하나 만든다 치면 그 안에 수많은 장면이 있고 프레임이 있다. 어떤 장면에서는 팔이 많이 나올 수도 있고, 어떤 장면에서는 사람이 많이 나올 수도 있다.

장면마다 특성이 다른 것을 한 가지 솔루션으로 풀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될 수 없는게 입체 영상 제작의 어려운 점이다. 예를 들어보자.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가필드'가 찡그리는 얼굴 표정에 따라 털의 모양이 달라지고, 움직임도 변화무쌍해진다.

그에 따른 경우의 수를 계산해 모델을 프레임에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노 교수도 인정한다. 끝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장면에 나타나는 그림뿐만 아니라 화면에 깊이를 주는 것 역시 다양한 모델이 필요하다.

게다가 프레임이 다르다고 해서 장면에 나오는 주인공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연속성도 필요하다. 이래저래 피곤한 일이 많은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퀄리티를 낮출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지론. 노 교수는 "이미 입체변환기술 시장에 뛰어든 나라들이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인도인데, 국가 차원에서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이미 할리우드 영화사들과 작업을 많이 해서 경쟁력에서도 상당한 우위에 서 있다"며 "퀄리티를 높이는 대신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뤄내는지가 관건이다.

할리우드는 노동 단가가 높아 외부에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도 그런 면에서 잠재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교수는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서 1년여의 연구 개발 결과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는 "아바타를 만든 프로덕션과의 공동 개발로 기술적 성과를 거뒀다. 현재 우리가 만든 솔루션을 그쪽에서 쓰고 있다"고 전하면서 "수 천 개의 다양한 모션 캡처 모델들을 일일이 사람 손으로 선택해 프레임에 적용하던 시스템을 컴퓨터가 자동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현재 논문으로 제출된 상태"라고 말했다.

현재 노 교수가 진행하고 있는 입체변환기술이 완벽하게 개발될 경우 얻는 기대 효과는 상상 이상이다. 제작비가 1000억원 가량인 할리우드 대작을 입체변환할 경우, 러닝타임 100분에 100억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고 한다.

노 교수는 "3D 영화의 경우 개봉을 하게 되면 마진이 높다. 기존 영화가 8000원 정도 하는데, 3D 영화는 거의 3배 가까이 관람료를 받을 수 있다"며 "3D 영화가 많이 받는 이유는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인데, 입체변환기술로 가격을 다운시키면 영화관람객들에게도, 제작사에게도 모두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 하루 3∼4개 영화보던 영화狂…최고 권위 CG 전문가가 되기까지
 

▲노준용 KAIST 교수. ⓒ2011 HelloDD.com
노 교수는 학창시절 영화관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하루 3∼4개의 영화를 보면서도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서던캘리포니아대학에 진학한 배경에도 영화 사랑이 자리잡고 있는지 모른다.

영화학교로 명성이 높은 그곳은 이미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배출해 낸 명문학교다. 그는 학사와 석사, 박사 과정 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컴퓨터 그래픽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졸업 후 세계 3대 독립 프로덕션 중 하나인 '리듬앤휴즈(Rhythm and Hues)'에 영상기술 전문가로 입사한 그는 3년 동안 23개 작품의 특수효과 명장면들을 탄생시켰다.

할리우드에서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효율적으로 컨트롤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노 교수는 5년 전 주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KAIST의 교수로 임용됐다.

실제 문화산업의 '현장 경험'을 갖춘 문화기술 전문가가 필요했던 KAIST 문화기술대학의 필요와, 고국에서 훌륭한 학생들과 함께 세계적인 영상기술을 개발하고 싶었던 노 교수의 포부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가 KAIST 비주얼미디어연구센터에 온 후 개발한 특수효과기술을 활용해 직접 제작한 '고양이 길들이기', '캡틴 바나나' 등의 애니메이션들은 컴퓨터 그래픽 디지털 축제 '시그래프(SIGGRAPH) 아시아' 전시회에서 2년 연속 상영작으로 선정됐으며, 멜번·런던 등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4군데나 초청·상영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영화산업 진출? 사실 영화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막연한 상상으로 머물 뿐이다. 그의 관심은 영화보다 공학에 있다. 노 교수는 "지금 제가 열중하고 있는 CG 기술의 매력은 수학으로부터 시작한다.

애니메이션이 단지 아티스트가 그린 그림으로 구성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며 "CG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수학 공부를 매우 열심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헐리우드 CG전문가로 있다가 KAIST의 교수직을 선택한 그가 이곳에 몸담은 지 이제 5년, 그는 최근 KAIST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얼마 전 KAIST가 시행한 지정석좌제도에 뽑혀 석좌교수가 된 그는 매년 학교로부터 일정 금액의 예산 지원까지 받게 됐다. "KAIST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교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직접 생활하다보니 훨씬 만족스럽습니다.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미국 최고라는 학교를 봐도 이 정도 좋은 여건으로 지원해주는 학교가 없는 것 같아요. 시설이나 학문적 지원 등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노 교수는 KAIST에서 꿈을 펼치는 학생들에게 의외로 기본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운동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이며 인생은 단기성과가 아닌 장기 마라톤과 같다는 것. 그는 "물론 개인적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장기 마라톤과 다를 바 없는 인생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체력을 갖춰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운동하고 충분히 잠을 자야한다"고 권고했다.

"잠을 충분히 자면 깨있는 동안 굉장히 빠르게 머리가 잘 돌아가므로 수업시간, 책을 읽는 시간, 대화하는 시간, 모두 매우 집중할 수 있게 되며 매일매일 체력을 관리함으로써 주변의 에너지와 정보를 몸에 자연스럽게 쌓아갈 수 있다."

◆ "프로그래머가 대접받는 시대가 와야 전문가 양성된다"

"미국의 프로그래머들은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프라이드도 있고요. 나이 50 돼서도 프로그래밍을 잘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소설을 쓰는 작가와 같은 거죠. 내 작품을 계속 만들어나가는 일련의 생산활동인 셈인데, 한국에서는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이 굉장히 하찮은 일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면 프로그래밍을 안하고 파워포인트를 만들더라고요. 프로그래머들에게 프라이드를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사회가 안타까울 뿐이죠." 영화계 최전방인 할리우드 현장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배운 만큼 그에게는 안타까움도 더 컸다.

미국과 한국의 환경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노 교수는 "미국의 경우 아티스트와 엔지니어의 구분이 모호하다. 구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호 협력이 잘 되는 구조"라며 "한국의 경우에는 전문 인력이 거의 없다. 필요한 숫자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까 아티스트들에게 기술적인 것을 요구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프로그래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굉장히 많다. 콘텐츠가 돈이 되는 시대에 콘텐츠를 만들 사람들이 없다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굉장히 큰 손실"이라며 "프로그래머가 대접받는 시대가 와야 많은 전문가들이 양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의 자율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노 교수는 "미국은 교수의 연구가 일단 예산을 받을 수 있는 프로세스를 통과하게 되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활용하는지 전혀 터치하지 않는다. 그런 부분들이 교수들을 굉장히 자유롭게 한다. 그런데 아시아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여러 부분에서 제한이 많이 있다"며 "서류 쓰다 시간이 다 가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 부분이 개선된다면 조금 더 연구의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연구 환경 개선에 관한 개인 견해를 빼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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